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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리 Mar 09. 2023

요가복 업계의 샤넬

룰루레몬 lululemon

올해로 요가를 시작한 지 9년 차. 처음으로 '룰루레몬' 요가복을 입었다. 생일선물로 남편이 준비한 선물이었다. 쇼핑백을 주며 건넨 그의 첫마디는 이랬다. 

요가복 브랜드 중에 제일 알아준다길래 준비했어

내 오랜 취미의 매력을 배가시켜 줄 운동복이라니, 그것도 룰루레몬을? 이 남자 나랑 1년 넘게 산 사람이 맞다니. 적응했다고 느꼈지만 아직도 적응하지 못한 그의 센스에 놀라 그저 방방 뛰었다. 그리고 나 또한 이 브랜드에 대한 관심이 배가됐다.


룰루레몬의 시작

1998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사업가 데니스 J.칩 윌슨 Dennis J. Chip Wilson의 아이디어로 시작했다. 대학 운동선수였던 부모 밑에서 자라며 웨스트비치 Westbeach라는 스노보드 의류 회사를 운영하다 매각하고, 새로운 사업 구상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우연히 요가 수업에 참여하게 된다. 


이때 사람들의 복장에서 불편함을 발견한다. 당시 요가복은 면 소재여서 땀에 젖으면 몸에 달라붙었고 통기성도 좋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만들던 서핑복 안감으로 요가복을 만들면 승산이 있다고 보았다. 이윽고 룰루레몬 애틀라티카(이하 룰루레몬)를 설립한다. 

룰루레몬 창업자 칩 윌슨

브랜드 명

브랜드 이름은 '의외로' 설문조사를 통해 정했다. 20여 개의 이름과 로고를 두고 결정한 결과가 룰루레몬이었다. 그러나 칩 윌슨은 2005년 내셔널 포스트 비즈니스 매거진 인터뷰에서 말하길 "영어 L자 발음에 어려움이 있는 일본인 고객이 제대로 발음하려 애쓰는 모습을 상상하며 L자가 3개 들어간 회사명을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발음이 어려운 L을 3개나 넣어 이름을 지으면 돈을 3배는 벌 수 있을 것 같았다는 그의 발언은 마케팅적인 요소와 더불어 미묘한 인종차별적인 비판도 있었다.


브랜드 로고

그리스 문자 오메가(Ω)를 닮은 룰루레몬 로고는 룰루레몬 애틀라티카의 'A'를 변형해 디자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Authentically Hip(운동적인 엉덩이)’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초기 전략

론칭 초기 레깅스 한 벌 가격은 무려 100달러. 다른 요가복보다 3배 이상 비싼 가격이었다. 그런데 윌슨은 제품의 성능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초기에는 룰루레몬은 여행과 유행, 운동을 좋아하는 평균연령 32세 전문직 여성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고 한다. 소득 수준이 높고 건강에 관심이 많은 전문직 여성이라면 비싼 요가복도 기꺼이 살 것이라 판단했다. 그의 이 판단은 바로 적중했다. 룰루레몬의 요가복은 젊고 부유한 여성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고, 할리우드 스타로까지 연결되며 파파라치 사진 속 '원 마일 웨어 one-mile wear', 즉 집에서 1.6km 정도 거리를 편안하게 입고 다닐 수 있는 평상복으로 전체적인 인지도를 끌어올리게 되었다.


장과 위기

사업이 커지자 룰루레몬은 2005년 사모펀드인 애드번트 인터내셔널 Advent International과 하일랜드 캐피털 파트너사 Highland Capital Partner의 손을 잡고 그 조건으로 지분 48%를 팔게 된다. 그러나 새 이사회가 꾸려지며 룰루레몬은 난항을 겪게 된다. 단기적 이득을 취하기 위한 사모펀드의 욕심이 과한 탓이었다. 운동과 건강이라는 회사 미션은 둘째로 밀렸다. 설상가상으로 2013년에는 신문에 '룰루레몬 요가 바지 속이 훤히 비친다'는 글이 실리며 전부 리콜 조치를 받는다.

