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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리 Dec 28. 2023

날 때부터 '리액션 부자'

나는 리액션이 참 좋다는 말을 자주 듣고는 한다.


나를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다. 상대방의 말이 나오자마자 '헐 진짜?' '우와' 같은 말이 금세 튀어나온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몰입해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부지기수다. 최근에는 친구를 힘들게 하는 직장 상사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성이 난 감정을 그대로 전달하기도 했다.


이렇게 글을 적다 보니 리액션이 좋기도 하지만, 정확히는 '상대방의 생각이나 감정에 쉽게 동조한다'라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든, 친한 사람들과 대화할 때 더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나의 이 리액션에 대해 남편은 조심스레 제안했다.

규리의 감정이나 생각에 좀 더 진실하게 반응해 보는 게 어떨까?


이야기를 들어보니 남편은 내가 광고회사에서 AE로 근무하다 보니 자연스레 클라이언트의 말에 맞추어 리액션을 하는 습관이 밴 것 같아 안쓰럽다는 말이었다. 이른 나이에 직장생활을 시작한 나로서는 처음 배운 사회생활의 대화법이 더 쉽게 체화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남편의 제안에 나 스스로도 그러겠노라 대답했다. 하루는 어머님과 대화 중 어머님이 어떤 제안을 하셨던 것 같다. 그 제안에 내가 0.5초 만에 "정말 좋아요~!"라고 반응하자 남편이 짐짓 내 말을 받는다.


그거 정말 좋아하는 것 맞아?
솔직하게 말해도 돼


나는 순간 당황하고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고 내가 어떤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리액션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상대와의 대화에서 나는 늘 타인의 생각과 반응을 중심에 두고 있었다.


과거의 경험을 돌이켜보아도 그랬다. 내가 전 남자 친구와의 불화를 이야기할 때면 친구들은 언제나 나를 지지하며 그를 욕해 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친구들의 반응은 내 예상보다 과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불편한 티를 내지 못하고 친구들의 반응에 동조하고는 했다. 이렇게 겉과 속과 괴리감을 느낀 이후 나는 상대방과 쉽고 편하게 할 수 있는 이야기 소재를 위주로 대화하려고 노력했다. 모두가 동의하고 즐거울 수 있는 분위기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으로부터 비롯한 방어기제였다.


그런데 어제, 이런 태도로는 나 스스로 사람들과 완전히 가까워질 수 없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 안에는 진실한 내가 없었고 그런 내 모습을 어렴풋이 나 자신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리액션에 내 가치 기준을 온전히 담아내어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상대방의 정서나 생각은 존중할 수 있지만, 내 정서와 생각이 굳건히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상대방에게 무조건적인 동의를 해 주는 게 뭐 그렇게 중요하거나 예의가 바른 것이라고. 어차피 누구도 나와 생각이 같을 수는 없다.


상대방의 의견에 무조건적인 반응을 하기보다는, 먼저 내 생각과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런 나의 모습을 세련되게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나와 상대방 모두에게 발전적인 방향이 아닐까. 이제 나만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나를 보여주는 데 좀 더 욕심을 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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