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불문의 음악 놀이터
단편선과 선원들의 음악은 장르상 ‘사이키델릭 포크 아트록’쯤으로 분류할 수 있다. 몽환과 환각이라는 비틀린 정신 세계에서 사이키델릭은 피어나고, 포크는 숙성된 아이리시 포크(Irish Folk)와 켈틱(Celtic Music) 사이 어딘가에서 뒤척인다. 클래식과 아방가르드, 재즈와 실험(Experimental)이 난무하는 변박과 질서의 부대낌으로 전해지는 바, 또한 그들의 음악은 명백한 아트록이다. 물론 작법과 구성에서 그 어떤 장르보다 치밀하고 현란해진 한국 아이돌팝을 좋아하는 단편선의 개인 취향에서 어쩌면 우린 이 정체불명의 음악을 진정한 ‘케이팝’이라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들의 음악은 여전히 무심하고 또 정처 없다.
단편선과 선원들 2집 ‘뿔’의 레코딩과 믹싱은 밴드와 더불어 공동 프로듀서로서도 이름을 올린 오디오가이(Audioguy)의 최정훈(오디오가이는 본작의 기획사이기도 하다) 대표가, 음악만큼 꼼꼼한 마스터링은 소노리티 마스터링의 이재수 대표가 해낸 것이다. 최정훈 대표는 언젠가 글쓴이와 인터뷰에서 불교의 범패와 국악의 무속적인 느낌을 가진 단편선과 선원들의 음악에 “굿판”이라는 나름 정의를 내렸었는데, 이는 장르 진단을 거부하는 그들 음악에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으리라 나는 본다. 결국 단편선과 선원들의 음악은 일렉트릭보다는 어쿠스틱을, 정박보단 변박을 지향하는 단편선의 ‘날것’에 대한 집착 또는 야망이 그러한 ‘한국적인 느낌’에 생명을 입힌 결과물이리라. 그래서 본작은 지난 앨범 ‘동물’보다 좀 더 비리고 더 펄떡대는 느낌을 준다. 가령 회기동 단편선 시절 들려준 이상한 노래 ‘이상한 목’을 언플러그드(?) 바이킹 메탈(Viking Metal) 정서로 풀어낸 마지막 지점은 이들이 하고 싶은 음악 스타일이 어떤 것인지 뭉뚱그려 들려주고 있다.
단편선은 첫 곡 ‘발생’을 예술로, 김사월과 부른 ‘연애’를 가요라 불렀다. 그런 것일까. 어쩌면 이 작품은 예술을 발생으로 삼아 가요와 연애를 꿈꾸는 앨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찢어지는 바이올린과 헐떡이는 퍼커션 리듬에선 예술을, ‘뿔’과 ‘흙’의 서정에선 가요를. 물론 일본에서 건너온 ‘가요歌謠’라는 말의 속뜻,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즐겨 듣거나 부를 수 있도록 만들어진 노래”라는 사전 정의에 따라 그것은 오래전 우리 조상들이 “즐겨 듣거나 불렀을” 창(국악)이라 바꿔 써도 괜찮을 것이다. 나는 저기 뒤 ‘불’을 그 모든 것의 조화로 들었다.
‘낮’이 대표하듯 단편선의 가사는 어렵다. 어렵지만 서슴없고, 그래서 그 말들엔 뜻이 없는 대신 힘이 있다. 이를테면 시의 맥락을 엎은 곳에서 음의 맥락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소통이 실종된 우리의 현실을 그는 이런 식으로, 소통될 수 없는 가파른 언어의 나열로 표현하고 싶었나 보다. 모차르트의 말처럼, 어쩌면 정말 “언어가 끝나는 곳에서 음악은 시작”되는 것일지 모른다. 단편선과 선원들은 지금 그런 음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