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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Sep 04. 2023

데뷔 25주년, 여전히 트렌디한 박기영의 음악 세계

[Magictronica] 박기영


20대 초반 '시작'과 '마지막 사랑'으로 박기영을 알았다. 상큼한 모던 로커와 애절한 발라디어로 매력적이었던 그때 이후 박기영은 내가 쭉 관심을 갖고 지켜봐 온 싱어송라이터로 남았다. 이유를 생각해 보니 그의 음악도 목소리도 세월 따라 조금씩 성숙해 왔기에 그랬던 것 같다. 박기영이 데뷔 25주년을 맞은 지금도 'Loving You' 같은 곡만 부르고 있다면 글쎄, 리스너로서 내 관심은 줄어들었거나 사그라졌을 가능성이 높지 않았을까. 하지만 박기영은 '그대 때문에' 같은 곡으로 당시 주위를 서성이고 있었을지도 모를 슬럼프를 조용히 밀어냈다. 그리고 지금 그의 음악과 노래에는 나이에 걸맞은 품격과 안정감이 있다. 예술가로서 열정과 에너지야 두 말할 필요가 없을 일. 내가 40대 중반을 넘어서도 계속 박기영을 듣고 있는 이유다.


박기영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장르를 겁내지 않고 장르들에 맞선다. 포크, 모던록, 재즈, 블루스, 팝페라까지 그는 '도장 깨기' 하듯 하나하나 부수며 자신의 길을 닦아 왔다. 이는 아티스트로서 스스로에 대한 확신 없이는 힘들었을 일이다. 지난 2월 발매한 싱글 '꽃잎'을 다섯 가지 버전으로 나눠 수록한 일은 그래서 나에겐 그 확신 또는 자신감의 증명처럼 보였다. 창작의 출처를 고독에서 찾는 박기영. 그는 발성과 표현력이 탁월한 가수이면서 작곡가로서 행보도 꾸준히 이어왔다. 3집부터 본격 뛰어든 그의 송라이터로서 정점은 아마도 이창동 감독의 '시'에 삽입한 '아네스의 노래'였을 터. 벌써 13년이 지난 그 노래 이후 박기영의 음악은 어른이 되었다.



물론 어른이라고 다 같은 어른은 아니다. 음악에도 청년, 중년, 노년이 있다. 그중 지금 박기영은 중년에 이르렀다. 음악으로 산전수전 다 겪은 박기영이 이번에 선택한 장르는 일렉트로닉이다. 사실 일렉트로닉은 지난 정규 앨범 'RE:PLAY'에서 이미 그가 깊은 관심을 보였던 장르로, 신작 'Magictronica'는 그 제목처럼 EDM의 들뜬 바이브보단 쓸쓸한 추상성을 지향하는 IDM(Intellegent Dance Music)을 적극 흡수해 마법 같은 신비함으로 자신을 채웠다. 기교보단 분위기에 방점을 찍은 'After Confession' 같은 곡이 우선 눈에 띄고, 20대 전성기 때처럼 내지르는 보컬과 가스펠 코러스, 펑키한 반전이 있는 'I'm not O.K.'도 따로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장르 상 트랩과 구성 상 드롭을 접목한 타이틀 곡 'Tough Girl (Remix)'엔 래퍼 엠씨 메타가 함께 해 박기영의 음악 폭을 한 뼘 더 넓혀주었다.



언젠가 박기영은 자신의 사운드를 유지하며 새로운 걸 탐구하고 숙성시키고 발전시켜 나가고 싶다 말한 적이 있다. 기존 곡과 신곡이 어우러진 'Magictronica'의 믹스엔 그런 박기영의 '탐구, 숙성, 발전'을 거친 사운드의 결과물이 담겨 있다. 이는 돌비 애트모스라는 음향 기술을 참고한 끝에 도달한 성과였다. 즉, 3D 화면에 각 사운드를 저장해 창작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움직여 자유로운 표현을 가능하게 해주는 돌비 애트모스의 장점을 공동 편곡자 겸 프로듀서인 백중현(Brandon Paik)과 함께 스테레오 방식에 녹여낸 것이다. 이는 마치 박기영이 2017년부터 연이어 내고 있는 '스튜디오 라이브' 앨범이 50명 관객과 헤드폰을 끼고 하는 콘서트 현장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을 갖게 한 것과 비슷한 경험을 듣는 이들에게 줄 법하다.


박기영이 음악가로서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은 트렌드를 의식하고 공부해 자신의 음악에 접목시키려 노력해 왔기 때문이다. 트렌드를 소화하는 일이 의무이거나 그 방향이 늘 옳은 건 아니겠지만 흡수하려는 당사자가 진심에서 제대로만 한다면 그 시너지는 예술가에겐 플러스가 될 확률이 높다. 7년 전 엔니오 모리코네의 멜로디를 사라 브라이트만보다 더 극적으로 천상으로 밀어 올린 'Nella Fantasia', 6개월 전 자신의 곡들을 연대기순으로 선보인 딩고 뮤직의 '킬링보이스'가 세대를 묻지 않고 감동을 안긴 것도 안주하지 않는 박기영의 예술가로서 성실함 덕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번 앨범 역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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