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몇몇 사람들은 나를 ‘디즈니 재질’의 사람이라 불러준다. 화가 나도 전혀 화난 거 같지 않고, 말투가 사근사근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속사정은 좀 다르다. 사실 나는 회사 일에 쉽게 휘둘리는 개복치 인간이라,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써 경계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누군가 내게 성격이 좋다거나 F 같다고 할 때면 내심 흐뭇하다.
이 얘기를 동생에게 했더니 콧방귀부터 뀌었다.
“언니는 F 호소인일 뿐, 절대 F가 아니야. 디즈니? 크루엘라로 해도 설명이 안돼."
동생이 이렇게까지 말하는 이유는, 동생이 조언을 청할 때마다 위로보단 상황분석이 앞섰기 때문이다.
- 여동생 : 언니, 면접에서 예상과 다른 질문들만 나와서 속상해.
- 나 : 면접이란 게 원래 그런 거야. 예상 질문대로만 나오면 그게 오픽이지, 무슨 면접이야.
여동생은 "아이고 속상하겠다."가 먼저 나와야 정상 아니냐고, 그게 위로냐며 웃었다. 나는 동생이 받은 질문의 난도를 확인하고, 답변이 충분했는지를 판단하는 식이지, 덮어놓고 위로하는 건 영 어렵다.
남편의 위로 방식도 비슷하다. 내가 광고회사에서 겪는 부당함을 하소연하면 이런 식으로 말한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된다"
"을이 싫으면 갑이 되어야 한다. 스스로 을의 자리에 있으면서 상황을 탓하면 안 된다."
그러면서 정곡을 찌른다. 내가 광고회사에 계속 남아있는 걸 보면, 견딜 만큼 일이 매력있거나 아직 버틸만한 거라고!
'T발 C냐'라는 유행어에도 진실이 아주 없지만, 내 생각에 T형 위로는 다른 빈틈을 채운다. 문제가 정말 힘든 게 맞는지, 당장 해결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말이다.
따뜻하지만은 않아도 도움 되는 말만 해주는 남편 덕에 나는 많은 문제를 실제로 해결했고, 조금은 감정에 덜 휘둘리는 사람으로 성장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처음엔 차갑게 들려도, 마음이 단단해지는 힘이 되는 그런 위로를 줄 수 있는 사람. 부당한 일을 겪어도 다음 수를 잘 두는 지혜를 줄 수 있는 사람.
그렇게 묵직하게 균형을 잡아주는 단단한 T 식 위로를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