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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May 04. 2023

한국 솔(Soul) 보컬의 원조

박인수 '봄비'

한국의 록 역사는 흔히 '록과 솔의 대부'라 일컫는 신중현과 에드훠부터 시작한다. 밴드 결성이나 앨범 발매 시기로만 따지면 코끼리 브라더스 캄보밴드와 김치스, 바보스, 그리고 윤항기가 이끈 키보이스가 앞서지만 앞선 세 밴드는 앨범을 남기지 않아 역사에서 희미해졌고, 키보이스는 대표곡 '해변으로 가요'가 일본 노래의 번안이었던 만큼 '순수 창작' 측면에서 신중현의 에드훠에 밀린다. 에드훠는 1964년 서정길이 부른 '비속의 여인'과 신중현이 직접 부른 '내 속을 태우는구려'(나중에 '커피 한 잔'으로 제목이 바뀐다)를 앞세워 일반 가정집 응접실에서 하루 만에 녹음을 감행, 신중현이 모든 노래를 쓴 첫 앨범을 냈다. 흥미로운 건 가수 장미화가 이 앨범에 참여했다는 사실인데, 그는 '천사도 사랑을 할까요'와 '굳나잍 등불을 끕니다' 두 곡을 부르고 이른바 '신중현 사단'의 1호 가수로 남게 된다.


그런데 들어보면 알겠지만 60년대 한국 록엔 '록 음악' 했을 때 으레 사람들이 떠올리는 느낌, 이를테면 강하거나 거칠거나 질주하는 맛은 거의 없었다. 대신 그것은 차라리 부드럽고 달콤했는데 바로 트로트와 솔 요소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신중현을 '록의 대부' 외 '솔의 대부'라 이르는 건 그래서다. 그리고 이 노래 '봄비'는 그 '솔의 대부 신중현'이 남긴 가장 유명한 장르 곡이다. 사실 신중현은 기타 연주나 노래 만드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지만 노래 부르는 일에는 딱히 재능이 없어보였다. 이는 그가 부른 '봄비'와 김추자, 장현, 양희은, 들고양이들, 장사익, 인순이가 부른 '봄비'를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물론 이들 모두를 들어봐도 박인수가 부른 '봄비'에는 또 못 미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박인수는 이 가수에서 저 가수로 떠돌던 '봄비'를 자신의 이름 아래 안착시킨 한국 솔 보컬의 시조격 가수였다.



'봄비'의 역사는 1969년까지 거슬러 간다. 이 노래를 처음 부른 사람은 신중현이 이끈 밴드 덩키스의 보컬이었던 이정화. 하지만 노래는 히트하지 못했고 1970년에 '신중현 작, 편곡집'으로 소개된 그의 또다른 프로젝트 퀘스천스의 유일한 앨범에 다시 수록돼 큰 인기를 얻었다. 퀘스천스는 미 8군과 일반 무대를 넘나들며 활동하던 팀으로, 이때 마이크를 잡은 사람이 바로 박인수였다.


박인수는 미 8군 무대에 서고 싶다며 신중현을 찾아왔다. 70년대 초 신중현에게 박인수는 "흑인보다 흑인 음악을 더 잘 소화"한 가수였고, 그가 살면서 본 "템테이션스(The Temptations) 노래를 가장 잘 부른" 가수였다. 박인수는 퀘스천스의 천군만마였다. 리메이크 해 부른 '봄비'로 박인수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했고, 그 인기는 "음반이 두 달에 하나는 나올 정도"로 신중현 음악 인생의 정점을 찍게 해주었다. 하지만 당사자간 사전 협의가 없었던 탓에 박인수는 퀘스천스의 스케줄과 별도 스케줄을 잡으며 신중현을 당황하게 했고, 결국 음악이 아닌 다른 문제로 두 사람의 시너지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아무래도 보컬로서 박인수를 무척 아꼈던 탓에 당시 신중현의 안타까움은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박인수는 '대마초 파동'에까지 연루되며 오랜 기간 활동하지 못한다. 그러다 민주화가 기지개를 펼 무렵이었던 1987년 그는 신촌 블루스에서 다시 '봄비'를 불렀다. 김동성이 연주한 프로그레시브 록 풍 오르간 연주를 부각시켜 원곡의 러닝타임(5분 40초)에서 1분 30여 초를 더한 신촌블루스의 '봄비'는 대중의 망각에 희생될 뻔한 재능 넘치는 솔 가수 한 명을 가까스로 되살렸다. 이러한 극적 부활을 지켜본 연석원(솔 밴드 데블스 출신 편곡가)과 재즈 보컬리스트 김준은 박인수에게 솔로 앨범까지 제안, 그가 가수로서 달고 있던 산소 호흡기를 완전히 떼 내도록 해준다. 이때가 1989년. 변진섭과 이승환과 신승훈이 대한민국을 발라드 세상으로 만들려던 시기였다.



박인수의 첫 솔로 앨범은 작품 제목이 된 '뭐라고 한마디 해야할 텐데'를 시작으로 연석원이 3곡, 김준이 2곡을 만들어 넣고, '봄비'를 포함한 신중현의 자작곡 3트랙이 나머지를 채웠다. 여기서 신촌 블루스 버전보다 20여 초 줄어든 새로운 '봄비'는 오르간 대신 키보드로 전체 무드를 잡고 베이스와 드럼의 '칼박'에 집중한 편곡을 들려준다. 물론 그 모든 요소들의 중심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박인수의 목소리가 있다. 슬픈 듯 자조하는 그 축축한 절망은 빗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음악 속에서 노래 자체가 비와 눈물이 되어 "한없이 흐른"다. 하지만 박인수의 부활은 오래 가지 못했다. 기묘한 방랑벽과 미숙한 스케줄 관리로 시스템에 적응치 못한 그의 솔로 활동은 수 년 안에 꺾이며 결국 첫 솔로 작품을 자신의 마지막 솔로 작품으로 만들고 말았다.


2013년 4월 26일. TV조선 토크쇼 '대찬인생'에는 40년 만에 재결합하는 부부가 출연했다. 가수 박인수와 곽복화 씨였다. 곽 씨는 저혈당으로 쓰러져 단기 기억 상실증에 걸린 과거 남편을 남은 생 돌보리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것만으로도 가슴이 저며오는데 시청자들은 이어진 박인수의 무대에서 한 번 더 가슴이 무너져내린다. "아름답게 사세요." 인사를 건넨 그가 부른 노래는 당연히 '봄비'였다. 몸이 많이 불편해보였는데도 그는 흐린 브라스 사운드가 감도는 스튜디오에 기어이 빗방울이 떨어지도록 만들었다.


봄비 / 나를 울려 주는 봄비 / 언제까지 내리려나 / 마음마저 울려 주네 / 봄비......


이날 박인수의 노래는 기교나 음의 정확도 같은 이론 지적을 무력화시키는 것이었다. 아픈 그의 노래는 무섭도록 서글펐지만  그만큼의 에너지로 살아 펄떡였다. 노래가 그를 삼키고 그가 노래를 삼켜내는 소용돌이 속에 그걸 듣는 사람들은 똑같이 휘말렸고  안에서 무력했다. 진심과 상황이 음악의 진실 안에 머물  솔이라는 장르는 마침내 맨얼굴을 드러내는 . 그날 방송에서 '원조' 그렇게 자신만 아는 자신의 경지를 무심히 펼쳐보였다.



* 글은 졸저 <지금 내게 필요한 멜로디>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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