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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May 17. 2024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는 노래들

이 글은 오운문화재단 격월지 <살맛웹진> 2024년 5-6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수관기피(樹冠忌避). 햇빛을 고루 쓰기 힘든 숲 환경에서 식물 공동체가 생존하는 전략을 뜻하는 말이다. 한마디로 더불어 살기 위해 조금씩 불편함을 감수하는 식물들의 지혜란 얘기다. 언젠가 중국 철학자 장자는 “저것은 이것에서, 이것은 저것에서 나온다”는 방생(方生)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방생’이란 배를 나란히 둔다는 말로 영어로는 상호의존(interdependence)이다. 이것과 저것이 공존하려는 성질을 띤다는 면에서 방생은 수관기피와 같은 맥락에 있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 식으로 말하자면 망치로 박은 못, 못에 거는 옷걸이, 옷걸이에 걸친 옷이라는 ‘도구의 연관성’이 곧 방생이요 수관기피인 것이다.


이는 음악에도 적용된다. 음악은 하나의 음, 하나의 박자, 하나의 말(가사)로 성립할 수 없다. 음과 음, 박자와 박자, 말과 말의 조화는 물론 음, 박자, 말 사이의 연동을 통해 음악은 비로소 숨을 쉬고 온전한 예술로 설 수 있다. 음악에서 홀로서기란 음악의 소멸을 보리란 말과 같다. ‘혼자’보단 ‘함께’를, ‘나만’이 아닌 ‘모두’를 지향해야 음악은 살 수 있다. 지금 소개 할 곡들 역시 그 음악의 아름다운 전제를 다룬다. 인간 세상이 간직해 가야 할 공동체의 생존 또는 상호의존의 노래들. ‘음악의 수관기피’를 들어볼 시간이다.


  

‘We Are the World’ Various Artists (1985, Columbia/CBS)     




1985년 1월 28일 새벽.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에 있는 A&M 스튜디오에 당대의 팝스타 21명과 코러스 가수 23명까지 도합 44명이 ‘위 아 더 월드’ 프로젝트를 위해 모였다. 퀸시 존스가 프로듀서 겸 지휘자로 중심에 서고 이 기획에 영감을 준 ‘밴드 에이드’의 밥 겔도프가 현장에 와 자신이 경험한 에티오피아의 참담한 기근을 전한다. 수막염, 말라리아, 장티푸스 같은 질병들이 공기 중에 떠다니는 그곳은 밀가루 15포대로 27,500 명을 먹여 살려야 하는 말 그대로 ‘생지옥’이었다. 겔도프의 말을 경청한 스타들은 마침내 그곳에 모인 이유를 알게 됐고 노래에 진심을 담아 부를 수 있었다.     



내일로 가는 길’ 푸른하늘 (1991, 동아기획)    




90년대 초 학창시절과 청춘을 보낸 사람들은 푸른하늘의 따뜻한 가사와 멜로디에 한 번쯤은 잠겨본 적이 있을 것이다. 거기엔 사랑 노래도 있었고 젊은 날의 추억과 고민을 어루만지던 노래도 있었다. ‘내일로 가는 길’은 그런 ‘나’의 내면에서 조금 방향을 틀어 ‘우리’의 문제를 바라보자는 노래였다. 그저 밝게만 보이는 세상에도 그늘진 곳은 있게 마련이라는, 그래서 사랑과 베풂으로 밤과 낮이 함께 어울리는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이 노래의 메시지는 곡이 발표되고 33년이 지난 지금에도 묵직한 울림을 준다.     



빨주노초파남보’ 옥상달빛 (2011, 브라우니/파스텔뮤직)    

 



2011년 도시의 열기에 지친 지구를 구하자는 취지에서 기획, 발매한 환경보호 앨범 ‘세이브 더 에어: 그린 콘서트’의 문을 깨끗하고 단정한 왈츠 통기타로 열었던 곡이다. ‘동요 같은 팝’을 들려주는 옥상달빛의 장기가 온전히 살아있는 이 곡은 다음 세대를 위해 지금 세대가 환경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어렵지 않게, 하지만 모두가 새겨야 할 의무로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잔잔한 힘을 발휘했다. ‘지금’과 ‘앞으로’의 공존을 생각하게 하는 노래다.


     

‘Love Wins All’ 아이유 (2024, EDAM 엔터테인먼트)     




이 노래의 주제는 차별 없는 세상이다. 가사를 쓰고 노래를 부른 아이유는 “사랑하기를 방해하는 세상에서 끝까지 사랑하려 애쓰는 이들의 이야기”라고 이 곡을 소개했다. 뮤직비디오에는 그래서 말을 하지 못하는 여자(아이유)와 한쪽 눈이 불편한 남자(뷔)가 나와 세상의 편견에 맞서 사랑을 지켜내려 고군분투 한다. 하지만 힘에 부친 듯 두 사람은 결국 사라지고 그들의 부재는 역으로 저들을 대하는 우리의 의식 전환을 종용하는 듯 강한 여운을 남긴다. 제목처럼 사랑은 모든 걸 이길 수도 있지만 그보다 먼저 사랑은 모두가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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