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대 Jul 01. 2016

음악으로 시나리오를 쓰는 사나이, 롭 좀비

일렉트로닉이 헤비메탈을 만난 인더스트리얼 뮤직(Industrial Music)의 박력과 덩실대는 댄스 그루브를 B급 호러 영화에 접목시킨 스타일리스트. 헝가리 출신 영화배우 벨라 루고시가 주연을 맡은 사상 첫 좀비 영화와 이름이 같은 밴드 화이트 좀비(White Zombie)로 90년대 중반까지 헤비메탈의 대안(Alternative Metal)을 제시한 롭 좀비란 인물을 나는 저렇게 얘기하고 싶다. 실제 미국의 명문 ‘파슨스 디자인 스쿨’을 졸업한 그의 패션과 앨범 재킷의 화려함은 롭의 퀭한 좀비 분장과 뚜렷하게 대조되며 음악을 단지 듣는 것에서 그치지 않게 했다. 밴드의 뮤직비디오를 직접 연출하거나,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도 극찬한 ‘살인마 가족 2(The Devil’s Rejects)’를 감독한 것도 그가 청각 예술 못지 않게 시각 예술에도 얼만큼 관심과 재능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겠다. 올해도 크라우드 펀드를 통해 ‘31’이라는 호러 영화를 만들 예정이라는 롭 좀비. 하지만 그의 본업은 엄연히 음악이기에 상반기를 넘기며, 영화보다는 음반을 먼저 대중 앞에 내놓았다. 물론 그 음반 자체도 “B급 고전영화의 사운드트랙” 같은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가 이끌던 화이트 좀비는 1995년의 명반 ‘Astro-Creep: 2000’을 남기고 해체되었다. 그는 제 이름 롭 좀비를 내걸고 3년 뒤 ‘Hellbilly Deluxe’로 홀로서기를 시작한 것이다.

자신의 장기이자 정체성인 ‘클래식 호러 필름+헤비메탈+일렉트로닉’을 살벌하게 뒤섞은 롭 좀비의 솔로 데뷔작은 대중과 평단에게 크게 어필했다. 여세를 몰아 다시 3년 뒤 내놓은 ‘The Sinister Urge’는 전작보다 더 큰 사랑을 받았고, 솔로 3집 ‘Educated Horses’도 이전 앨범들 만큼은 아니지만 적어도 졸작이라 손가락질 받진 않았다. 록커로서 그의 명성은 2010년작 ‘Hellbilly Deluxe 2’부터 조금씩 위협받기 시작했고, 다섯 번째 작품 ‘Venomous Rat Regeneration Vendor’(2013)에 이르러선 거의 바닥을 치게 된다.

신작이자 롭 좀비의 여섯 번째 타이틀인 ‘The Electric Warlock Acid Witch Satanic Orgy Celebration Dispenser’는 그런 면에서 뮤지션 롭 좀비의 회생 기미를 살필 수 있을 좋은 기회인 것처럼 보인다. ‘Dragula’나 ‘Demonoid Phenomenon’, ‘Demon Speeding’과 ‘Dead Girl Superstar’ 같은 솔로 초기 압도감에는 미치지 못할 터지만, 기계(디지털)와 사람(아날로그) 사이 연주를 통제하고 중재하며 빚어낸 영화 같은 ‘비주얼 뮤직’은 아직도 롭 좀비 음악을 따로 들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언제나 그랬듯 헤비하고 근엄한 인트로가 있고, 기타 아르페지오와 디지털 소품으로 각각 처리한 두 차례 막간(Interlude)이 있다. 앨범 전체에 드리운 리듬은 거의가 느리고 처절한 미드 템포이지만 프로듀서 겸 건반/프로그래밍을 맡은 제우스(Zeuss)에 큰 빚을 진 중앙의 두 곡, ‘The hideous exibitions of a dedicated gore whore’와 ‘Medication for the melancholy’는 명확한 싱글 성향으로 앨범 중간에 우뚝 서 있다. 특히 후자 쪽은 덜컹거리는 카메라 워크와 의상, 퍼포먼스에서 ‘패셔니스타’ 롭 좀비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뮤직비디오도 있는데, 꼭 음악과 함께 감상하길 권한다. 믹 재거와 스티븐 타일러를 이을 ‘스타일리시 록커’의 바톤은, 이변이 없는 한 롭 좀비가 이어 받을 것이다.

역시 롭 좀비는 음악 할 때가 가장 멋있고 또 그답다. 영화도 음악도 모두 잘 되길 빌겠지만, 되도록 음악 쪽에 좀 더 무게를 두고 행보를 이어갔으면 싶은 게 팬으로서 바람이다. 음악으로 시나리오를 쓰는 그에게 이번 앨범이 또 다른 출발이 되길 기대해본다. 생각난 김에 ‘Medication for the melancholy’나 한 번 더 들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