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의 종전 (feat. 미소)

by 규리

가장 사적인 공간을 공유하는 남편과 살다 보니, 말로 하지 않은 약속들이 자연스레 많아졌다. 그중 하나 청소다.


네가 설거지하면 내가 바닥청소할게, 이런 식으로 명확히 나눈 건 아니지만 굳이 따지자면, 각자 조금 더 잘하거나 덜 괴로운 일을 맡는 식으로 청소 분담이 평화롭게 이루어졌다.


내 담당은 빨래다. 좋아하는 속옷과 수건이 분명한 편이라 세탁물이 찰 때까지 기다리지 못한다. 퇴근시간에 맞춰 세탁기 예약을 걸어두고, 건조기까지 돌린 뒤 차곡차곡 개키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집안일이라기보다 취미에 가깝다.


반면 남편은 정리에 소질이 있다. 우리는 싸우고 나면 각자 다른 방식으로 기분을 수습하는데, 남편은 그럴 때 다이소에 간다. 전선 정리 케이블이나 수납 정리함을 양손 사서 한참을 퉁탕거리며 집을 개보수한다.

엉킨 선을 풀고 그릇 오와 열을 맞추다 보면 마음의 앙금도 함께 정리되는 모양인데, 그 덕에 싸운 날엔 집이 한결 말끔해진다.

접시 정리대를 사와, 한결 깨끗하게 정리해뒀다


청소를 좋아하는 나, 정리를 좋아하는 남편. 이렇게 성향이 나뉜 덕에 우리 집은 대체로 쾌적한 편이지만, 딱 한 곳만은 늘 타협이 어려웠다. 바로 화장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머리카락의 지분으로 따지자면 내가 하는 게 맞고, 화장실 사용 빈도와 오염도를 따지자면 남편이 하는 게 공평해 보였다. 누군가는 해야 했는데, 문제는 둘 다 비위가 약하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화장실 청소는 은근한 눈치 게임이 되었다.

더러움을 잘 참는 자가 이기고, 못 견디는 자가 지는 게임.


불행히도 내 비위가 조금 더 약했던 탓에, 청소는 내 몫이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고무장갑을 끼긴 했지만, 유독 청소할 게 많은 날은 짜증이 치솟았다.


이 지지부진한 전쟁을 끝낸 건 친구의 무심한 한마디였다.

“나 미소 청소 써봤거든. 그냥 두 시간만 써봐. 싸울 일이 없어.”


2시간에 4만 원.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청소 때문에 소모되는 감정을 생각하면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서비스를 신청하고 퇴근해 현관문을 열었던 날을 잊을 수 없다.

'우리 집 수전이 원래 이렇게 영롱하게 빛나는 재질이었던가!'

물기 하나 없이 뽀득뽀득한 세면대와 반짝이는 타일을 보며 나는 경이로움마저 느꼈다.


마음이 잘 맞는 클리너님을 지정해 정기적으로 서비스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서로 얼굴 한 번 본 적 없지만, 다녀가신 날이면 집안 곳곳에 윤기가 흘렀다. 클리너님 또한 우리 집이 맘에 드셨는지, 내가 챙겨둔 간식 옆에 정갈한 글씨체로 감사 포스트잇을 남기기도 하고, 어느 날은 식탁 위에 꽃 한 송이를 선물처럼 꽂아두고 가시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주고받는 다정한 마음도 좋았다.


요즘도 청소 문제로 티격태격하는 부부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는 미소를 권한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닦아도, 전문가의 손길은 정말 다르다고.


얼마 전 회사로 미소 광고 문의가 들어온 적이 있다. 여러 사정이 겹쳐 비딩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이러나저러나 우리 집 평화를 오래 지켜준 브랜드라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다. 아마도 오래오래 사용할 거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이토록 다른 타인과의 동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