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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un 30. 2023

'결정하는 인간'들의 세계

<정치인> 정진영


이 소설은 한마디로 정치인(성이 정 씨고 이름이 치인이다)이라는 사람이 정치인이 되어 정치인들을 물 먹이는 이야기다. 언론사('침묵주의보')와 원전 전선업체('젠가')에 이어 입법 기관인 국회까지 다다른 이른바 '조직 3부작'. 이를 통해 독자들은 다소 생소했을 기업 조직의 내막, 하지만 본질적으론 도긴개긴인 그 바닥의 생리(예컨대 "조직에서 뒷배 없이 설치는" 인간은 없다는 사실 등)를 조금씩 알아왔다. 그 속엔 비리와 부조리를 파헤치려 총대를 메는 주인공이 있고 그 주위는 갈등과 연대로 얽히는 등장인물들로 빼곡하다. 무엇보다 정진영의 소설엔 '나쁜 놈'들이 반드시 등장하는데 이번엔 국회의원 집단이다.


<정치인>은 국민들이 국회의원들에게 믿고(?) 맡기는 법안 처리가 얼마나 음지에서 이뤄지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책 뒷면에 쓰여있듯, 왜 국회라는 곳이 공익의 대변과 부당한 이익 추구가 충돌하는 장이며 그곳이 국민의 현실 속 삶과 멀어져 가는 오늘날 정치의 현주소가 됐는지를 <정치인>은 한국 소설이 거의 외면해 온 국회 입법 현장을 통해 고발한다. 그 시작은 식당에서 비서 조인트를 까는 국회의원, 그리고 조인트 까인 비서가 배달 라이더에게 갑질하는 모습에서 비롯한다. 물론 이건 소소한 에피소드일 뿐 '큰 것'들은 넘기는 책장의 부피에 비례해 점점 덩이가 커지며 이야기를 추동하고 있는데 가령 기재부 제1차관이 "대기업의 입법 민원 창구"로서 청와대와 여권 실세 인사 청탁을 도맡아 처리하는 상황이나 고위직 공무원이 사사로운 자식 일자리와 (핀셋) 법안을 맞바꾸려는 모습이 그렇다. 여기에 공공기관장이라는 '꿀보직'이 전국 340개나 존재한다는 사실과 지방선거 때만 되면 업적용으로 쓸 국비 확보 문제로 꾸역꾸역 세종시로 모여드는 지자체장들의 분투가 첨가되며 국민들은 잘 모르는 정치인들의 세계가 조금씩 냄새나는 알맹이를 드러내 보인다.


이 소설의 가장 인상적인 성취는 역시 법안이 법으로 완성되는 과정을 대한민국 국민인 독자가 간접이되 구체적으로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상 국민 대부분은 국회가 법을 만드는 곳이라는 것까지만 알지, 그 이상은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다. 법안 요지를 정리해 국회사무처 법제실에 입안을 의뢰하는 절차나 정부입법이 의원입법보다 더 까다롭다는 사실을 먹고살기 바쁜 국민들은 잘 모르고 산다. 만들기도 어려운 법은 폐지하기는 더 어렵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의원의 법안 발의 건수가 의정 활동 성실성의 척도라는 이유로 만연하는 법안 발의 꼼수 및 소수파의 지나친 발목 잡기를 막고 상임위에서 예결이 늦어질 때를 대비해 만든 국회의장 고유 권한인 '직권상정'의 의미를 알고 있었을 리는 더 희박하다.


작가 스스로가 기자 출신에다 이미 그 주제를 소설로 한 번 다뤘기 때문인지 언론의 생태계는 <정치인>에서도 스토리를 밀고 가는 저류로서 꿈틀댄다. 예컨대 같은 회사 출신 선배를 윗선에 보고도 없이 저격했다가 데스크의 추궁을 받는 기자가 나오고, 그 (정치부) 기자가 민생에 큰 영향을 주는 상임위 취재 대신 쉬 눈에 띈다는 이유로(한마디로 장사가 된다는 이유로) 정당 취재에만 매달리는 현실을 소설은 스치듯 짚고 간다. 그러면서 기자는 취재 현장에서 형동생 사이가 된 주인공에게 신세 한탄을 하는데


언론사는 공적 역할을 하는 기업이고 기자는 그 기업에 고용된 직장인이다, 즉 기자는 사건이라는 원료로 기사라는 물건을 만드는 노동자다, 그러니 월급 받는 기자가 언론사 논조에 반하는 기사 쓰기는 힘든 법이다, 또 요즘 세상에 유료 구독자는 매우 드물기에 기업 광고비로 먹고사는 언론사는 부득이 가진 자의 시선에 맞출 수밖에 없다

고 그는 자조하는 것이다.


'출간 전 드라마 계약 완료'라는 띠지가 말해주듯 이 소설은 영상적인 묘사가 많다. 읽고 있으면 드라마 <시그널>이나 임순례의 <제보자>, 알란 파큘라의 <대통령의 음모> 같은 파트너, 팀플레이를 다룬 영화들의 호흡과 분위기가 곳곳에서 묻어난다. 이것이 소설로서 장점일지 단점일지는 묘사 방식에 대한 읽는 사람의 취향 문제이지, 소설에서 묘사의 디테일을 두고 좋다 나쁘다 말할 문제는 아닐 것 같다.


또 하나 정진영 소설에는 일상을 살며 깊이 음미해 볼 문장들이 간간이 등장하는데 <정치인>에서도 이야기 사이사이 새겨둘 만한 말들이 꽤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기쁨은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전염된다."


"자리는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드러낸다."


"실수를 많이 해봤기 때문에 명사수가 되는 것이고, 그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가져봤기 때문에 명사수일 수 있는 것이다."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대화의 주도권을 쥔다."


"남이 나보다 잘났으면 어떻게든 끌어내리려 하는 '서민'들. 그런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타인을 더 함부로 대한다. 그들은 작은 이익에 지나치게 민감하고 공격적이며 피해의식에 젖어 있다."


"노는 부자는 없다."


그리고 "적을 상대하는 최고의 전략은 같은 편으로 두는 것" 같은 <대부>적인 성찰 등은 독자가 잠시 페이지 넘기기를 멈추고 홀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지점이다.


돈 앞에선 여야는커녕 진보도 보수도 없구나


책에도 쓰여있듯 정치는 결정하고 책임지는 행위다.  결정과 책임은 우리네 삶을 좌지우지한다. 다시 4 만에 임박한 총선. 당신은 누굴 뽑겠는가. 선거 홍보물을 펼치기 전 <정치인>을 먼저 펼쳐봐도 괜찮을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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