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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Sep 09. 2023

가을을 담은, 가을을 닮은 노래

'어느 가을 날의 시' 피노키오


2020년 5월, K2 김성면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김성면은 철장미(Iron Rose)라는 헤비메탈 밴드를 거쳐 밴드 피노키오의 보컬리스트로 활약한 뒤 자신의 프로젝트 K2를 이끌며 1990년대를 풍미한 싱어송라이터다. '어느 가을날의 시'는 1992년에 발매한 피노키오의 공식 데뷔작(피노키오는 김성면이 밴드에 들어오기 전인 1990년에 미발표 앨범 'Pinocchio'를 만든 적이 있다)에 실린 곡으로 노랫말과 곡 모두를 김성면이 썼다. 김성면과 함께 밴드의 메인 송라이터였던 안정훈의 '먼 기억처럼', 오태호가 준 '사랑과 우정 사이'와 함께 앨범을 대표한 발라드 넘버로, 김성면은 밴드의 키보디스트 이은호가 연주하던 팝송에서 영감을 받아 쓴 곡이라고 나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김성면이 솔로 활동을 전제로 입대 전 짧게 몸담은 피노키오는 5인조였다. 보컬에 김성면, 기타에 안정훈, 베이시스트 김민철, 키보디스트 이은호, 그리고 드럼엔 김의찬이 앉았다. 안정훈은 스튜디오에서 큰 활약을 펼쳤으나 앨범 발표 후엔 이태섭이 그 자릴 대신 했다. 이태섭은 나중에 K2에서 김성면을 돕고 안정훈은 임재욱과 포지션을 결성한다. 드러머 겸 팀 리더였던 김의찬은 1995년 뇌사 판정을 받아 세상을 떠 모두를 안타깝게 했는데, 떠난 그의 나이 고작 26세였기에 더 그랬다. 김의찬은 피노키오의 공식 2집(실제론 3집) 히트곡 '시간이 흐른 뒤에'를 작사, 작곡한 재능있는 송라이터이기도 했다.



총 10트랙이 담긴 피노키오의 데뷔작은 전체적으로 무난한 작품이었다. 소속사가 드라마 '질투' 주제곡 같은 걸 만들어야 한다고 해 울며 겨자 먹기로 쓴 안정훈의 '다시 만난 너에게'를 비롯해 1994년 대한민국 노래방에서 가장 많이 불린 '사랑과 우정 사이', 부활을 떠난 이승철 솔로 초창기에 큰 역할을 한 싱어송라이터 박광현이 준 '달리기', 이송이라는 작곡가의 곡에 안정훈이 가사를 얹은 '소중한 너의 모습' 등 곡 하나하나가 저마다 매력을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이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곡은 역시 김성면이 쓴 '어느 가을날의 시'였다.


곡은 반짝이는 피아노 연주로 문을 연다. 이어 살짝 거친 김성면의 목소리가 들어오고 그 위에서 곱디고운 시어(詩語)들이 만추의 낙엽 냄새를 피워 낸다. 가사와 멜로디, 그것들을 어우른 노래가 곡의 주제를 완벽하게 음미하는 이 숨겨진 명 발라드는 이후 김성면이 써내는 '소유하지 않은 사랑', '그녀의 연인에게 #Story 1'의 예고편이었다. 분명 4분 42초 안에서 한 계절을 살아낼 수 있다는 건 음악만이 가진 힘일 것이다. 나는 처음 들었던 중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 곡을 피노키오 최고 곡 아니, 김성면의 최고 곡이라 여기고 있다. 누가 뭐라 해도 나에겐 그렇다. 아마 당신에게도 그런 곡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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