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대 Dec 19. 2024

7주기, 눈부셨던 종현의 재능을 기억하며


7년 전 12월 18일, ‘우울’이라는 괴물이 스물일곱 한창나이의 아티스트 한 명을 집어삼켰다. 아티스트의 이름은 종현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BTS가 앞장서 케이팝 붐을 일으키던 시기. 당시 추모글에서 썼듯 종현은 정엽과 휘성을 동경한 탁월한 보컬리스트였고, 아이유와 엑소 등에게 자신의 곡을 준 유능한 송라이터였다. 한편에선 그의 죽음을 계기로 한국 아이돌계의 연습생 시스템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는데, 특히 미국 연예매체 ‘버라이어티’는 종현의 사망과 관련해 “한국 유명인들이 악명 높은 중압감”에 시달린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속절없이 흐른 7년. 7주기를 맞아 그의 솔로 곡들로 아까운 젊은 재능을 다시 한번 돌이켜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데자-(Déjà-Boo)



‘데자-부(Déjà-Boo)’는 ‘Crazy (Guilty Pleasure)’와 함께 “신경을 곤두세워” 임한 종현의 솔로 데뷔작 더블 타이틀곡이었다. 당시 곡 자체가 자신이 원하고 찾았던 음악 색깔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었다고 말한 종현은, 작업 전 단계에서 이미 자이언티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써나갔다. 과연 종현의 의도는 적중해, 그의 뇌리를 배회했을 세련된 펑키 힙합 그루브가 곡 전반을 지배하며 두 보컬리스트의 호흡을 감싼다. 이때까지만 해도 모두가 샤이니를 벗어난 싱어송라이터 종현의 밝은 미래를 점쳤다.     


하루의 끝(End of a day)



‘종현 소품집 “이야기 Op.1”’은 종현이 생전에 DJ를 맡았던 라디오 프로그램 ‘푸른 밤 종현입니다’의 프로젝트 코너 ‘푸른 밤 작사, 그 남자 작곡’에서 선보인 자작곡들을 다시 편곡해 실은 작품이었다. 퇴근길이라는 모두의 ‘하루의 끝’에 보내는 이 따뜻한 위로는 신나고 화려한 종현 음악의 이면에 있던 침잠된 감성을 아낌없이 드러내보였다. 하지만 얄궂게도 “수고했어요, 정말 고생했어요”라는 가사는 7년 전 그날 종현 자신에게 어울리는 작별 인사가 되고 말았다.     


좋아(She is)



‘좋아’는 종현의 솔로 정규 1집 제목이기도 했다. 그만큼 자신 있고 아끼는 곡이었다는 얘기겠다. 정규 1집에서 종현은 다양한 음악가들과 협업을 하며 아이돌에서 아티스트로 거듭났는데, 이 곡은 ‘데자-부’에 참여한 필터(philtre)와 알앤비 힙합 뮤지션 크러쉬(Crush), 종현의 공동작곡 팀이었던 위프리키가 함께 만들어낸 퓨처베이스 기반 일렉트로 펑키 트랙이다. 언뜻 웨스 앤더슨을 떠올리게 하는 상큼한 뮤직비디오와 함께 감상하면 노래를 두 배로 즐길 수 있다. 한 가지 아이러니는 밝고 자신감 넘치는 영상 속 종현의 모습에서 그를 앗아갈 비극의 씨앗은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엘리베이터



종현은 행복한 사람이었기보단 행복해지고 싶었던 사람에 더 가까웠다. ‘현실에 치여 정작 본인 마음은 이해하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로 알려진 이 곡은 그래서 종현 자신의 사운드트랙이기도 했다. “이 노래에 등장하는 화자와 듣는 사람은 한 명 밖에 없다. 내가 나에게 하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종현은 현실에 지치고 힘든 사람들이 있다면 여기 비슷한 사람(종현 자신)이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엘리베이터’는 한편으론 힐링곡이었으나, 감추어왔던 가수의 우울함이 고개를 들고 듣는 사람을 똑바로 응시했던 노래이기도 했다.     

우린 봄이 오기 전에(Before Our Spring)



2015년에 쓴 이 곡은 종현의 사후(Posthumous) 앨범인 ‘Poet | Artist’의 마지막 노래였다. 작품 제목처럼 시인이자 아티스트로서 종현이 팬들에게 남긴, 물리적으로나 심정적으로나 ‘마지막’ 노래였던 셈이다. 그래서인지 고인의 생전 모습을 추억하는 뮤직비디오 아래에는 유난히 그를 그리워하는 댓글들이 많다. 팬들에겐 봄에 태어난 종현이 남긴 이 봄노래가 너무 아프다. 차분한 온기를 전하고 정작 자신은 겨울에서 멈춰버렸기에 더 그러하리라. 싱어송라이터로서 종현의 빛나는 재능이 이 조용한 발라드 한 곡에 수북이 담겨 있다.     


이 글을 쓰던 2024년 12월 18일 밤, 김동률과 함께 전람회를 이끈 서동욱 님의 부고를 접했다. 7년 전 떠난 이의 음악을 되새기던 중 31년 전 데뷔한 사람의 부고를 대하는 일은 심정으로 버거웠고 상황으론 비현실적이었다. 향년 50세. 종현보다 23년을 더 살았지만 세상을 등지기에 이른 나이인 건 마찬가지다. 무한의 예술과 유한한 인간 삶 사이에 갇힌 공허한 영광이 그렇게 겨울밤 냉기 속으로 스러져갔다. 먼저 간 고인을 추억하며, 또 한 명 고인의 명복을 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