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좋은 점 중 하나는 내가 못하는 걸 해줄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거다.
남편은 나보다 돈 관리에 훨씬 철저하고 시스템화하는 데 즐거움을 느낀다. 노트북 앞에서 뭘 그렇게 두드리나 보면, 소비 내역을 엑셀에 입력하고 잔액과 현금 흐름을 계산한다. 그게 진심으로 재밌다고 느끼는 거 같다. 그래서 우리 집 경제 담당은 당연히 남편 몫이 되었다. 나는 이 일이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알기에, 매번 이 일을 해주는 게 고맙다.
우리는 매주 한 번 소비 내역을 같이 리캡 한다. 관리비, 생활/쇼핑비, 외식, 여행, 미용, 주류비 같은 항목이 월 계획에 맞게 돌아가는지 확인하는 시간이다. 언제나 목표대로 소비할 순 없지만, 그래도 조금은 신경을 쓰게 됐다. 그런데도 가끔 실수할 때가 있다. 로션이 똑 떨어진 순간. 파마가 풀려 머리가 지저분할 때. 잔액을 확인하지 않고 무작정 소비하는 순간 등이다. 나는 사야 할 때는 사야 하고, 소비를 좋아하는 쪽이라 차라리 엑셀을 눈감아버리는 선택을 하곤 만다. 그러다 보면 충돌이 생기고.
"가계부 안 봤어? 아직 이렇게 쓸 때가 아니잖아. 파마에 38만 원?"
"가끔 나 혼자 팀플하는 거 같아. 우리한테 같은 경제적 목표가 있는 거 아니었어?"
안다.
생각 없이 쓰다간 은퇴 계획이 날아간다. 그래도 결혼 전부터 쓰던 로션이 비싸다고 하거나, 미용실을 다음 달에 가지 그랬냐는 식으로 말하면 조금 억울하다. 이 정도 기본권도 없는 결혼 생활이라니!
그래서 나는 진짜 쪼잔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남편이 외식할 때 생맥주를 시키는 게 그렇게 얄밉다.
'내 로션값은 아까우면서 맥주값은 안 아깝니?! 꼭 이 비싼 맥주를 서너 잔씩 마셔야겠니?'
아무리 생각해도, 로션은 한번 사면 1년은 쓰는 거 같고, 파마도 6개월은 간다. 그런데 맥주는 빈도가 잦고 비용도 만만찮다. 좀 먹었다 하면 7만 원은 족히 쓰는데. 평일 저녁이고 주말이고 눈을 반짝이며 "맥주 마시러 갈까?" 묻는 남편을 도끼눈 뜨고 바라볼 뿐이다.
경제관으로 다투는 부부는 많다. 그래서 차라리 서로 소득을 밝히지 않고, 각자 쓰는 부부 이야기도 들었다. 이렇게 하면 로션 값이든, 맥주 값이든 참견할 일은 없을 거다. 하지만 우리는 빠른 은퇴란 목표가 있고, 그러려면 아끼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내 소비를 건드린다면, 나도 남편의 맥주값이 아까울 수밖에 없지 않나?
이쯤 쓰고 보니, 먹는 걸로 쪼잔하게 구는 내 그릇이 작아 보인다. 하지만 늘 쪼잔해지는 건 아니다. 코스트코에 가면 남편이 좋아하는 맥주를 두 짝씩 사고, '생맥주 4500원!'과 같은 플래카드를 보면 내가 먼저 가자고 제안한다. 이뿐일까. 남편이 좋아하는 브루어리 이벤트 알림까지 켜두고, 주말에 예약까지 해서 데려가기도 한다.
결혼생활이 뭔지, 서로 씀씀이를 견제하다가도, 서로 행복까지는 건드리고 싶지까진 않아지는데, 이 경계를 지키는 건 늘 어렵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