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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Aug 24. 2023

우리 글로 쓴 '메탈갓' 이야기

<주다스 프리스트: 더 사운드 오브 앵거> 이경준


고등학생 때 주다스 프리스트를 처음 들었다. 나를 철(鐵)의 세계로 안내한 앨범은 'Painkiller' 테이프. 시작부터 들이친 스콧 트래비스의 전광석화 콤비네이션 드럼 솔로에 오금을 저린 나는 다음 곡 'Hell Patrol'부터 끝 곡 'One Shot at Glory'까지 한 순간도 방심을 허락지 않는 이 앨범에 그대로 마음을 빼앗겼다. 운좋게 명반부터 접한 덕에 주다스와 나의 인연은 단발성에 그치지 않았다.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 어린 리스너들이 대게 그렇듯 '뭐 더 없나' 레코드 가게를 뒤지기 시작한 나는 내가 다섯 살 때 나온 'Screaming for Vengeance'와 일곱 살 때 나온 'Defenders of the Faith'를 만나며 완전히 주다스 음악의 포로가 된다. 심지어 대학생이 되고선 처음 잡아본 드럼 스틱으로 'Living After Midnight'를 연주하기도 했다. 주다스는 내 일상이었다.


이후 메뉴는 'Sin After Sin'과 'Stained Class'로 뻗쳤고 역행은 당연히 'Rocka Rolla'와 'Sad Wings of Destiny'까지 거침없이 이어졌다. 주다스를 알고 처음 만난 '신보'였던 1997년 'Jugulator'의 감동은 따로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특히 팀 리퍼 오웬스가 부른 'Death Row'와 'Burn in Hell'이라는 원투 펀치는 롭 핼퍼드의 부재가 반드시 주다스의 끝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해줬다. 결국 주다스엔 핼퍼드가 최종 안착했지만 나는 다우닝이 따로 차린 케이케이스 프리스트에 리퍼 오웬스가 합류한 일을 크게 지지하는 쪽이다. 'Hellfire Thunderbolt'를 들어보았는가. 아직이라면 당장 유튜브로 달려가라. 주다스의 정통은 사실상 이들이 잇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지난 20여년 간 그렇게 주다스를 탐닉해왔다.


내가 태어나 처음 들었던 주다스 프리스트. 당시 신임 드러머 스콧 트래비스의 드럼 인트로가 압권이다.


헤비메탈 밴드 슬레이어의 케리 킹은 주다스의 초기 명반 'Stained Class'를 "역사적으로 가장 완전한 프리스트 앨범"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마치 'Reign in Blood'라는 앨범을 통해 슬레이어 사운드가 완성된 것과 같은 뜻에서 완전함이라고 킹은 덧붙였다. 메탈리카의 제임스 헷필드도 AC/DC와 주다스 프리스트를 듣고 리듬 기타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비단 이들 뿐이겠는가. 주다스 이후 거의 모든 헤비메탈 밴드들이 주다스의 그늘에 머물렀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즉 블랙 사바스가 시초라면 주다스는 헤비메탈의 본편이었다. 구체화였고 완성이었다. 실제 핼퍼드의 샤우팅 창법은 그대로 헤비메탈 창법이 되었으며, 글렌과 케이케이의 트윈 기타는 또한 헤비메탈 기타의 공식이 되었다. 주다스가 없었다면 헤비메탈은 지금도 레드 제플린의 자장에 머물러 있을지도 모른다. 이건 하나의 업적이라 할 만하다.


그런 나를 포함한 국내 주다스 프리스트 팬들에게 최근 반가운 책 한 권이 도착했다. 평론가 이경준이 쓴 '주다스 프리스트: 더 사운드 오브 앵거'다. 번역가이기도 한 그가 직접 해외 록 밴드 전기를 집필한 건 '블러, 오아시스', '딥 퍼플'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이경준은 이번에도 해외 원서와 웹, 잡지들을 두루 취재해 우리가 산발적으로 알았던 주다스 지식을 봉합해주고 부정확한 정보를 바로 잡아줌과 동시에 몰랐던 주다스 지식을 넌지시 건넨다. 거기엔 핼퍼드의 커밍아웃 이야기와 병마에 꺾인 글렌의 현재, 범작 'Demolition'에서 신해철의 곡을 천하의 메탈갓이 표절한 이야기 등이 포함돼 있다.


대학 새내기 때 들어간 스쿨 밴드에서 메탈리카의 'For Whom the Bell Tolls'와 이 곡을 첫 연습곡 삼아 연주했다. 내 파트는 드럼이었다.


저자는 멤버들이 자란 환경과 밴드 결성 과정부터 시작해 정규 앨범들을 한 장씩 추적하며 각 작품을 둘러싼 상황, 사건을 재구성해 독자를 자신의 글 안으로 끌어들인다. 전기(傳記)라는 전제가 붙어 자칫 밴드의 단순 역사 훑기에서 그쳤으리라 판단할 수도 있는데, 이경준은 그 수준을 넘어 지난 반세기 동안 주다스가 발표한 거의 모든 곡들에 자신의 생각을 첨부했다. 팩트를 기본으로 평론에 기반한 책이란 얘기다. 물론 그의 문체가 원래부터 군더더기가 없는 스타일이라 가독성은 훌륭하다. 있어야 할 것만 있고 없어도 될 건 없다.


과거엔 팬들이 정보를 얻을 창구가 한정돼 있던 탓에 영어 소스를 손에 넣을 수 있던 평론가의 말과 글이나 일본 음악지 등을 참고한 국내 잡지에만 의지해야 했다. 이젠 세상이 달라졌다. 국내 평론가들이 온오프라인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파편적인 정보들을 그러모아 자신의 비평까지 보태 소장할 만한 책으로 가공해 내놓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해진 것이다. 이경준은 그 작업을 꾸준히 해왔고 앞으로도 평생의 사명으로 여겨 해나갈 것으로 안다. 나도 여기 동참해볼 생각인데, 책으로 나올 지는 미지수지만 내년 정도에 온라인에선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선택한 첫 번째 주제는 메탈리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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