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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리 Oct 29. 2024

광고주는 '주인'인가?

어느 책에서 읽은 이야기다.


한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주인님! 다름 아니라 변기가 고장 나서요. “ 그러고 나니 자신이 머슴이 된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세입자는 정당하게 주거비를 내는 대등한 입장인데 마땅한 호칭을 찾지 못해 '주인님'이라 부른 것이다. ‘임대인’과 ‘임차인’ 같은 표현을 써야 한다는 요지의 글이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문득, 우리 광고 업계의 언어가 떠올랐다. 흔히 쓰는 ‘광고주’와 ‘광고대행사’라는 용어가 바로 그렇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표현이 싫고 불편해 꼭 ‘광고회사’나 ‘클라이언트’라는 용어를 고집하곤 한다.

발음상으로나 통상적으로 광고주, 광고대행사가 더 익숙한 표현일지 언정, 언어가 관계의 위계를 규정지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렇다.


‘광고주’라는 단어만 봐도 그렇다. 주(主)라는 한자가 주는 의미는 단순히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위치를 넘어선다. 주인이라는 표현이 가져오는 상하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주인이 있다면 종속적 관계 또한 따라오게 마련이다. 반면, ‘클라이언트’라는 단어는 더 협력적이고 대등한 느낌이다. 단순히 요청에 응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즈니스의 동반자로서 일하는 파트너십이 느껴진다.


‘광고대행사’라는 표현도 비슷하다. ‘대행’이란 단어는 남의 일을 대신해준다는 의미가 강하다. 그래서 때로는 밑도급 업체처럼 여겨지고 실제로 몇몇은 그리 대한다. “PPT를 PDF로 바꿔서 제 카톡으로 보내주세요.” “주말 대기해 주세요.” 같은 요청을 받을 때가 그렇다. 광고회사는 단순한 대행사가 아닌, 전략과 크리에이티브 능력을 발휘해 캠페인을 이끌어가는 주체라고 믿기에 이런 표현이 답답하다고 느껴진다. (우리의 전문성을 믿고 일을 맡기신 거라면, 최소한의 존중을 두고 대해 달라고 외쳐본다)


어느 광고회사를 가도 '빌런' 클라이언트는 존재한다

언어가 만들어내는 미묘한 차이가, 우리 일의 방향과 업을 대하는 자세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클라이언트의 요청에 상시 대기하고 퇴근 시간까지 조정받는 관계가 아닌,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시너지를 창출하는 파트너로 나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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