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5일 오후 7시.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소녀시대의 데뷔 10주년 기념 팬미팅 'GIRLS´ GENERATION 10th Anniversary - Holiday To Remember'가 열렸다. 이날 소녀시대는 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다만세)를 비롯해 '소녀시대', 'Kissing You', 'Tinkerbell', '소원을 말해봐' 등 대표곡들과 팬송 '그 여름 (0805)', 그리고 여섯 번째 정규 앨범 'Holiday Night' 수록곡들을 처음 공개하며 팬들과 잊지 못할 한때를 보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건 그룹의 베스트 곡/안무/콘서트 무대에 관해 멤버들에게 직접 물은 앙케트에서 톱3 모두가 '다시 만난 세계'로 나온 사실이다. 멤버들은 그날 이구동성으로 '다만세'를 "지금의 소녀시대를 만들어준 소중한 데뷔곡"이라고 말했다.
'다만세'는 "슴덕('SM 마니아'를 뜻하는 온라인 용어)의 엄마"로 통하는 켄지의 작품이다. 2000년대 냄새가 물씬 나는 시원한 댄스 비트, 그 아래 해무처럼 깔린 일렉트릭 건반과 기타, 극복과 희망이 엉긴 아름다운 보컬 멜로디는 켄지의 다른 어떤 작품보다 이 곡을 오래 회자되도록 했다. 1, 2절 도입부에 안토닌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신세계로부터(From The New World)' 4악장 멜로디를 차용한 것으로 알려진 이 곡의 영어 제목은 '새로운 세상 속으로(Into The New World)'인데, 이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태생의 비밀은 노래의 마지막 후렴 가사 "널 생각만 해도 난 강해져 / 울지 않게 나를 도와줘"와 함께 되뇌일 때 괜히 뭉클한 느낌을 준다.
가사는 김정배가 썼다. 15살 때부터 기타를 잡은 기타리스트이자 작사가, 드라마 음악감독이기도 한 그는 "새로운 생명을 낳듯, 여성에겐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본성이 있는 것 같아 '세계를 다시 만난다'는 표현을 떠올렸다"고 작사 배경을 설명했다(이는 이수만이 "고된 연습생 시절을 이겨낸 소녀들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희망찬 느낌"을 곡에서 받은 이유이기도 했다.) 김정배는 또 'Into The New World'라는 부제에 대해선 "새로운 세상이 비관적일지라도 뛰어들어 바꾸라는 취지"로 지었다고 말했다. 2007년 8월, SM엔터테인먼트가 소녀시대를 소개한 문구는 "10대 여고생 그룹 (...) 소녀들이 평정할 시대가 왔다!"였다. 그러니까 '다만세'는 소녀시대를 주로 소비할 또래의 "청취자들에게 공감과 용기를 주기 위해 만든 노래"였던 것이다. 이는 "눈 앞에 선 우리의 거친 길은 / 알 수 없는 미래와 벽 / 바꾸지 않아 포기할 수 없어"라는 노랫말이 2016년 7월 30일 정오의 이화여대 본관 1층과 2024년 12월 현재 여의도 상공에 울려퍼진 명분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곡은 '사랑 노래'로 해석될 여지도 충분하다. "변치않을 사랑으로 지켜줘 / 상처입은 내 마음까지 (...)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 그려왔던 헤매임의 끝"이라는 가사는 그 증거다. 다만 곡의 화자가 만난 존재가 미시(사람)인지 거시(세상)인지에 따라 노래의 뉘앙스는 또 달라진다. 켄지와 김정배가 의도한 창작 배경을 따져봤을 땐 아무래도 후자 쪽에 무게가 쏠리는 느낌인데, 이 곡에 다른 아이돌 사랑 노래에선 발견하기 힘든 웅장함, 광활함이 드리운 것도 같은 이유에서처럼 보인다.
사실 이 노래는 처음 소녀시대의 것이 아니었다. '다만세'는 소녀시대가 데뷔하기 5년여 전 이미 만들어져 있었다. 이 곡을 부를 뻔한 팀은 SM 소속 4인조 걸그룹 밀크(M.I.L.K.). '또! 오해영', '사랑의 온도', '너는 나의 봄' 등에 출연한 배우 서현진이 멤버로 있던 밀크는 2001년 12월, 에이치오티의 문희준이 프로듀서를 맡은 'With Freshness'를 내고 데뷔했다. '제2의 S.E.S.'로 불리며 핑클의 라이벌로까지 거론됐던 이들은 그러나 멤버 한 명의 갑작스런 탈퇴로 해체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다만세'는 바로 그 밀크가 2집 타이틀곡으로 쓰려 했던 노래다.
하지만 역사에서 가정은 무력하다. '다만세'는 끝내 소녀시대의 노래로 남았고 한국 아이돌 음악의 대표곡으로 빛났다. 티파니 영이 "내가 아직도 가장 사랑하는 곡"이라고 말한 그 노래는 물론 팬들도 여전히 가장 사랑하는 곡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