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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Nov 10. 2023

5060디바들의 걸그룹도전기가 주는 쾌감, '골든걸스'


골든 걸스. 일단 '코스비 가족 만세'에 이어 방영된 80년대 미국 시트콤 제목과 같다. 뚜껑을 열어보니 제목만 같은 게 아니었다. 은퇴한 60대 여성 세 명과 80대 여성 한 명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시트콤과 비슷하게 이번 '골든 걸스'는 50대 여성 세 명과 60대 여성 한 명을 주인공으로 설정했다. 단, 인생의 온갖 걸 경험해 아는 시트콤의 네 여성은 자신의 나이와 입장에서 할 말을 모두 쏟아내는 반면, 한국의 '골든 걸스'에선 네 여성이 자신의 나이와 입장을 잠시 미뤄두고 케이팝 걸그룹이라는 미션에 도전한다는 데서 둘은 다르다. 그 네 여성은 인순이, 신효범, 박미경, 이은미였다. 80~90년대 가요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눈을 의심할 이름과 프로젝트다.


이 무모해 보이는 프로젝트는 JYP 총수 박진영의 머리에서 나왔다. 그는 오래전부터 티나 터너, 패티 라벨, 휘트니 휴스턴 같은 80~90년대 여성 솔 가수들로 그룹을 만들어 직접 프로듀싱해보고 싶었다. 한국에서 그런 싱어들을 꼽아 보니 가수로서 약점이 없는 인순이, 고음과 춤이 다 되는 박미경, 서정적인 폭발력을 갖춘 신효범, 거칠고 충동적인 날것의 이은미가 해답처럼 떠올랐다. 자신이 떠올린 아이디어에 박진영은 스스로 소름을 느낀다. 그는 곧 일을 추진했다. 보통 방송국이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출연자를 섭외하는 관행을 뒤집어 이번엔 출연자 쪽에서 방송국(KBS)에 기획을 제안해 '골든 걸스'라는 프로그램을 이끌어 낸 것이다. 과연 시가총액 5조 원 대 회사 대표다운 기획력과 추진력이다.


물론 이건 시작이다. 박진영은 넘어야 할 산을 아직 오르지도 않았다. 산행의 정체는 바로 '섭외'다. 계획만 있고 실행은 미지수인 아이디어를 들고 박진영은 고수들을 모으러 다니는 팀업 무비처럼 자신이 염두에 둔 베테랑 가수들을 한 명씩 만나러 나선다. 물론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모두가 관심은 가지만 '나이 때문에 힘들 거다', '자신이 없다'라고 했다. 특히 멤버들이 섭외하기 가장 힘들 것이라고 말한 이은미는 "정해진 움직임을 해본 일이 없다"는 이유로 누구보다 완고하게 고사 의지를 내비치며 박진영을 긴장시켰다. 물론 마지막엔 그의 탁월한 화술과 부단한 노력으로 모두를 설득해 '골든 걸스'는 겨우 첫발을 뗀다. 그리고 프로듀서는 멤버들에게 약속했다. 당신들에게 어울리는 맞춤형 트렌디 히트곡을 반드시 만들어 내겠다고. 그 곡을 표현할 춤을 위해 박진영은 이미 안무가 모니카까지 섭외해둔 상태였다.



