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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리 Mar 06. 2023

일상에 환상을 더한 영국 브랜드

더콘란샵 The Conran Shop

예술 감각이 뛰어난 한 지인 부부가 있다. 평소 예술에 대한 관심이 깊어 프리즘이나 서울옥션에서 구매해 온 예술품을 신혼집 곳곳에 배치해 둔 게 인상적이었다. 집 안의 인테리어나 소품을 보면 허투루 한 것 하나 없다. 요리 하나를 담아도 어울리는 그릇에 담는다. 안개꽃만 넣어둬도 꽃이 안목 높은 화분 빨을 받는다. 어디서 이런 소품을 사 오는지 물어보았더니 해당 브랜드를 말하더랬다.  

더콘란샵
the Conan shop


이렇게 알게 된 더콘란샵은 한국에서는 내 지인의 공간을 아름답게 장식했지만, 영국에서는 이미 오랜 세월 '영국의 문화 스승'이라 여겨질 만큼의 위상이었다. 영국인의 먹고 생활하는 방식을 크게 바꿔놓았다고 한다.

©TheConranShop

역사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영국에는 수백만 명의 노숙자가 생겼다. 그리고 국가 전체는 전쟁의 후유증을 겪게 됐다. 당시 국가 재산의 25%가 상실되었기에 오로지 '경제발전! 문화는 사치!'를 외칠 때였다. 당시 영국인 콘란은 22살 청년일 뿐이었지만 칙칙하기만 했던 영국의 시대적 분위기를 전환할 획기적인 사업을 구상한다. 프랑스 여행에서 영감을 받아 렌틸콩 수프와 바게트, 프랑스 치즈조각과 사과 타르트 구성의 레스토랑 '더 수프 키친 The Soup Kitchen'을 론칭한다. 이 레스토랑의 성공에 힘입은 콘란은 전 세계 30곳이 넘는 음식점을 연달아 내며 사업을 확장한다. 긴 시간이 흘러 2005년에는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레스토랑 오너로 임명되기까지 이른다.

테렌스 콘란 경 ©TheConranShop

공예학교에서 직물 디자인을 전공한 콘란은 음식 다음으로 가구에 관심을 기울였다. '좋은 디자인은 삶의 질을 개선한다'는 슬로건으로 영국 가정을 세련되고 현대적으로 변화시킬 가구점 '해비타트 The Habitat'를 론칭한다. 미드 센추리 모던 빈티지풍의, 화사하고 산뜻한 가구 중심이었다. 폐허가 된 영국 서민의 가정집에 콘란의 소품, 가구 하나하나가 들어서면서 공간의 분위기를 완전히 새롭게 바꾸었다.

해피타트 카탈로그 © the Design Museum

그리고 이러한 가구브랜드 해비타트에 프리미엄 리빙샵을 선보인 게 바로 '더 콘란샵'이다. 한 단계 올라선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고급 브랜드로 끌어올린 만큼, 르코르뷔지에와 같은 거장의 작품도 해당 브랜드의 제품으로 함께 선보였다.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가구와 생활용품, 패션 잡화를 큐레이션 해둔 것이 특징이다. 


콘란 경(sir)

60년이 넘는 기간 디자인으로 영국인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친 콘란은 1983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는다. 영국 디자인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인정을 받은 셈이다. 그는 20세기 디자인사에서 영국과 세계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이 되었다.


시그너처 컬러

콘란블루 Conran Blue. 콘란이 가장 사랑하는 색으로 알려져 있다. 단독 디자인, 매장 벽컬러, 쇼핑백 등 다양한 곳에 쓰이며 더 콘란샵의 상징이 되었다. 그의 영국 옷장 안에는 다른 색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상징적인 코발트 컬러가 진열되어 있다고 한다.


