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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Nov 26. 2023

책으로 만나는 보석 같은 소프트록 듀오 '카펜터스'

<카펜터스> 이경준


한국엔 베스트 앨범으로 장사가 된 그룹들이 몇 있다. 퀸, 아바, 스콜피온스, 그리고 카펜터스다. 그것들은 종류도 다양해 이들의 베스트 앨범으로 베스트 앨범을 만들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베스트 앨범은 양날의 검이다. 입문자에게 그 아티스트를 소개해주는 좋은 수단인 동시에 입문자들에게 특정 곡만을 기억시킨다. 무엇보다 베스트 앨범의 가장 큰 맹점은 인기가 많아 다품종 컴필레이션으로 소비된 탓에 본래 가치와 달리 아티스트와 음악을 가볍게 여기게끔 한다는 점이다. 소개에서 끝나야 하는데 소개가 끝이 되어버리면서 이들은 베스트 앨범에 들어있는 곡으로만 주구장창 기억되는 것이다. 이경준의 ‘카펜터스’는 그런 맹점에 반격을 가하는 책이다. 


음악 평론가에겐 두 가지 역할이 있다고 믿는다. 하나는 요즘(트렌디) 음악/음악가에 대한 분석과 전달, 또 하나는 지나간 음악/음악가에 대한 분석과 전달이다. 길을 평균 이상 걸어온 평론가들에겐 이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게 마련. 물론 둘 다를 ‘대략’ 챙길 순 있겠지만 둘을 ‘제대로’ 하려는 건 한정된 시간 등 물리적 한계만으로도 이미 과욕이다. 이경준은 둘 중 후자 쪽을 챙기며 지난 몇 년을 달려온 평론가다. 블러와 오아시스, 딥 퍼플, 주다스 프리스트, 그리고 이번엔 카펜터스다. 그는 지난 책들과 마찬가지로 아티스트와 관련한 방대한 원문 자료를 잘 다듬어 먹기 좋게 차려냈고 그들 음악을 또 자신만의 시선으로 비평해냈다. 너무 일찍 도착한 탓에 뒤늦은 슈퍼스타들의 헌정 앨범을 받은 카펜터스의 현재 위치를 정확히 조명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그중 백미다.


모두가 알듯 카펜터스는 남매 듀오다. 오빠 리처드는 누구나 인정하는 훌륭한 작곡가 겸 편곡가, 피아니스트이자 프로듀서였고 동생 캐런은 신이 내린 콘트랄토 보이스를 장착한 천재 싱어였다. 카펜터스의 음악, 구체적으론 캐런 카펜터의 노래는 슬픔과 기쁨을 아울러 피로한 우리를 위로해 주었다. 부는 동안엔 망각했다 멈추면 그 소중함을 알게 되는 초여름 산들바람 같은 캐런의 편안한 음색은 듣는 사람이 아무런 부담도 걱정도 없게 그저 빠져들고 젖어들도록 만든다. 마치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말을 걸어오는 느낌이다. 이경준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고 재현할 수 없는 그 느낌이 남긴 위대함을 책 구석구석에서 추억하고 환기시킨다.



캐런은 또한 훌륭한 드러머였다. 책에서도 한 챕터를 할애해 다루고 있듯 여자가 드럼을 연주하는 걸 가만 두고 못 봤던 보수적인 시절 그걸 해내며 노래한 캐런을 우린 기억해야 한다. 3만 5천여 세션을 소화한 명 드러머 할 블레인도 인정한 최고의 드러머였던 캐런의 범상치 않은 연주는 “긴장을 푼 자연스러운 몸 동작”을 자신의 드럼 테크닉 비결이라고 말한 조 모렐로의 훌륭한 유산이었고, 영화 ‘위플래쉬’에서 서사의 구심점이 됐던 버디 리치의 묵직한 반영이었다. 혹 시간이 된다면 유튜브로 캐런의 실력을 꼭 확인해보시길.


책은 ‘카펜터스’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내용의 비중은 역시 캐런 쪽으로 기울어 있다. 오빠 리처드의 아티스트로서 질투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것도, 결혼과 거식증의 비극 끝에 요절한 캐런의 덧없는 인생에 독자가 눈시울을 붉힐 수 밖에 없는 것도 그래서다. 이경준은 이 책이 드라마처럼 읽히길 바란다고 했는데 읽어본 바 저자의 의도는 무리없이 적중한 듯 보인다.


요컨대 국내 많은 팝 팬들에게 베스트 앨범으로 알려진 그들이 진정한 베스트였다는 걸 이 책은 카펜터스의 노래처럼 조곤조곤 짚어준다. 다그치지 않고 담백하게 이야기를 펼친다. 그런 면에선 책도 음악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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