방송은 이때부터 흥미진진 해진다. 우선 네 사람에게 '걸그룹 노래 불러보기'라는 미션이 주어졌다. 이 미션은 섭외 현장에서 섭외가 끝나고 2주라는 연습 시간을 조건으로 박진영이 각자에게 부탁해 둔 터였다. 그의 표현대로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노랫말을 시나 수필처럼 전달하는" 신효범에겐 트와이스의 'Feel Special'이 갔다. 프로는 역시 프로인지라 신효범은 파를 다듬으며 연습하는 적극성을 보였는데, 그는 "발라드 가수인데 춤을 시켰어?"라는 세간의 편견을 이 곡으로 깨고 싶었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이는 "저 나이에 저걸 하네?"가 아닌 "인순이가 저걸 하네?"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한 인순이의 마음과 매한가지였다. 박미경은 아이브의 'I Am'을 받았다. 넷 중 지금의 케이팝과 가장 비슷한 장르를 했던 그에게 박진영이 이 곡을 선곡해준 이유는 그의 고음이 아직 살아 있는지를 보기 위해서였다. 맏언니이면서 막내 같은 '맏내' 인순이는 뉴진스의 'Hype Boy'를 불러야 했는데, 이 역시 곡이 가진 복잡하고 정교한 리듬을 과연 소화해 낼 수 있는지를 보려 한 프로듀서의 의중이 반영된 선곡이었다. 그리고 케이팝과 가장 거리가 먼 것으로 여겨진 이은미에겐 청하의 '벌써 12시'가 갔다. 섭외 때부터 만만치 않았던 그는 역시나 노랫말에 공감하기 힘들어 시작부터 어려워했다. "굳어진 몸뚱아리"가 민폐라며 계속 그룹을 이탈하려는 이은미는 줄곧 '골든 걸스'의 가장 불안한 존재로 각인되며 되레 프로의 중심으로 들어온다.


그래서 이들의 실력은? 나도 보면서 걱정했지만 그건 기우였다. 이들은 프로였고, 그래서 주어진 건 어떻게든 해냈다. 섭외 때 '못하겠다'라고 말한 건 그냥 해본 말이었다. 그들은 자신에게 온 까마득한 후배들의 노래를 밴드 실반주 아래 온전히 자신들의 노래로 만들며 박진영을 흡족하게 했다. 보면 알겠지만 박진영은 이 프로그램 내내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만큼 본인의 기획이 성사된 것이 기쁘고 그 기획 아래 모인 멤버들이 따라주는 모습에 만족스러운 것일 테다. 이제 2회째를 마친 '골든 걸스'는 그룹으로서 통일감(합맞추기)을 위해 이들에게 두 번째 미션을 주고 그들의 합숙과 연습 과정을 보여준 상태에서 멈춰 있다. 이 글을 다 쓴 오늘 이은'미'와 박'미'경의 듀오 '미미 시스터즈'는 'Twinkle'을 부를 것이다(이은미는 무려 핑크색 의상을 입는다!). 그리고 '신'효범과 '인'순이의 유닛 '신인 시스터즈'는 씨스타의 'Touch My Body' 퍼포먼스를 시청자 앞에서 펼치리라.



'골든 걸스' 예능과 다큐멘터리를 오가며 음악으론 최대 반세기를 넘나드는 세대의 만남, 그에 따른 장르의 소통을 이끌어낸  괜찮은 프로그램이다. 엔터테인먼트의 본질이 '즐기는 '임을 감안할  이만한 프로가 없다 싶을 정도로 시청자를 빨아들이는 힘이 있다. 참신한 기획과 그걸 받쳐주는 감각적인 연출의 콜라보에 점수를 주고 싶다. 그러나 한편으론 정말 '레전드 디바'들이 이렇게 밖에 소비될  없는가 하는 불편한 생각도 드는  어쩔 수가 없다. 사실 이들은 비슷한 연배의 해외 디바들이 받는 대우를 국내에선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 장르  개가 '국민'이란 전제의 불특정 대중 취향을 규정해 버리는 상황에서 과거의 거장들은 안개처럼 스러져 가는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의 현실이다. 물론 이렇게라도 대중의 기억에서 환기되고 무대로 소환되는  분명 좋은 일이긴 한데, 뭔가 가슴 한구석이 답답해진다.


이은미는 박진영이 자신을 섭외하러 왔을 때 과거 박미경, 신효범과 꼭 함께 무대를 하자 했다고 한다. 그땐 금방이라도 이뤄질 듯했는데 세월에 흐지부지 됐다. 까다로운 이은미가 '골든 걸스'에 합류한 건 그 두 친구와 존경하는 선배의 목소리를 포기하기 어려워서였다. 부디 이 미션들을 끝까지 잘 치러내고 이은미의 바람대로 진짜 디바들의 무대도 볼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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