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나비, 장르로 우리 음악을 재단하지 마!

<사운드 오브 뮤직> 잔나비

by 김성대


사운드 오브 뮤직.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그 유명한 1965년작 제목이다. 재킷 그림의 왼쪽 위 타이틀 글꼴은 60년대 사이키델리아 느낌이고, 지구를 비춘 애니메이션의 한 조각과 아래 '4집'을 명시한 자막은 분명 마쓰모토 레이지의 명작 ‘은하철도 999’의 환영이다. 자, 그는 또 과거로 떠난다. 아니, 최정훈과 잔나비는 언제나처럼 과거에 머물 심산으로 보인다. 당장 보이는 것부터가 온통 그렇다.


지난 앨범이 살짝 난해했다는 걸 본인들도 알았을까. 어린 시절 디즈니 알람시계와 관련한 최정훈의 추억을 풀어놓는 첫 곡 ‘뮤직’은 3집의 분위기를 잇는 듯 다른 걸 들려주리라는 예감으로 온다. 과연, 한 곡처럼 이어지는 ‘Flash’가 평온한 피아노와 보컬로 흐르다 50초를 기점으로 댄스 비트로 갈아입은 뒤 엎치락뒤치락 전개를 들려주며 예감은 구체화된다. 예술성과 상업성을 다 잡았던 비틀스를 평생 따라가겠다는 다짐이 다시 들리는 순간이다. 단, 조금씩 비틀스의 그림자를 지워가는 데서 잔나비의 발전이 보인다. 출발이 괜찮다.

뮤지컬 같은 ‘아윌다이포유♥x3’도 그렇다. 전작을 닮았으되 전작과 거리를 둔 그것은 가사 마냥 “초현실적”이다. 일면 서태지가 9집 ‘Quiet Night’에서 들려준 바이브가 느껴지면서, 비트에선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마저 들린다. 최정훈과 김도형(시퀀싱과 프로그래밍을 맡았다)은 재밌게 음악을 즐기고 있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본다. 그들은 놀이터에서 아이가 놀 듯 소리를 가지고 논다. 훅 들어오는 후크도, 화려한 탑 라인도 노리지 않는다. 둘은 해가 지고 달이 뜨는 것 마냥 소리와 멜로디를 풀어놓을 뿐이다. 풀려난 소리와 멜로디들은 마치 스스로 음악이 되려는 듯 자연스레 어울리고 뭉친다. 다프트 펑크가 들리는 ‘To the Rainbow, Juno!’에서 8090의 사운드 스케이프가 아무렇지 않게 2025년의 봄을 스쳐갈 때 잔나비의 음악적 진화는 더욱 단단해진다. ‘사운드 오브 뮤직’이라는 제목은 저들의 ‘사운드’ 실험이 잔나비의 ‘뮤직’이 됐다는 의미였다.



이번 앨범의 뮤직비디오는 한 편이다. 저기 뒤에 있는 ‘모든 소년 소녀들 1, 2’도 영상 언어로 욕심냈을 법 한데, 아무래도 그 곡들은 음악으로만 상상되길 더 바랐던 모양이다. 그래서 유일한 뮤비는 ‘사랑의이름으로!’에게 갔다. 크레디트에 적지 않았다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카리나(에스파)는 최정훈의 목소리와 하나 돼 기차 바퀴 소리를 닮은 비트 위를 아무렇지 않게 지나간다. 몇 테이크 만에 오케이가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앨범에 실린 것만 들어서는 첫 테이크에 끝내버린 느낌이다. 그만큼 잘 나왔을 테니까. 곡을 만든 사람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감각을 바라보는 젊음의 이미지”를 바라고 만들었다지만, 뮤직비디오에는 앨범 재킷에서 이어진 ‘은하철도 999’의 메텔과 다 큰 철이가 '순간역'의 실사 드라마 중간에 등장한다. 김도형의 짧은 기타 솔로와 함께 이 장면은 아득한 아날로그 감성을 힘껏 움켜쥔다. 지난 작품에서 실컷 해보았을 스트링 편곡은 그 감성을 넉넉히 품어주다 다음 곡 ‘옥상에서 혼자 노을을 봤음’에서도 담담히 활약한다. 무심한 퍼커션 위로 흘러가는 혼(horn)과 콘트라베이스 사이로 조금씩 자라던 그것은, 급기야 후반에 이르러 곡 전체를 집어삼킨다. 어느덧 ‘규모의 음악’은 잔나비 음악의 일면이 됐다.


1967년의 비틀스를 만났던 3집처럼 한 호흡에 듣는 콘셉트 앨범은 아니지만, 소품곡 두 트랙과 마지막 두 트랙처럼 부분적인 콘셉트는 여전히 잔나비의 콘셉트로서 유효하다. 어쩌면 순간(찰나)과 그리움의 정서, 단순함의 진리라는 작품 주제를 떠올려 본다면 그 자체가 이미 콘셉트라 봐도 무방하리라.


마지막 두 트랙 중 첫 트랙인 ‘모든 소년 소녀들1 : 버드맨’은 배경 설명이 좀 필요한 곡이다. 16년 전 서태지가 다뤘던 모아이 석상 이야기다. 2년 전 대영박물관에서 칠레 이스터섬의 흥망성쇠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최정훈. 그 이야기는 당시 도슨트의 해석에 기반한 것이었고, 최정훈은 거기에 2년 동안 숙성시킨 자신의 상상을 보탰다. 이야기 끝에서 그는 “어린 나와의 약속에 불과한 꿈이란 과거지향적”이라고 말한다. 나에게 이는 마치 자신의 음악과 취향이 과거지향적이라고 말하는 것 같이 들렸는데, 최정훈은 실제 과거지향적인 성향으로 자신의 꿈을 이뤘기 때문이다.


현실과 비현실의 중첩. 울리거나 퍼지는 사운드 디자인 안에서 피어오른, 90년대 국내 팝 발라드에서 심심찮게 목격한 코러스 멜로디를 뒤로 하고 ‘아윌다이포유♥x3’와 더불어 앨범에서 가장 록킹한 ‘모든 소년 소녀들2 : 무지개’가 앨범을 닫기 위해 문을 연다. 버스(verse) 보컬은 얼핏 조휴일(검정치마)처럼 들리지만, “오늘을 살아가려 비로소 난 내일을 죽였네”라는 가사는 분명 최정훈이 쓴 것이다. 우주로 쏘아 올린 성가대 마냥 성스러운 분위기가 앨범 재킷에서 촉발돼 작품 전반을 휘감고 있는 무중력 분위기를 자아내고, 3분 초반 대에서 치고 들어오는 김도형의 70년대 풍 하드록 기타 솔로는 그럼에도 우리가 중력을 벗어날 수 없다는 걸 헤비하게 환기시킨다.


앨범을 반복해 들으며 든 생각은 하나다. 더 이상 장르로 우리 음악을 재단하지 말라는 것. 그 옛날 비치 보이스, 비틀스 같은 거물들이 그랬듯 자신들도 록에서, 팝에서 비껴 나 세상 하나밖에 없는 ‘잔나비표 음악’을 만들어나가겠다는 의지가 신보엔 켜켜이 녹아있다. 2집까진 대중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었고 3집은 대중에게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면, 4집은 그 둘의 균형을 꾀한 느낌이다. 대중도 납득하고 본인들도 만족하는 음악. 이제 그들은 진짜 길을 찾은 듯 보인다. 아마도 ‘사운드 오브 뮤직 pt.2’에선 그 길이 더 선명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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