https://www.businessinsider.com/lululemon-see-through-yoga-pants-2013-3

여기서 끝나지 않고 같은 해 칩 윌슨은 요가복에 보풀이 일어난다는 항의에 대해 "일부 뚱뚱한 체형의 여성에게는 룰루레몬의 요가복이 적합하지 않다"라고 말하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이렇게 칩은 이사회 의장직에서 해임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룰루레몬은 다시금 패션과 의류 리테일러 가운데 세계 최고 수준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캘빈 맥도널드가 CEO에 오른 후 브랜드 타깃을 30대 전문직 여성에서 '남녀노소 누구나'로 바꾸고 '사이즈 다양성'을 확보한 덕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다사다난한 이슈와 창립자 자질 논란에도 브랜드 차원의 타격을 크게 받지 않는 데는 '대체 불가한 최고 수준의 품질'이라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브랜드 차별점

1. 고객-판매자 관계

손님을 게스트 guest, 매장 스태프를 에듀케이터 educator라 부른다. 에듀케이터라 불리는 스태프는 고객이 어떤 운동을 즐기고, 어떤 촉감을 좋아하는지 등을 물으며 운동과 건강 정보를 제공한다. 고객이 실제로 무언가를 사는 건 그다음이다. 룰루레몬은 사람들이 더 오래, 건강하고, 더 재미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사명으로 일하며, 별도의 영업은 하지 않는다.


2. 커뮤니티

룰루레몬은 별도의 상업광고는 집행하지 않는다. 대신 각 지역의 앰배서더와 함께 커뮤니티를 구축한다. 매장 영업시간이 끝나면 진열한 상품을 옆으로 옮기고 중앙 공간에 매트를 깔아 요가 강습을 진행하기도 한다. 지역의 앰버서더 혹은 주변 스튜디오 강사가 직접 강의를 진행하며 코로나 때는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룰루레몬 커뮤니티 클래스

커뮤니티 클래스에 참여하게 된 고객은 자연스럽게 룰루레몬의 제품을 접하게 된다. 이렇게 룰루레몬과 관계를 맺어 각자의 지인에게 추천을 하게 되면, 이것이 궁극의 마케팅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3. 피드백을 통한 제품 개발

자체 R&D센터 '화이트 스페이스 White Space'가 있다. 2012년에 신설한 부서로 소재 개발, 제품 검증, 제품 콘셉트 연구 등을 한다. 사람이 운동할 때 원하는 느낌을 정확히 짚어내기 위해 과학자, 엔지니어, 디자이너, 앰배서더, 에듀케이터가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에듀케이터는 현장에서 모은 인사이트와 불만 사항을 전하고, 앰버서더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제품 테스트에 참여하며 개발에 목소리를 더한다. 화이트 스페이스는 이러한 의견을 반영해 여러 차례 테스트를 거듭한다.


4. 제품을 설명하는 법

다른 스포츠 브랜드와 룰루레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입었을 때의 느낌'을 꽤 그럴듯하게 묘사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구매한 요가바지 택 tag의 문구이다. '버터처럼 부드러운', '웨이스트밴드가 허리를 조이지 않고 감싸줘요'와 같은 문구이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단어로 제품의 느낌을 묘사하니 예비구매자의 감성을 건드려 호기심을 이끌고 훨씬 설득적이다.

얼라인 팬츠의 택 tag 문구

Writer's Note

룰루레몬 얼라인 팬츠를 입은 첫 느낌은 이랬다. 아무것도 안 입은 것 같다! 지금까지 입은 모든 옷을 초월하는 느낌이었다. 웨이스트 밴드가 배를 안정적으로 지지해 주었고, 몸의 단점을 잘 가려주는 한편 불편하게 조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필라테스하는 동안 내 신체가 이렇게 가볍고 탄탄했나? 싶었다. 지금까지 깨닫지 못한 운동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느낌이었다. 좀처럼 흉내 낼 수 없는 착용감이기에 요가복 계의 샤넬이란 별명을 얻었구나 싶었다. 이런저런 창립자, 경영진 자질 논란이 있고 굴곡이 많은 브랜드지만, 제품의 퀄리티가 기반이 되다 보니 위기 속에 강할 수밖에 없다. 

이 브랜드는 제품 퀄리티와 고객의 건강을 생각하는 브랜드 미션만은 놓치지 않는다. 고객의 불편함을 관찰하고, 기장과 사이즈 등 여러 디테일을 개선하고 있는 룰루레몬이 얼마나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지, 얼마나 더 멋진 상품으로 만족감을 줄 수 있을지 향후가 더욱 기대된다. 그러면 또 지갑을 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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