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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ul 12. 2023

BTS 슈가의 부캐 '어거스트 디'

이 글은 격월간지 <살맛나는 세상>에도 실렸습니다.


본캐와 부캐라는 말이 있다. 전자는 '본래 캐릭터'의 줄임말이고 후자는 '부캐릭터'를 줄인 것이다. '내 안의 또 다른 나' 정도로 풀어볼 수 있을 부캐는 '멀티 페르소나'라는 말로도 쓴다. 페르소나(Persona)란 고대 그리스 가면극에서 배우들이 썼다 벗던 가면을 뜻한다. 즉 본캐와 부캐는 원래 온라인 게임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쓰던 용어였다. 그러던 것이 방송인 유재석이 자신의 트로트 가수 정체성을 '유산슬'로 정하며 해당 용어는 금세 대중 사이 유행이 된다. 물론 정체성의 혼란을 개인의 정체성으로 삼는 부캐가 한국에서 최초는 아니다. 당장 떠올려봐도 40여 년 전 화성에서 온 '지기 스타더스트'라는 부캐를 만들었던 데이비드 보위가 있었고, 20여 년 전엔 '슬림 셰이디'라는 이면의 자아로 가사를 쓴 래퍼 에미넴이 있었다.


민슈가 천재, 어거스트 디(Agust D), 민피디, 할배


모두 방탄소년단(BTS)의 민윤기를 부르는 이름들이다. 특히 눈에 띄는 '할배'라는 애칭은 그가 무엇이든 잘 고치고 잔소리가 심하며 낮잠을 즐겨 자기 때문에 붙은 것이라고 한다. 알다시피 민윤기는 슈가(Suga)의 본명. 즉 슈가의 부캐는 최소 네 명이라는 얘기다. 그 중 이 글에서 다룰 캐릭터는 어거스트 디(Agust D)다. 어거스트 디는 2005년 스토니 스컹크와 에픽 하이를 통해 랩의 세계로 빠진 대구 출신 래퍼 겸 프로듀서다. 그는 독학으로 프로듀싱 프로그램 사용법을 익혔고 스튜디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작/편곡과 녹음/음향 장비 다루는 방법을 배웠다. 한때 대구 래퍼들이 가장 신뢰하는 비트 메이커였던 그는 방시혁이라는 사람이 발표한 랩 오디션에 나가 무난히 예선을 통과, 최종 랩 배틀에서 2위를 차지했다. 운명이었을까. 랩 배틀 우승자인 일레븐(i11ven)이 회사를 나가자 어거스트 디가 그 자리를 차지, 슈가라는 이름으로 BTS의 멤버가 된다.


어거스트 디는 '하고 싶은 거 다 해보자'는 슈가의 또다른 자아다. 2016년 8월, 그 어거스트 디는 아이돌 래퍼가 된 스스로를 돌아본 10곡 짜리 비공식 믹스 테이프 'Agust D'를 발매한다. 자신의 이름을 앨범 이름으로 내건 해당 믹스 테이프는 그가 "10대 후반에서 20대를 지나며 겪은 현실과 이상"을 담고 있었다. 'Agust D'는 'DT Suga'를 거꾸로 쓴 것으로 'DT'는 '대구 타운(Daegue Town)'을, 약자 'D-Town'은 어거스트 디가 과거 활동했던 지역 힙합 크루의 이름을 뜻한다. 삼부작으로 구상한 어거스트 디의 믹스 테이프는 두 번째 작품 'D-2'를 지나 지난 4월 21일, 이젠 고인이 된 사카모토 류이치 등이 피처링한 'D-Day'로 막을 내렸다.


아이돌과 아티스트를 이분법으로 나누는 걸 싫어하는 어거스트 디는 13살 때부터 작곡가를 지망해 13년간(연습생 시절까지 포함) 슈가라는 이름의 아이돌로 살아왔다. 하지만 그는 무명 때 자신을 알리기 위해 해온 버릇대로 BTS 멤버가 되어서도 1년에 200~300곡을 만들어 왔다. 음악 외 딱히 재미있는 게 없어 '숨 쉬듯' 곡을 만든다는 어거스트 디. 지구 최강 보이밴드 멤버가 될 자식의 미래를 몰랐을 그의 어머니는 처음엔 아들이 음악하는 걸 반대했었다. 그리고 2017년. 어거스트 디는 고향 대구에 '큰맘할매순대국'이라는 식당을 어머니에게 차려드린다. 본캐 민윤기의 금의환향이었다.



추천곡



'so far away' (2016, BIGHIT MUSIC)



어거스트 디의 첫 믹스테이프 마지막 트랙이다. 느린 비트에 희뿌연 무드, 거친 어거스트 디의 랩과 꿈결 같은 수란(SURAN)의 목소리가 청춘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꿈을 찾으라 격려하고 있다. 어거스트 디는 우연히 들은 수란의 음색이 마음에 들어 그를 섭외, 이듬해엔 자신이 수란의 곡 '오늘 취하면'에 등장하면서 예술적 협력 관계를 이어갔다.



'대취타' (2020, BIGHIT MUSIC)



'D-2'는 "28살 어거스트 디의 기록"이자 팬들을 위해 만든 믹스테이프였다. 그리고 전통 군례악 대취타를 트랩 비트(trap beat)와 버무린 '대취타'는 그 작품의 노른자였다. 어거스트 디가 왕과 또 다른 어거스트 디까지 1인 2역을 소화한 사극 뮤직비디오는 4억회 이상 조회수를 기록하며 한국 솔로 가수로는 최초로 빌보드 메인 앨범과 싱글 차트에 동시에 오른 그의 성취를 거듭 빛냈다.



'사람 Pt.2 (feat. 아이유)' (2023, BIGHIT MUSIC)



어거스트 디가 팬데믹 당시 '모든 걸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을 때 썼던, 스스로에게도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담은 곡이다. 특히 "삶은 저항과 복종 사이의 싸움이라는데 / 내가 보기에는 외로움들과의 싸움이네"라는 랩 가사는 듣는 사람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아이유가 피처링 했고 초기 버전에선 정국이 가이드를 불렀다.



'극야' (2023, BIGHIT MUSIC)



자신이 맞은 나이를 노래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일부를 샘플링 했다. BTS가 그룹 활동을 잠정 중단했을 때 매체들이 그들의 해체에 관한 추측성 기사를 쏟아내는 걸 보고 만든 곡으로, 그래서인지 어거스트 디의 랩 톤은 제법 노기(怒氣)를 띠고 있다. 또한 이 곡은 좌와 우, 내편네편의 세상이 흑백논리로 수렴되는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다소 자조적인 노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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