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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리 Aug 19. 2024

남편을 차은우로 바꿔준대도

내 남편도 한창때(?) 훈훈하다는 이야기를 꽤 듣곤 했다고 전해진다.


술 한잔 얼큰하게 들어가면 “오빠가 한 때 말이야...”를 시전 하기도 하고, 어머님도 “우리 아들이 한 때는 말이야, 누구누구를 닮았었는데....”라고 말씀하시고는 한다.


하지만 외모에 있어서 차은우에 비할 바가 될까. 존재만으로 웃음 지어지는 그의 외모 앞에서 “한 때”를 읊조리는 남편의 발그레한 얼굴을 보노라면...


하지만 호기심이 많은 나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누군가와 새로운 결혼을 경험하고 싶지는 않다. 그 대상이 차은우일지라도.


일단 우리의 가사 분담은 이미 완벽하게 나뉘었다. 시댁도 가족만큼 편하다. 남편과의 싸움 패턴도 정형화되어 있고, 싸우는 카테고리를 피하기만 한다면 다툴 일도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참전하기도 한다. 그것이 인간의 습성이란 말인가)


그러니 남편이 객관적 100점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현재의 나에게 최적화된 상태인 것만큼은 변함이 없다. 차은우를 언제 다시 길들일 것인가. (표현이 다소 경솔하다) 길들여질 것 같지도 않지만 생각만 해도 그 과정은 지난하고 피곤하다. 그렇기에 나에게 최적화된 톱니바퀴 같은 남편은 그 자체로 변함없이 내 곁에 있어 주길 바란다. 내 취향과 결점을 꿰뚫고 있는 남편을 바꿀 생각은 전혀 없다.

만약 절대자가 나에게 귓속말로 “남편을 차은우로 쓱 바꿔줄까? 물론 남편의 기억은 삭제될 거야”라고 물어봐 주신다면, 일단 나는 대답할 것이다. “한 시간만 고민해보게 해 주세요.”


하지만 나는 나를 잘 안다. 남편을 택할 것이다.


결혼을 다시 하고 싶지 않은 큰 이유 중 하나는 결혼식을 다시 준비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어른들 간 갈등 없이, 돈 걱정 없이 순탄하게 했다고 자부하지만, 모든 과정이 고민의 연속이었다. 청첩장을 주기 위해 친구들과 일정을 조율하는 일부터, 양가 어른들을 모셔야 하는 상견례, 결혼식 버스 대절과 도시락 업체 선정 등등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야 할 게 너무 많았다. 어떻게 준비해야 누구 하나 상처받지 않고 실수가 없을지도 많이 고민되었다. 인생의 소중한 순간인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이 좀 더 쉽고, 행복하면 좋았으련만 그러기에 한국의 결혼 제도는 참 챙길 게 많았다. 숱한 사람 관계에 치이기도 했다. 청첩장을 주지 않아 서운하다는 사람 이야기도 더러 들렸다.


팀 동료들의 결혼식을 6개월 간격으로 겪으며, 결혼 준비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양가 부모님 사이에서 한복에서부터 등장 방식, 예물, 예단 비용, 집안 인테리어 등등 조율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다들 좋은 분이지만 생각과 관점까지 똑같을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 아니던가. 격무 중 결혼 준비를 한다고, 결혼 결심이 후회되는 메리지블루가 오는 경우를 보기도 한다.


지금 우리 둘은 어떻게 이러한 평안에 이르렀는가? 지금의 집 형태, 지금 익숙함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갈등을 이겨내 왔는가?


결혼 준비를 하는 동료를 보며, 지금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 생각해 본다.

우리, 이 정도면 평안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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