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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Feb 27. 2023

두 번째 기회 얻은 아이돌의 절박한 시간 '피크타임'



운도 실력이라는 말이 있다. 노력한 자에게 운도 따른다는 뜻일 거다. 운은 곧 기회이기도 하다. 기회조차 얻지 못한 사람들은 실력을 검증받을 길이 없다. 능력을 펼칠 수 없으니 묻히고 배제된다. 무명과 유명은 그렇게 갈리고 세상은 마치 그것이 진리인양 유명 쪽 손을 들어준다. 어쩌면 무명은 비운의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


세계 음악 시장의 중심, 케이팝을 이끄는 아이돌. 그러나 매해 데뷔하는 약 30팀의 보이그룹 중 살아남는 팀은 단 2-3팀 (...)


최근 새로운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 나왔다. 제목은 '피크타임', 대상은 아이돌이다. 단 이들은 아직 자신들의 피크타임을 제대로 누려보지 못했다. 그리고 위에서 인용한 내용은 이 프로그램이 갖는 취지의 핵심 전제다. 그러니까 여기 출연한 팀들은 "매해 데뷔하는 약 30팀의 보이그룹 중 살아남"지 못한 이들이다. 운이 없었던 것이다.



출연 팀들은 섹션별로 나뉜다. 이제 막 데뷔한 신인 섹션을 비롯해 이미 활동 중이되 더 넓은 인지도와 팀 차원의 업그레이드를 원하는 부스터 섹션, 군대 공백이나 해체 등에 따른 활동중지 섹션, 연예계 은퇴 등 멤버들 사정으로 홀로 된 자들이 모여있는 1인 섹션까지. 이들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동안엔 자신들의 실제 팀명이나 소속사를 밝힐 수 없다. 대신 프로그램 이름에 걸맞게 1시부터 23시를 팀 이름으로 부른다. 히든카드처럼 베일에 가려 있던 '24시'는 2회 방송 때 1인 섹션 참가자들의 개인별 무대를 보고 심사위원 회의를 거친 뒤 사실상 이 프로그램이 프로듀싱한 팀이 되었다. 한 달 정도 호흡을 맞춘 24시 팀은 3회 방송에서 데뷔 무대를 치렀다.



저마다 우여곡절을 겪은 만큼 팀들에는 사연도 많다. 심사위원과 데뷔 동기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출연 팀이 선곡한 원곡을 부른 보이그룹 출신 참가자도 있다. 직접 소속사를 차려 멤버 모두가 이사진인 회사도 있고 멤버 전원이 영화관, 패스트푸드점, 커피체인점, 떡볶이집에서 알바를 하며 팀을 꾸리는 경우도 있었다(심지어 이 팀의 소속사는 대표까지 대리운전을 하며 '투잡'을 뛴다). 또 어떤 팀은 앨범 13장을 내고 브라질, 인도, 이스라엘, 폴란드 등에서 단독 콘서트를 펼친 한편, 1회 서바이벌 라운드에서 탈락한 10시 팀의 오연준은 무려 11년간 준비한 자신의 데뷔 무대를 마지막 무대로 간직해야 했다.


아직 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데뷔란 꿈일지 모르지만 피크타임의 출연자들에게 데뷔란 반복돼 그어지는 또 다른 출발선일 뿐이다. 혹자의 말처럼 이들은 "자신의 재능을 어디에 위치시켜야 할지 모르는 재능 있는 사람들"의 집단이었다. 그리고 저기 심사위원 자리엔 소녀시대, 2PM, 비스트, 슈퍼주니어, 인피니트, 위너 출신 멤버들이 앉아있다. 과거 아이돌의 소용돌이를 일으킨 심사위원들이 더 큰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는 아이돌 시대를 평가하고 있는 이 훈훈한 광경은 "국내 최초 '팀전' 아이돌 오디션"을 표방하는 피크타임이 준비한 또 하나 흥미로운 장면이다.



한 곳에 모으면 그 자체 좋은 '케이팝 플레이리스트'가 될 선곡, 모두가 구슬땀으로 준비했을 화려한 퍼포먼스와 영상, 그리고 각본 없는 드라마. 3회 방송까지 본 결과 나에게 피크타임은 성공하는 보이그룹의 조건을 알려주는 과정처럼 보였다. 가령 과잉 콘셉트에 스스로 질식당한 킹덤 팀(피크타임에선 탈락할 때 실제 팀 이름을 공개한다)의 사례는 23시 팀의 '주문-MIROTIC', 1인 팀 김병주의 '4 Walls' 사례와 대비되며 팀에 어울리거나 팀을 살려주는 곡의 중요성을 환기시켰다. 더불어 활동중지 섹션이 증명했듯 안정된 소속사가 그룹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 프로그램은 꽤 감동적으로 진단해 주었고, 멤버들의 음악과 무대를 향한 열정 그리고 멤버들 간 믿음과 (화)합이 얼마나 중요한지 피크타임은 펼쳐지는 매 무대를 통해 치열하게 복기해 주었다. 실제 8시 팀이 무대 전 다짐에서 한 말("스스로를 의심하지 말자")은 그것의 절박한 구호였다. 무엇보다 이 모든 걸 바라봐주고 받아들여주는 사람들, 그들이 있어야만 이들의 '피크타임'은 완성된다. 이 서바이벌이 결국엔 글로벌 투표로 마감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공식 방송 일정을 보면 1/4 정도까지 왔다. 16팀을 가려낸 서바이벌 라운드가 끝났고 '같은 주제 다른 선곡'으로 붙은 라이벌 매치도 막바지다. 오는 4회에선 2 팀과 8 팀의 라이벌 '빅매치' 이은 2라운드 '연합매치' 이어진다. 그렇게  잘해서 올라온 팀들이    대중 앞에 전시되고 당락의 결정을 당할 터다. 이는 출연한 대가로 감내해야  어쩔  없는 규칙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것이 이들의 미래까지 결정짓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입장이다. 1  참가자 김현재의 말처럼 비록 작은 기획사에서도 노력하고 잘하는 아이돌이 많다는  보여주는 데서, 심사위원 박재범의 말마따나 하마터면 놓칠 뻔한 '알바돌' 발견하게 해주는 데서  프로그램의 가치가 매겨졌으면 좋겠다.


프랑스 수필가 몽테뉴는 말했다. 호기심에 반대되는 악덕은 무관심이라고. 피크타임은  악덕을 미덕으로 전환하려는 프로그램이다. 부디 여기 출연한 모두가 방송이 끝난 뒤에도 관심받고 잊히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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