서울에 상륙하다

더콘란샵은 백화점에 입점하거나 플래그십 스토어 형태로 운영할 때 철저한 상권 분석을 거치기로 유명하다. 이런 더콘랍샵이 한국의 둥지로 롯데백화점 강남점을 택했다. 신관 1~2층을 통으로 사용하며, 약 1,000평 규모로 런던 본점보다도 큰 규모다. 강남점은 전 세계 더콘란샵 매장 인테리어의 스탠더드가 되었을 정도로 내부 인테리어에 많은 공을 들였다.

더 콘란샵 강남점 ⓒBRIQUE Magazine
더 콘란샵 강남점 ⓒBRIQUE Magazine

강남점의 관전 포인트

1. 층마다 다른 콘셉트

1층은 실험실 콘셉트로 전체적으로 하얗게 꾸며두었다. 그렇기에 컬러감 있는 제품이 하나하나 집중되는 구조다. 문구와 아트포스터, 오디오, 식기류를 다양하게 큐레이션 했다. 

2층은 클럽 라운지 콘셉트로 블랙이 메인컬러다. 세계적인 디자인 의자와 수입 가구가 주를 이루며, 여러 브랜드 조명을 한데 모아둔 섹션도 눈길을 끈다.


2. 매장 음악

스타벅스는 매장마다 BGM 선정에 어느 정도 자율성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콘란은 본사가 음악을 관리한다. 전문 음반회사에서 제작한 음악을 전 세계 매장에 일제히 공급한다. 콘란샵 콘셉트에 걸맞은 음향을 구축하기 위한 별도의 크리에이티브 팀도 있다. 편안하면서도 경쾌하고 감각적인 음악이 주류다. '동시간에 영국, 프랑스, 일본 매장에도 이 노래가 흐르겠구나' 상상하면 조금 더 즐거운 발걸음이 될지도.


3. 올비 카페

창립자 테렌스 올비 콘란의 중간이름에서 따온 카페 이름이다. 마포구의 로컬 브랜드 '테일러 커피'와 협업해 만든 카페다. 테일러 커피의 시그너처 커피는 물론, 콘란샵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원두 2종류도 만나볼 수 있다. 칼 한센의 의자 20여 종과 허먼밀러 조명 등 매장에 판매 중인 제품을 직접 체험하며 커피를 즐길 수 있다.


4. 콘란 경의 삶을 엿보는 VVIP룸

2층에는 콘란 경의 집무실처럼 꾸며둔 VVIP룸이 있다. 콘란이 좋아하는 위스키 80종, 시가, 그의 서제, 시그너처 아이템 등이 구비되어 있다. 고가 가구를 구매하는 고객의 대기 장소로 쓰인다고 하지만 딱히 공간을 숨긴 것도 아니라 일반 방문객들도 방을 오가며 콘란의 취향을 엿볼 수 있다.

더콘란샵 2층 VVIP룸 ⓒ서울신문



Writer's Note

소비할 일은 사실 도처에 널려있다. 멀리 발을 옮기지 않아도 스마트폰으로 물건을 주문할 수 있고, 무언가를 보고 듣고 사는 일은 너무나도 간단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오프라인 시장'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현장에서 다양한 물건을 보며 영감을 얻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더 콘란샵을 가지 않았다면, 머리를 살짝 터치하면 통통 튀기며 춤을 추는 '홉피미스트'란 인형을 만나지도 못했을 거고, VVIP룸을 바라보며 나중에 성공하면 저렇게 위스키 60병 쌓아놓고 책과 술에 묻혀 살아볼까 하는 욕심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만든 공간과 레스토랑이 크게 크리에이티브하거나 상상의 범주에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평범한 일상의 감각에 제동을 걸고 재미를 더해줄 감성템을 구경하고 싶다면 추천한다. 합리적이고 가성비 있는 것들과는 거리가 다소 멀지만, '폐허였던 영국인의 생활을 업그레이드하고 싶어서' 만든 그의 소품은 별것 아닌 일상을 별것으로 만들어낸다. 일상의 반복성에 콘란식 라이프 스타일이 더해지면 왜인지 모르게 내 삶 또한 조금 더 재미있게 바꿀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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