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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Sep 07. 2024

QWER, K-POP의 다양성 위해 쏘아 올린 작은 공


취향은 수동보단 능동과 어울린다. 남의 소개, 권유가 있을지언정 취향의 본질이란 결국 내가 좋아해서 찾고 소비하고 즐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능동적인 취향이 제대로 발휘되기 위해선 건강한 선택지를 만나야 한다. 극장에 상업영화만 걸리면 예술영화가 질식되듯, 음악도 이 장르 저 장르가 대중 앞에 두루 전시돼야 비로소 서로 다른 개인의 취향들은 저마다 길을 찾아갈 수 있다. 다양성은 건강한 취향의 바탕이다.     


하지만 우리네 현실 상황은 쉽지 않다. 지금 한국 대중음악 시장은 마땅히 보장되어야 할 개인의 취향 누림이 한정적인 선택지 아래 반(半) 획일화되어가는 느낌이어서 아쉬운 면이 있다. 가령 케이팝과 트로트가 극단의 세대 장르로서 후보군의 절반 이상을 움켜쥔 데 따라 다른 수많은 장르 음악(가)들은 갈수록 설자리를 잃고 있는 게 현실인 것이다. 최소한 그 장르가 나에게 맞는지 아닌지는 직접 들어보고 취하거나 돌아서야 하는데, 지금 한국 대중은 그 가장 기본의 권리마저 케이팝과 트로트에 점령된 시장의 왜곡으로 빼앗긴 상태다.   

  

범위를 줄여 케이팝 아이돌 시장에서만 보아도 엇비슷한 형식과 기획이 소비자의 투명하고 폭넓어야 할 취향 선택권을 슬며시 가리거나 축소시킨다. 예컨대 대중은 흔히 케이팝 아이돌이라고 하면 확고한 개성을 지닌 호감형의 다섯 이상 멤버들이 뽐내는 칼 같은 군무와 단단한 가창력, 그리고 이를 거대 자본으로 담아낸 휘황찬란한 뮤직비디오부터 떠올리는 식이다. 즉 비범한 외모에 춤추며 노래하는 10~20대 멤버들이 구사하는 케이팝이 대부분 사람들이 생각하는 한국형 아이돌 음악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애초 아이돌이라는 말 자체가 장르가 아니거니와, 아이돌 음악이 한정된 형식을 따라야 한다는 건 더 궤변일지 모른다. 그저 비틀스나 아이유처럼 시대마다 아이돌로 불린 그룹 및 음악가들은 당대에 유행한 스타일(트렌드)을 반영한 소스 안에서 세대와의 소통을 꾀했다는 점만은 비슷해도, 저들이 수익 상 유리하다는 이유로 정해진 틀 안에서 재생산되는 모양새는 아니었다는 얘기다. 나는 은근히 형식적 획일화를 부추기는 이 답답한 케이팝 아이돌계의 틀에 균열을 내고 있는 팀으로 곧 데뷔 1주년을 맞는 QWER에 주목하고 싶다.     


QWER은 걸밴드다. 걸그룹들이 차고 넘치는 현실에서 이들은 ‘밴드’라는 정체성 하나 만으로도 이미 차별된다. 어릴 때부터 밴드 음악을 좋아한 쵸단(드럼, 서브 보컬), 레드 제플린과 이글스 같은 전설들을 들려준 아버지의 영향으로 록의 세계에 빠진 마젠타(베이스, 서브 보컬), 록을 포함한 여러 장르를 받아들이는 히나(리드 기타, 키보드, 랩), 밴드라는 형식을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동력’으로 여긴 시연(보컬, 리듬 기타)으로 구성된 이 4인조는 딱히 공룡 기획사를 거느리지도 않았고 입이 떡 벌어지는 군무와 뮤직비디오 공세를 펼치는 것도 아니지만 그 외 우리가 아는 아이돌 그룹으로서 갖춰야 할 조건은 모조리 갖춘 팀이다. ‘합숙 훈련’이란 말로 익숙한 멤버들의 연습량에 대해 소속사(프리즘필터) 이기용 대표가 어느 인터뷰에서 한 말은 그 조건들 중 한 측면을 들려준다.     


“마젠타는 ‘연습 벌레’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연습량이 상당하다. 쵸단은 볼 때마다 드럼 필인(fills) 연습을 하고 있고, 시연은 거의 매일 녹음을 할 정도로 노래 연습을 열심히 한다. 히나 같은 경우는 기타 연습을 너무 많이 해 손가락에 건초염이 왔다.”     


QWER은 단지 밴드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자신들의 블루오션을 개척했다.     



그런 이들이 지난 9월 2일 새 싱글 ‘가짜 아이돌’을 발표했다. “알고리즘에서 태어나 색안경 위에서 꽃을 피우자”라는 가사가 말해주듯, 이색적 프로젝트로 시작해 록을 주축으로 삼는 자신들을 가짜 아이돌이라며 조소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밴드 나름의 입장문 같은 곡이다(익살로 가득한 뮤직비디오와 함께 보면 더욱 좋다.) 주제가 주제인 만큼 밝고 설레는 QWER의 기존 멜로디와는 거리를 둔, 다소 정색하는 기타 리프와 건조한 리듬을 중심으로 곡은 간간이 분위기를 뒤집는 건반을 밟고 신나게 반격한 뒤 거듭 증명한다. 아이돌은 밴드 하면 안 되나? 밴드 하는 아이돌은 아이돌이 아닌 거야? 멤버들의 생각과 곡의 의도는 명약관화하다.    

 

시연이 이끈 노래의 바이브만으로 음악 팬들을 사로잡은 ‘별의 하모니’와 불협화음으로 멤버들 간 하모니를 끌어내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Discord’부터 될성부른 나무임을 증명한 QWER은 그렇게 지난 4월에 내놓은 미니앨범 ‘MANITO’를 통해 롱런을 예고했다. 나오자마자 이들의 대표곡이 된 ‘고민중독’부터 팬덤(바위게)에게 바친 ‘대관람차’를 지나 우수에 찬 타이틀 트랙 ‘마니또’에 이르는 앨범 속 일곱 트랙은 QWER의 막연했던 가능성을 구체적인 성공가도로 올려놓았다. 그리고 차기작 ‘Algorithm’s Blossom’의 선공개 싱글 ‘가짜 아이돌’은 그 성공가도에서 처음으로 건 냉소적 시동이다.     


세상이 생각하는 아이돌, 그 아이돌과 조금은 거리감이 있는 장르로 간주되는 로큰롤 사이 다리로서 부디 이들이 “온 세상을 연주하는 불협 사이렌”을 앞으로도 힘차게 울려주길 기대한다. 그렇게 해서 밴드로도 아이돌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내친김에 10대 이하 어린 케이팝 팬들이 자주 악기점을 드나드는 풍경까지 이끌어낸다면 금상첨화겠다. QWER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케이팝의 다양성을 위한 실마리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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