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일본 가수 겸 배우 나카야마 미호가 사인(死因) 불명으로 자택에서 생을 마감했다. 향년 54세. 데뷔 39주년을 맞고 숨을 거둔 그는 한국 팬들에겐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러브레터’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배우로서 유명한 그녀지만 미호는 사실 가수로 먼저 데뷔했다. 열다섯 살이었던 1985년, 앨범 ‘C’(데뷔 싱글 제목도 같은 ‘C’다)로 제27회 ‘일본 레코드 대상’ 최우수 신인상을 받은 것이다. 미호는 이듬해에도 같은 시상식에서 앨범 ‘뭐 좀 되네!(ツイてるねノッてるね)’로 금상을 받았다. 즉 미호는 일본에서 배우로서 만큼 가수로도(또는 가수로 더) 유명한 사람이었고, 데뷔 때부터 가수로서 잘 나갔다는 얘기다. 심지어 그녀가 처음 만난 영화도 가수로였는데, 작품 제목은 데뷔한 그해 주제가를 부른 ‘비 밥 하이스쿨’이었다. 80년대 미호의 전성기 음악은 록과 신스/펑키(funky) 팝의 혼종이 주된 스타일로, 그것은 이후 90년대를 힘차게 여는 자드(Zard)가 이어받게 될 당대 제이팝의 감성이었다.
한편 배우 나카야마 미호는 주어진 역할에 전력으로 응하는 편이었다고 한다. 가령 해당 배역이 입는 의상을 빌려 와 평상시에도 그것을 입고 지내거나 하는 식이었다. 심지어 일상에서 무의식 중에 그 배역의 말투가 나왔을 정도로 그녀는 하나의 배역을 맡으면 그것에 온전히 집중했다. 그런 미호가 20대 때 주로 맡은 몇 살 어린 배역을 두고 연출자들은 역할의 나이에 맞는 연기를 요구했다. 아마도 배우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이 한계적 연출 주문을 받은 당시부터 미호는 주어진 배역의 이미지와 실제 자신의 이미지 사이 괴리감에 괴로워하기 시작했던 걸로 보이는데, 그럴 때 그녀의 개성을 풀어낼 수 있게 해 준 것이 바로 음악이었다. 연기에선 몰라도 음악에서만큼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한 것이다. 그 해방적 자신감은 스물두 살 미호가 자기 앨범을 셀프 프로듀싱까지 하게끔 독려했으니, 그녀의 음악에 친구들은 “미호 음악은 완전 펑크(punk)네!”라는 평가를 해주었다.
배역을 연기할 때 기술적인 부분 외에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무언가가 그 사람만의 오리지널리티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나이를 먹는 것, 경험을 쌓는 것 모두가 연기의 자양분이 되는 거죠. 실제 80세 정도 된 할머니에게선 햇볕이 내리쬐는 곳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무언가가 보이잖아요. 저도 그런 풍요로움을 갖고 싶어요
나카야마 미호(일본 주간지 ‘아에라(AERA)’와의 인터뷰에서)
1994년, 한국인들에게 ‘오겡끼데스까(잘 지내나요?)’라는 일본어를 가르쳐준 영화 ‘러브레터’. 미호는 생전에 ‘러브레터’와 ‘도쿄 맑음’ 같은 작품을 만나며 앞서 얘기한 존재적 괴리감 따위에서 벗어나, 그저 재미있는 작품을 하나하나 정성껏 해나가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마음의 힘을 뺀 미호가 한국 영화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러브레터’로 각종 영화제 주연 여배우상을 휩쓴 그해에도, 그녀는 국내 밴드 더 넛츠(The Nuts)가 ‘사랑의 바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한 ‘세상 누구보다 분명(世界中の誰よりきっと)’을 불러 작시(作詩)상을 비롯해 각종 대중음악상까지 함께 휩쓸었다. 90년대 중반은 배우 미호와 가수 미호의 ‘동반’ 전성기였다.
두 분야에서 톱스타 반열에 오른 나카야마 미호는 ‘제21회 일본 레코드 판매 대상’ LP 부문 최고상을 받은 1988년부터 94년까지 7년 연속 ‘홍백가합전’에 출연하며 자신의 인기를 만끽했다(이는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출연한 보아보다 1년이 더 많은 기록이다). 하지만 그의 가수 활동은 99년작 ‘매니페스토(manifesto)’ 이후 무려 20년 가까이 멈춘다. 미호가 다시 가수 활동을 재개하리라 마음먹은 것은 2018년 즈음. 그녀의 재기 의욕은 자신의 밴드 멤버 오디션을 직접 보는 데까지 뻗었고, 그러던 중 배우 겸 음악가인 하마자키 다카시가 자신이 주최할 합동 라이브 공연에 함께 하자고 손을 내밀면서 미호는 3개월 동안 기타를 맹연습하며 본업 복귀의 바람을 이룬다. 이 무대에서 팬들은 너무 오랜만에 돌아온 스타를 바라보며 미호와 함께 울었다. 이제 유작이 되어버린 22집 ‘Neuf Neuf’(2019)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미호는 ‘아에라’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도 말했다.
라이브는 혼자 많은 관객 앞에서 노래하는 것인데, 제 쪽에서 보면 여러분들의 웃는 얼굴이 보여요. 그 공기란 라이브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 그래서 저는 세상에서 음악은 절대 없어선 안 될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미호의 비교적 차분한 95년작 ‘Mid Blue’에 수록된 ‘Smile Again’이라는 곡의 노랫말엔 이런 구절이 있다. 마치 본인이 무대에서 본 팬들의 ‘웃는 얼굴’에 보내는 인사 같다.
넌 절대 넘어지지 않을 거라고 나에게 약속해 / 너만을 위한, 네가 쉴 수 있는 자리가 내 맘 속에 있어 / 비록 네가 울더라도 눈물만은 내 맘 속에 남겨둬 돼 / 다시 웃어, 예전의 네가 그랬듯
미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더 안타까운 건 12월 6일, 10일, 15일 3일간 크리스마스 콘서트가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또 내년에는 데뷔 40주년을 기념한 투어도 할 예정이었다. 미호가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면서 이제 이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오사카에 있는 빌보드 라이브 오사카(Billboard Live Osaka)에서 예정됐던 크리스마스 콘서트 첫날이 그의 마지막 날이 된 셈이다. “오랜만에 만나서 ‘사랑해’라고 말하려고 왔는데...” 클럽에 붙은 공연취소 안내문을 바라보며 티켓을 꼭 쥔 한 일본 팬은 그렇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고 한다.
"오겡끼데스까" 영화의 대사가 메아리가 되어 천국으로 간 그녀에게 되울릴 차례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