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라는 현악기가 있다. 크게 플러그가 필요 없는 어쿠스틱 베이스와 전기가 필요한 일렉트릭 베이스로 나뉘는 이 악기는 보통 네 줄을 쓰지만, 필요에 따라선 다섯 줄, 많게는 여섯 줄을 쓸 때도 있다. 예컨대 세계적인 록 밴드 드림 시어터에 몸담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베이시스트 존 명이 여섯 줄 일렉트릭 베이스를 쓴다.
이름(Bass)의 본뜻처럼 저음을 담당하는 악기이다 보니, 베이스는 음악에서 늘 있는 듯 없는 듯 들린다. 사람으로 치면 과묵하고 나서길 꺼리는 부류에 속하겠다. 하지만 있는 듯 없는 듯이라는 말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뜻은 아니다. 되레 베이스는 있을 땐 몰라도 없을 땐 대번에 티가 나는 악기다. 그 이유는 음악 안에서 갖는 베이스의 입체적인 역할 때문이다.
보통 피아노나 기타는 멜로디 악기로, 드럼은 리듬 악기로 분류되는 반면, 베이스는 멜로디와 리듬을 모두 짊어진 악기로서 음악을 살린다. 한마디로 자신을 감추며 남들을 돋보이게 하는 것인데, 그래서 베이스는 음악의 이끼와도 같다. 겉으론 하찮고 덜 중요해보여도, 알고 보면 저변에서 악기들의 균형을 관장하는 것이다. 이번엔 그 ‘네 줄짜리 이끼’로 생명을 보장받은 곡들을 감상해보려 한다.
‘Come Together’ The Beatles (1969, Apple)
‘Come Together’는 여전히 세계 대중음악사의 꼭대기에 있는 비틀스가 마지막으로 녹음한 앨범 ‘Abbey Road’의 문을 열어준 곡이다. 존 레논, 폴 매카트니라는 두 천재가 함께 쓴 이 곡에서 주역은 단연 폴이 연주하는 베이스다. 누군가는 ‘선거 송’으로 쓰일 뻔한 존의 노래와 가사에 더 의미를 부여할지도 모르지만, ‘Come Together’에서 베이스를 뺀다고 가정했을 때 곡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건 음악을 들어보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변해가네’ 김광석 (1995, 신나라뮤직)
김광석의 유작인 ‘다시 부르기 2’의 ‘변해가네’에서 베이스를 연주한 사람은 조동익이다. 스스로가 이미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조동익은 편곡가로서도 김광석 앨범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변하가네’에서 그런 베이시스트 조동익의 연주는 앞서 말한 ‘멜로디와 리듬 악기’로서 베이스가 음악을 어떻게 숨 쉬게 하는지 느슨하게, 하지만 분명하게 들려준다.
‘Another One Bites the Dust’ Queen (1980, EMI/Elektra)
퀸을 대표하는 이 곡은 베이시스트 존 디콘이 작곡한 만큼, 베이스 라인이 곡의 헤게모니를 완벽히 쥐고 있다. 펑크(funk) 밴드 시크(Chic)의 곡 ‘Good Times’를 확장시킨 듯 이 압도적인 베이스 라인을 들은 마이클 잭슨이 싱글 발표를 제안했다고 한 사실이 말해주듯, 이 곡의 예술적 가치와 상업적 가능성엔 존의 베이스가 첫 음을 울린 순간부터 이미 청신호가 켜졌다. 평소 수줍음이 많은 베이스도 때론 이처럼 음악 전체를 쥐락펴락 하기도 한다.
‘Next Level’ 에스파 (2021, SM엔터테인먼트)
앞선 퀸의 노래와 무려 41년이나 떨어진 곡이지만 ‘Next Level’ 역시 베이스가 곡을 장악하는 가장 근사한 순간을 세계 팝 팬들 앞에 펼쳐보였다. 마치 시작부터 듣는 이를 사로잡는 베이스 리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려는 듯, 곡 사이사이 베이스 소리를 감출 때 노래가 얼마나 황량해지는지를 보라. 베이스를 음악의 이끼라 부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 찰나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