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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May 18. 2016

Travis - Everything at once

가장 포근한 모던록 밴드

밴드에서 보컬은 중요하다. 음역대의 우열 얘기가 아니다. 마이크 앞에 선 한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그 밴드가 규정되고 또 사람들에게 알려진다는 차원에서 보컬의 중요성을 나는 말한 것이다. 글래스고 출신 밴드 트래비스의 프랜 힐리도 그런 보컬 중 한 명이다. 그는 훌륭한 송라이터이면서 개성있는 보컬리스트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자신이 곧 트래비스인 프랜 힐리의 목소리는 트래비스라는 밴드의 풍경이며 장치요, 전제다. 그의 보컬이 스며들지 않은 곳에 트래비스 음악은 있을 수 없다. 커트 코베인이 없는 너바나, 톰 요크가 없는 라디오헤드를 상상할 수 없듯 말이다.

‘Good feeling’의 패기와 ‘The man who’의 쓸쓸함이 엊그제 일처럼 생생한데 이들도 벌써 여덟 번째 작품을 낸 중견 밴드가 되었다. ‘All I want to do is rock’을 부르짖은 때가 97년이니까, 공식 활동만 올해로 19년차다. 그 사이엔 수록된 모든 곡들이 좋았던 ‘The man who’ 같은 수작도 있었고, 멜로디와 구성 면에서 살짝 아쉬웠던 '12 memories’ 같은 범작도 있었다. 물론 ‘The boy with no name’ 같은 앨범으로 실망한 팬들의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기도 했으며, ‘Ode to J. Smith’처럼 평단과 팬들의 호불호가 극명히 갈렸던 적도 있었다. ‘Where you stand’는 그런 트래비스가 다잡은 균형이었고, 이번 앨범 ‘Everything at once’ 역시 어렵게 다잡은 중심을 놓치지 않은 또 다른 수작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4일부터 지난 4월19일까지 먼저 공개한 싱글 네 곡을 따돌리는 첫 곡 ‘what will come’은 과연 트래비스답게 따뜻하고 맑다. 과거에도, 그들의 첫 곡은 웬만하면 좋았다. 장엄한 합창과 웅장한 팀파니를 물고 덤비는 더기 페인(Dougie Payne)의 베이스 라인은 ‘paralysed’에서 전시되고, 그의 작곡력은 다음 곡 ‘animals’에서 증명된다. 크레딧을 확인하지 않으면 프랜 힐리의 곡이리라 믿었을, 참한 멜로디와 치밀한 편곡이 ‘animals’에는 있다. 전자음이 섞인 선공개 싱글 ‘everything at once’도 더기 페인의 곡인데, 그는 분명 이매진 드래곤스를 염두에 두고 이 곡을 썼을 것이다. 노르웨이 싱어송라이터 오로라 악스네스(Aurora Aksnes)와 힐리가 함께 쓴, 역시 지난 1월11일 앨범보다 먼저 선봰 싱글 ‘3 miles high’와 밥 딜런, 조니 미첼 등에게 영향 받은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조세핀 오니야마(Josephine Oniyama)가 함께(featuring) 한 ‘idlewild’는 본작의 믿음직한 뒷심으로, 이번 작품엔 훈훈한 트랙들의 고른 배치로 듣는 사람들이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하도록 하는 전략 또는 힘이 녹아 있다. 마지막 ‘strangers on a train’의 느리고 부드러운 마무리를 보라. 트래비스는 중견 밴드이지만, 그들은 매너리즘 보단 노련함 쪽에 더 가까이 가 있는 것이다.

요컨대 ‘turn’은 없지만 ‘my eyes’는 있는 앨범이다. ‘The man who’를 무척 좋아하지만 ‘The boy with no name’도 못지않게 아끼는 터라 나는 이번 작품에 그래서 만족한다. ‘writing to reach you’ 같은 감동을 다시 느껴보고 싶은 건 아마도 글쓴이를 포함한 모든 트래비스 팬들의 같은 바람일 테지만, 자칫 그 바람이 욕심이 될 때 과거 영광은 이대로도 충분한 밴드의 지금을 괜히 초라하게 만들 수도 있다. 부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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