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대 Nov 03. 2023

가을 한복판에 선 희대의 록 발라드

'Novermber Rain' Guns N' Roses


90년대 초반. 세상이 아직 록의 시대였을 때 건스 앤 로지스(GN'R)는 메탈리카, 본 조비, 너바나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밴드였다. 레드 제플린과 에어로스미스, 퀸을 펑크에 버무려낸 이 희대의 로큰롤 밴드는 1991년 두 파트로 나눠 발매한 'Use Your Illusion'을 빌보드 앨범 차트 1, 2위에 나란히 올리며 하드록/헤비메탈의 마지막 사자후를 날렸다. 강렬한 파랑과 노랑으로 나눠 처리한 'Use Your Illusion' 커버 아트는 르네상스 거장 라파엘로가 교황 율리우스 2세의 개인 서재를 꾸미기 위해 그린 프레스코 벽화 '아테네 학당'의 부분, 즉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는 이름 모를 철학자를 화가 겸 작곡가인 마크 코스타비가 다시 그린 것이었다. 'November Rain'은 이 역사적인 더블 앨범 중 첫 번째 작품(노란 앨범)에 실린 곡으로, 한국에선 언젠가부터 '11월 비 내리는 날'만 되면 라디오에서 단골로 흘러나오는 노래가 됐다. 하지만 'November Rain'은 비의 노래이면서 11월의 노래이기도 하다. 11월은 가을이란 계절의 한복판. 이 노래는 그 계절의 중심에서 하염없이 내린 춥고 쓸쓸하고 구슬픈 희대의 록 발라드였다.


'November Rain'은 밴드의 프런트맨 액슬 로즈가 작사, 작곡했다. 최초 버전이 25분짜리였다는 이 곡은 1987년 데뷔작 'Appetite For Destruction'을 녹음하기 전 스코틀랜드 하드록 밴드 나자레스의 매니 찰튼(기타)과 녹음한 18분짜리 버전도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노랫말의 배경은 뮤지션 겸 작가인 델 제임스의 단편 소설 'Without You'에 기반한 것으로, 내용은 여자 친구의 자살을 이겨내기 위한 블루스 뮤지션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앤디 모라한이 연출한 뮤직비디오에 각색돼 담겼는데 뮤직비디오 속 신부는 모델 스테파니 시모어로, GN'R의 또 다른 히트 발라드 'Don't Cry' 영상에도 출연한 그는 당시 액슬의 여자 친구였다(두 사람은 1993년에 헤어졌다.) 실제 연인이 가상 부부로 출연한 'November Rain' 뮤비의 제작비는 그 시절 업계에서 가장 비쌌다고 하는데 총예산만 150만 달러(우리 돈으로 약 18억원)였고 이중 10%가 '사막 예배당'을 짓는데 쓰였다고 한다. 이 영상의 하이라이트를 책임지는 콘서트 장면은 모두 연출된 것이지만 연주 자체는 밴드가 실제 한 것이었다. 참고로 앤디 모라한은 GN'R의 다른 히트곡들, 이를테면 'Don't Cry'와 'Estranged', 제임스 카메론의 '터미네이터 2'에 삽입된 'You Could Be Mine'을 비롯해 조지 마이클의 'Faith'와 'Father  Figure', 브라이언 아담스의 '(Everything I Do) I Do It for You', 밴 헤일런의 'Poundcake', 마이클 잭슨의 'Give In To Me' 뮤직비디오를 감독한 그 바닥에선 제법 유명 인사였다.



GN'R와 'November Rain'을 얘기하면서 기타리스트 슬래쉬를 빼고 갈 순 없다. 그는 지미 페이지와 함께 기타리스트를 꿈꾸던 지구의 록 키드들에게 깁슨 레스폴을 가장 많이 집어들게 만든 인물이었다. 물론 일가를 이룬 기타리스트들이 대부분 그랬듯 그가 쏟아내는 프레이즈에는 자신만의 지문이 있었고, 톤에도 역시 다른 사람이 흉내낼 수 없는 걸쭉함이 담뿍 묻어났다. 슬래쉬는 무엇보다 남다른 외관과 퍼포먼스로 큰 사랑을 받았다. 마술사가 쓸 법한 리테일 슬럿(Retail Slut) 모자에 검은 가죽 바지, 록스타로서 신비감을 더해주는 미러 에비에이터 선글라스, 그리고 입에 물거나 기타 줄 사이에 꽂아두는 담배는 그 자체 고뇌하는 예술인의 무엇이었다. 당연히 이 모든 것들의 기저에는 그의 출중한 기타 실력이 있다. 실제 GN'R의 히트곡들 대부분에는 화려하거나 강렬한 슬래쉬의 리프/솔로가 예외없이 첨부돼 있었고, 그 규칙 아닌 규칙은 'November Rain'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슬래쉬는 이 곡에서 도합 세 차례 기타 솔로를 펼치는데 3분 56초에서 시작해 약 50초 동안 흐르는 첫 번째 것은 그중 백미라 할 수 있다. 엑스 재팬의 'Endless Rain', 메탈리카의 ‘The Unforgiven’, 익스트림의 'Song For Love', 오지 오스본 밴드의 'Goodbye To Romance' 기타 솔로와 함께 내가 다섯 손가락에 꼽는 이 불멸의 록 발라드 기타 솔로는 그러나 역시 앞서 말한 뮤비 속 사막 예배당을 등진 채 모래 바람 맞아가며 펼치는 슬래쉬의 퍼포먼스와 함께 봐야만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50초가 너무 짧게 느껴지는 이 아름다운 솔로가 끝나고 1분 여 뒤 슬래쉬의 기타는 아직 할 얘기가 더 남은 듯 5분 7초부터 30초 정도 두 번째 솔로를 흘린 뒤 7분 10초부터는 1분 10여 초간 곡이 빗소리에 묻힐 때까지 격정적인 솔로를 한 번 더 펼친다. 그 시절 록팬들은 'November Rain'의 이 기타 솔로에 너나 없이 열광 했고 이후에도 이 노래는 그 솔로와 함께 회자됐다. 곡은 비록 액슬이 썼을지언정 그 곡의 인기는 슬래쉬에 빚진 바가 컸던 셈이다.



그리고 드럼. 밴드는 당시 'Use Your Illusion' 녹음을 위해 새로운 드러머를 영입 했으니 바로 맷 소럼이다. 이후 다이아몬드 레코드가 되는 GN'R의 데뷔작에서 드럼을 쳤던 스티븐 애들러가 날것의 비트를 들려준 반면 맷은 그보다 타이트하고 웅장한 톤과 연주를 지향했다. 사실 'November Rain'과 'Don't Cry', 'Estranged'는 'Use Your Illusion'을 대표한 3부작 발라드로, 그래서였는지 기교보단 분위기에 충실했던 맷은 이 세 곡에서 거의 같은 드럼 필인을 구사했다. 그런데 이 안이한(?) 연주를 못마땅한 이가 있었는데 바로 드림 시어터의 드러머 마이크 포트노이였다. 하긴, 독이 바짝 오른 정글 같은 리듬 라인을 가지 친 듯 깔끔하게 정리해버리기로 유명했던 불세출 테크니션 입장에선 그럴 만도 했다. 같은 록 발라드여도 'Another Day' 같은 곡에서 마이크가 들려준 플레이를 들어본다면 그의 한숨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간같이'로 '인간가치'를 위협하는 AI작곡가의 역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