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규리 Aug 28. 2023

쓸데없는 생각

엄마가 주말마다 해주던 닭볶음탕을 미치도록 좋아한다. 칼칼한 듯 달콤한 국물과, 감자 대신 넣는 고구마, 부드럽게 찢어지는 닭살. 국물을 조금 떠 밥에 비빈 후 살을 얹어 먹는 한 입을 좋아한다. 백종원 선생님 레시피를 보고 만든 것도 맛있지만, 엄마가 해줘서 그런가? 엄마표 닭볶음탕이라면 죽는 순간 먹어도 억울하지 않을 것 같다.


또 한 번 생각해 보니 내가 최근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은 다름 아닌 아메리카노였다. 유난히 힘들던 출근길, 커피집에 들러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연하게 주문하여 마셨다. 그런데 그 커피를 마시는 순간 환장할 만큼 기분이 좋아졌다. 도무지 말도 안 되게 기분이 좋아져 이까짓 검은 물에 금세 행복해지는 게 나란 인간의 초상인가 싶었다.


그런데 이렇게 매일 먹는 음식과 죽기 직전 먹고 싶은 음식은 결이 다른 것이라, 죽기 직전에 먹는 음식은 나에게 추억을 소환할 수 있는 어떤 음식이어야 할 것 같다. 어릴 적 엄마가 해주던 닭볶음탕, 떡볶이 혹은 최근에 남편이 해준 7분 김치찌개 등...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내가 만든 건 없다. 남이 해주는 음식이 맛있어서일까, 죽기 전까지 내가 요리하는 수고로움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일까.


아무튼 내가 죽기 직전 옆에  요리해 줄 누군가와 고춧가루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리고 나니 조금 쓸데없는 생각을 한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암일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받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