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사람들은 우리 부부 얘기를 좋아한다. 경제관이 부럽다나, 재밌다나.
(그럴 땐 속으로 '그럼 다음 생엔 우리 남편 같은 사람이랑 살아보시라' 싶어진다. 물론 장점이 아주 많지만.)
돈 모으는 에피소드도 많고, 돈 때문에 다투는 에피소드도 많지만, 올해 지인들이 가장 흥미로워한 이야기는 단연 '디올 횡령 사건'이다.
사건은 엄마 생신쯤에 일어났다.
엄마는 카드 지갑을 갖고 싶다고 하셨고, ‘디올 카드지갑’이 내 예산선에 걸렸다. 하이엔드 브랜드 치고 비교적 합리적인 50만 원대.
'이 정도면 괜찮지' 싶은 마음으로, 양가 부모님 선물로 우리가 책정해 둔 예산 20만 원에, 내가 따로 모아둔 용돈을 더했다.
그런데 그날 밤, 남편이 물었다.
"근데 디올 지갑이 우리 예산으로 가능했어?“
원래 예산은 20만원이었으니, 설명이 필요했다.
첫째, 엄마가 지갑을 바라셨고,
둘째, 좋은 걸 해드리고 싶었다.
셋째, 에르메스나 루이비통보다 훨씬 합리적인 가격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용돈으로 부족분을 냈으니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남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거 횡령이야
부모님 선물을 좋은 걸 해드리는 건 찬성이지만 사전에 협의도 없이 우리 예산을 초과하는 건 '횡령'이라는 거였다.
논리는 이랬다. 나는 당시 남편보다 매달 용돈을 10만 원 더 받고 있었다. '품위 유지비' 명목이었다. 화장품이나 옷 같은 개인 미용비로 쓰라고 만든 항목. 그런데 그 돈을 부모님 선물에 썼으니 '예산 목적 외 사용', 즉 횡령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로 인해 선물의 공정성이 무너졌고, 남편이 나를 위해 썼으면 하는 금액 또한 나를 위해 쓰이지 않았으므로, 향후 나를 위한 지출은 공금으로 상호 협의로 사용하는 게 맞겠다고 했다.
(즉, 용돈이 다시 20만원으로 삭감되었다)
이상, 디올 횡령 사건의 전말이다.
억울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리하여 지금, 나는 다시 용돈 20만 원으로 살고 있고 남편도 그렇다.
부모님 선물은 이제 서로 합의하에 조금씩 조율하고, 더 좋은 선물을 해드리도 하지만 맘 편한 선물은 어렵기만 하다.
그래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복권 같은 게 돼버리면, 가격 같은 거 신경 안 쓰고 가족들한테 펑펑 써보겠다고. 미래를 위한 돈으로 쓰지 않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