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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리 Mar 02. 2023

암일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받았다

나는 조금 ‘쿨'한 편이다. 야외결혼을 준비하면서도 비가 올지 걱정하지 않았고, 세탁기에 돌아가고 있는 에어팟을 발견해도 내 에어팟은 괜찮을 거란 태연함을 지녔다.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에선 되도록 운을 믿는 편이고, 여태껏 걱정거리가 최악으로 치닫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건강에도 '쿨'한 편이었다. 몇 달째 2주에 한번 꼴로 생리를 했지만 ‘거참 이상하다’ 생각할 뿐이었다.


‘병원을 가봐야 하나?’할 땐 이상하게 피 나오는 일이 멈췄고 겨우 이런 문제로 휴가를 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회사에선 하루에도 몇번 클라이언트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급하다며 찾았고, 내가 아니면 안 될 거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혹독하게 두던 직업인으로서의 내가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주말에 연 동네산부인과에 가볍게 방문했다. 자궁 폴립이 발견되었고, 다시 큰 병원에 예약해 검진받았을 때 그 혹이 암일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니, 누가 그걸 생리로 생각해요? 그건 하혈이에요. 얼마나 됐어요?”

의사 선생님은 딸 혼내듯 한참을 엄마 마음으로 혼을 냈더랬다.


몸에 발견된 혹이 양성인지, 음성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수술대 위에 누울 때까지 ‘나’는 왜 일이 몸이 이렇게 되기까지 내두었는가를 한탄했다. 결혼을 약속한 예비신랑에게 가장 미안했다.


3월의 어느 날, 조직검사를 마치고 병동의 침상에 누워 있었다. 침상 위에서 바라본 내 몸은 지금껏 내가 알던 몸과 미묘하게 달랐다. 눈은 갓 태어난 강아지처럼 뜨기 어려웠고, 팔은 천근만근 무거웠는데 온통 붉은 두드러기가 올라와 있었다. 목과 다리는 또 얼마나 따가운지 온몸이 풍선처럼 부푼 느낌이었다. 마취 알레르기로 부작용이 생긴 탓이었다.


다행히 나를 움켜쥐고 있던 종양의 실체는 암이 아닌 큰 폴립이었던 것으로 판명이 났다. 자궁 안에 폴립이 얼마나 크고 많았는지 20분으로 예정되었던 수술은 한 시간에 걸려 끝났고, 그제야 몸에 많은 관심과 배려가 필요함을 느꼈다.


신기하게도 퇴사하고 6개월이 지난 지금은 별다른 수술을 하지 않았음에도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즐기고 있다. ‘암’ 일지 모른다는 일련의 해프닝은 겨우 두 달 사이에 끝이 된 사건이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주위 사람들에) 미안하고 무서운 기억 중 하나이다.


이전까지 내 몸을 갖고 휘두르던 모든 삶의 권한은 결국 건강한 몸에 있다는 배움을 얻은, 그놈의 '쿨함'의 태도를 경계하고 퇴사를 결단한 가장 큰 해프닝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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