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혼집 냉장고는 아담하다.
오피스텔에 빌트인 된 냉장고를 사용 중인데, 자취할 때 사용해 봤음 직한 크기의 냉장고다.
오죽하면 옆 동에 혼자 사는 여동생 집 냉장고보다 작다. 그러니 엄마가 반찬을 보내실 때면 공동 보관을 위해 여동생 편으로 보내주실 정도랄까. 김장김치도 한 통 이상은 무리인지라, 겨울에는 옷방의 보일러를 꺼둔다. 햇살도 안 들어오는 덕에 차가운 기온을 유지해 겨울이면 옷방은 김치와 와인을 보관하는 저장고로 쓰인다.
엄마는 냉장고 하나 사줄 테니 들여놓으라고 하시지만 남편은 '미니멀리즘'을 이야기한다. 냉장고의 크기가 커질수록 욕망도 그에 비례해 커지고, 효능감은 크지 않다는 것이 그의 주요한 논지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이 작은 냉장고에서 행복을 찾아보기로 한다.
우선 작은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 몇 개만 소진을 해도 금세 냉장고에 틈이 생기기 때문에 그만큼 효능감도 높다. 이른바 냉장고 파먹기 프로젝트. 큰 냉장고라면 티도 안 났을 법만 파먹기지만, 우리 냉장고는 하루 식재료만 파먹어도 빈 곳은 금세 티가 난다. 그만큼 뿌듯하달까.
작은 냉장고는 식재료 관리도 쉽다. 냉장고가 크면 클수록,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언제 넣었는지 기억도 안 날 때가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 냉장고는 열어 보기만 해도 그 안의 식재료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래된 음식은 있을 수가 없다. 자연스레 냉장고 문을 열고 식재료들을 꺼내 요리를 해 먹을 일이 많아지고, 우리의 시간은 풍성해진다.
물론 재료 자체는 풍성하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최소한의 식재료로 근사한 요리를 만들어 내는 일은 창작의 즐거움을 준다. 냉장고에 메모 보드를 붙여두어, 냉동/냉장 칸에 어떤 재료가 있는지와 유통기한을 적는다. 이 리스트를 보며 오늘의 요리를 생각해 본다.
어제 내가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냉장고에는 계란과 고춧가루가 있었다.
계란 카레를 만들어야겠네!
보통 카레라면 당근, 감자, 소고기 등 다양한 재료가 필요하지만 백종원 님의 채널에 구운달걀 카레덮밥 레시피가 있었다. 계란, 고춧가루, 고체카레로 해 먹는 이 카레는 우리 부부가 종종 해 먹는 훌륭한 요리 중 하나가 되었다.
애호박, 두부가 없어도 양파와 된장만 있으면 훌륭한 된장찌개도 가능하다. 재료가 과하지 않으니, 맛도 심플하다.
오늘도 우리 부부는 작은 냉장고 앞에 서 뭘 먹을지 고민한다.
“오빠, 오늘은 열무김치 파먹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