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 날의 시' 피노키오
2020년 5월, K2 김성면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김성면은 철장미(Iron Rose)라는 헤비메탈 밴드를 거쳐 밴드 피노키오의 보컬리스트로 활약한 뒤 자신의 프로젝트 K2를 이끌며 1990년대를 풍미한 싱어송라이터다. '어느 가을날의 시'는 1992년에 발매한 피노키오의 공식 데뷔작(피노키오는 김성면이 밴드에 들어오기 전인 1990년에 미발표 앨범 'Pinocchio'를 만든 적이 있다)에 실린 곡으로 노랫말과 곡 모두를 김성면이 썼다. 김성면과 함께 밴드의 메인 송라이터였던 안정훈의 '먼 기억처럼', 오태호가 준 '사랑과 우정 사이'와 함께 앨범을 대표한 발라드 넘버로, 김성면은 밴드의 키보디스트 이은호가 연주하던 팝송에서 영감을 받아 쓴 곡이라고 나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김성면이 솔로 활동을 전제로 입대 전 짧게 몸담은 피노키오는 5인조였다. 보컬에 김성면, 기타에 안정훈, 베이시스트 김민철, 키보디스트 이은호, 그리고 드럼엔 김의찬이 앉았다. 안정훈은 스튜디오에서 큰 활약을 펼쳤으나 앨범 발표 후엔 이태섭이 그 자릴 대신 했다. 이태섭은 나중에 K2에서 김성면을 돕고 안정훈은 임재욱과 포지션을 결성한다. 드러머 겸 팀 리더였던 김의찬은 1995년 뇌사 판정을 받아 세상을 떠 모두를 안타깝게 했는데, 떠난 그의 나이 고작 26세였기에 더 그랬다. 김의찬은 피노키오의 공식 2집(실제론 3집) 히트곡 '시간이 흐른 뒤에'를 작사, 작곡한 재능있는 송라이터이기도 했다.
총 10트랙이 담긴 피노키오의 데뷔작은 전체적으로 무난한 작품이었다. 소속사가 드라마 '질투' 주제곡 같은 걸 만들어야 한다고 해 울며 겨자 먹기로 쓴 안정훈의 '다시 만난 너에게'를 비롯해 1994년 대한민국 노래방에서 가장 많이 불린 '사랑과 우정 사이', 부활을 떠난 이승철 솔로 초창기에 큰 역할을 한 싱어송라이터 박광현이 준 '달리기', 이송이라는 작곡가의 곡에 안정훈이 가사를 얹은 '소중한 너의 모습' 등 곡 하나하나가 저마다 매력을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이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곡은 역시 김성면이 쓴 '어느 가을날의 시'였다.
곡은 반짝이는 피아노 연주로 문을 연다. 이어 살짝 거친 김성면의 목소리가 들어오고 그 위에서 곱디고운 시어(詩語)들이 만추의 낙엽 냄새를 피워 낸다. 가사와 멜로디, 그것들을 어우른 노래가 곡의 주제를 완벽하게 음미하는 이 숨겨진 명 발라드는 이후 김성면이 써내는 '소유하지 않은 사랑', '그녀의 연인에게 #Story 1'의 예고편이었다. 분명 4분 42초 안에서 한 계절을 살아낼 수 있다는 건 음악만이 가진 힘일 것이다. 나는 처음 들었던 중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 곡을 피노키오 최고 곡 아니, 김성면의 최고 곡이라 여기고 있다. 누가 뭐라 해도 나에겐 그렇다. 아마 당신에게도 그런 곡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