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대 Jul 02. 2016

Radiohead - A Moon Shaped Pool

'Kid A' 이전과 이후의 라디오헤드

라디오헤드는 [Kid A]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creep’으로 대중과 만난 록밴드 라디오헤드가 [OK Computer]라는 걸작을 끝으로 록밴드 타이틀을 반납한 뒤, 그들은 줄곧 ‘실험’과 ‘퓨전’에 매달렸다. 아니나 다를까 “록은 지루하고, 록은 쓰레기 음악”이라고 말한 톰 요크의 말과 함께 [Kid A]는 세상에 등장했다. 일렉트로닉이라고는 하지만 누구도 규정할 수 없는 거대한 세계가 라디오헤드의 첫 번째 ‘외도’에는 담겨 있었다. 이후 그들은 더 이상 록밴드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록을 버리지도 않은 채 자신들이 선택한 길을 터덜터덜 걸어갔다. 1년도 안 되어 [Amnesiac]이 뒤를 이었고, 기존 팬들에게도 희망을 준 [Hail to the thief]와 [In Rainbows]라는 또 다른 수작들이 겹겹이 발매되었다. 벌써 5년이 지난 [The King of Limbs]는, 록을 벗어던진 21세기 라디오헤드 행보의 첫 번째 매듭으로 남았다. 그들은 더이상 ‘just’와‘paranoid android’ 같은 곡들을 만들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것은 축복인가 아니면 재앙인가?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게 라디오헤드는 언젠가부터 하나의 ‘기준’이 되어가고 있었다.

[Kid A] 이후 라디오헤드를 듣는 사람과 듣지 않는 사람. ‘기준’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Kid A]를 소화시켜낸 사람들은 [OK Computer]를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아직도 [Kid A] 이후를 듣지 못한다. 반복을 버리고 진화를 택한 라디오헤드에게 전해진 평론가들의 이구동성 극찬이 그들에게는 그저 지적 사치로만 여겨졌다. 그들은 여전히 [The Bends]를 동경하고 [OK Computer]를 불멸의 마스터피스로 추켜세운다. 진짜 마니아가 되지 못한 '라디오헤드 마니아'들의 편식은 결국 그들 자신을 어느 틀에 가두고 말았다. 밴드는 이미 기존과 전혀 다른 음악 세계에 다다랐는데 많은 팬들은 아직도 그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해서 그들은 새 앨범 [A Moon Shaped Pool]에도 ‘난해하다’는 딱지를 붙일 가능성이 크다. 단언컨대 축복은 이 앨범을 들어낼 수 있는 사람들에게, 재앙은 이 앨범에 등돌리는 사람들에게 갈 것이다. 기준은 이처럼, 언제나 냉정한 법이다.

숨가쁜 오케스트라 편곡에 귀신 같은 톰 요크의 팔세토 창법이 치열히 맞서는 첫 싱글 ‘burn the witch’는, 21세기 라디오헤드가 짓게 될 두 번째 매듭의 첫 발이 [A Moon Shaped Pool]일 것임을 예고한다. 섬뜩한 쓸쓸함을 담은 ‘daydreaming’의 뮤직비디오처럼 ‘burn the witch’의 것도 못지 않게 기괴하다. 이 앨범은 기괴한 두 곡으로 시작해 덜 기괴한 음악적 마무리를 향해 조금씩 앞으로 간다. 기존 팬들의 우려나 예단과 달리 라디오헤드 9집은 그리 들어내기 벅찬 앨범은 아니다. 지난 5장의 앨범들로 훈련된 ‘선수’들에게 이 앨범은 어쩌면 팝처럼 감미로울 것이며, 설사 훈련이 덜 된 사람들에게도 이 작품은 그 대중적 비트와 멜로디만으로도 큰 무리없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장르가 바뀌었다고, 장르를 깨부순다고 라디오헤드가 라디오헤드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세계 대중이 사랑하는 밴드 중 한 팀이고, 밴드 역시 그런 대중을 껴안을 준비가 언제나 되어 있다. ‘decks dark’와 ‘present tense’가 수록된 새 앨범은 그 사이 다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 나는 믿는다.

라디오헤드는 지금 숨 쉬듯 음악을 하고 있다. 우리가 말로 의사소통을 하듯 라디오헤드는 음악으로 그 소통을 해낼 수 있는 듯 보인다. ‘the numbers’를 들으며 든 생각이다. 잡히지 않는 소리들의 부대낌, 그 안에서 피어나는 톰 요크의 고독에 찬 목소리. 혼란 속의 질서란 바로 이런 것이리라. 사실 어제 새벽, 나는 아주 오랜만에 내 오랜 음악 친구와 긴 통화를 했었다. 라디오헤드 신보에 관한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왔고, 우린 같은 감동 아래 앞 다투듯 작품을 칭찬했다. 그러면서 나온 얘기가 라디오헤드 음악이 왜 이렇게 바뀔 수 밖에 없었느냐, 였다. 3집까지 라디오헤드도 물론 사랑하는 우리가 [Kid A]부터 라디오헤드를 더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해답은 “사람은 아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전부”라는 그 친구의 나름 인생관에서 출발해, 남이 볼 땐 텅 빈 네모 안에 자신의 모든 과거를 구겨 넣었다는 한 추상화가와의 대화에서 나왔다. 알아야 보이고, 보여야 생각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라디오헤드의 음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이 글은 대중음악 매거진 <파라노이드>에도 실렸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음악으로 시나리오를 쓰는 사나이, 롭 좀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