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 Aesop
친구가 레저렉션 아로마틱 핸드밤을 생일 선물로 주었다. '이솝 Aesop'이라는 브랜드를 처음 접한 계기였다. 사용한 순간, 제품의 향기와 산뜻한 발림성에 완전히 반했다. 지금도 사용하고 종종 선물하기도 한다. 대개 향은 취향을 타기 마련인데 이솝 특유의 향은 젠더리스에 가깝다. 깔끔하고 단정하고 호불호가 없다.
수년째 '카카오톡 선물하기' 판매 최상위권을 기록한다고 한다. 한국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매출이 큰 시장이라고도 하니, 이쯤 되면 한국에서 유독 이솝 사랑은 뜨겁다.
이솝의 시작
이솝은 1987년 호주 멜버른의 작은 미용실에서 시작했다. 창립자 데니스 파피티스 Dennis Paphitis는 헤어스타일리스트 부모님의 업을 이어 미용실 '아마데일 헤어 살롱'을 오픈한다. 당시 데니스는 고객을 가려 받는 까다로운 미용사로 유명했다. 호주-미국을 오가며 마음에 드는 헤어제품 개발에 매우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 헤어제품은 독한 화학성분에 암모니아향이 강했다. 이런 제품에 회의를 느낀 그가 처음 만든 제품은 에센셜 오일을 넣은 헤어케어 제품이었다. 이렇게 시작한 이솝은 지금도 우수한 품질의 건강한 뷰티 제품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다.
"저는 방부제를 덜 쓰고 유기농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는 점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가슴이 시키는 일이었으니까요. 1회분 생산량에 방부제 수치가 제로에 가까워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어요"
by 데니스 파피티스
브랜드명
'이솝우화'의 이솝이 바로 이 이솝 Aesop이다. 권선징악 혹은 인과응보라는 교훈이 뚜렷한 우화를 브랜드명으로 정한 순간, 이 브랜드가 나아갈 바를 명확히 정한 셈이다. 자칫하면 도덕성이 결여되기 쉬운 뷰티 브랜드에 '이솝'이란 이름은, 과거와 현재는 물론 브랜드가 지켜야 할 사명을 담고 있다. 이솝은 과장 섞인 과대광고나 문구로 제품을 팔지 않고 목적이 확고한 제품을 개발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브랜드 철학
그래서 이솝의 제품과 디자인은 '최소를 가지고 제대로' 만든다. 불필요한 제품과 디자인 요소는 덜어낸다. 이솝의 공동 창립멤버이자 현 CCO인 수잔 산토스 Suzanne Santos는 이렇게 말한다.
이솝은 처음부터 완벽했다
여기서 말하는 완벽이란 절대적 완벽은 물론 아니다. '더할 것이 없는 상태' 혹은 '그 상태를 지키려는 의지'를 말한다. 이솝에 제품 리뉴얼이 많지 않은 이유와도 맥이 닿아 있다. 애당초 잘 만든 제품은 매 시즌 새로워질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브랜드 차별점
1. 단순 명료한 패키지
이솝을 떠올리면 갈색 유리병이 먼저 떠오른다. 전통적으로 알코올이나 의약품을 보관할 때 갈색 유리병을 쓰는데 이솝 또한 빛과 자외선 투과를 막기 위해 이런 용기를 사용한다. 다른 뷰티브랜드의 패키지가 화려한 것에 비해 라벨 디자인은 어떻게 보면 조촐한 수준이다. 흰색 라벨에 제품명과 설명, 이 두 가지로 디자인을 마무리한다.
2. 친환경
이솝 패키징의 철학은 언제나 친환경주의다. 불필요한 포장을 지양하며, 재활용할 수 있는 코튼 백에 제품을 담아준다. 갈색 유리병은 대부분 재활용 유리로 만들고, 제품을 포장할 땐 재활용지나 카드보드를 사용한다.
친환경 정책은 브랜드가 매장을 설계할 때도 적용된다. 탄소 발걸음을 줄이기 위해 매장과 멀지 않은 곳의 재료를 사용해 매장을 설계한다. 매장이 이전하거나 폐점하게 되면, 이전 매장에서 사용하던 부품을 창고에 보관했다가 재사용하거나 이웃과 나눈다.
오프라인 매장 특징
1. 싱크대 대화법
이솝의 웰컴 문화는 특이하다. 입구에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핸드 밤'을 두어 지나가는 동선에 마음대로 사용해 볼 수 있다. 매장에 가면 컨설턴트가 고객의 니즈에 적합한 제품을 사용하도록 대화를 시도한다. 피부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민이 있을지 등에 대한 질문을 자연스레 건네며 싱크로 향한다. 손을 씻으며 나에게 맞는 제품을 살펴보고 선택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2. 홀수 배열과 반복
이솝 매장 디자인 특징 중 하나는 갈색 유리병이 줄지어 늘어진 모습이다. 가만 보면 제품이 홀수 단위인 3, 5, 7로 배열되어 있다. 이는 브랜드가 3을 안정적인 숫자로 인식하는 이유에서다. 전 세계 도처에 200개 넘는 매장의 디자인은 전부 다르지만, 이러한 미적 일관성은 전 세계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솝 매장 직원의 중요한 일과 중의 하나가 제품의 열과 오를 맞추는 일이라 하니, 매장에 가면 이런 노력이 경외감으로 이어진다.
3. 지역성을 담은 매장
이솝은 새로운 스토어를 찾을 때 그 지역에 잘 어울리도록 가치를 더하는 데 집중한다. 이솝은 각 동네가 지닌 특징을 면밀하게 관찰하여 어떻게 하면 동네에 잘 녹아들지 검토하여 동네 사람들과 함께 가치를 공유한다. 우리나라의 부산점은 진열대를 버려진 청기와로 만들어 바다의 느낌을 살렸다. 제주점은 해녀의 잠수복을 재활용해 창틀을 만들기도 했다. 한국에선 유독 백화점에 입점한 형태의 이솝을 접하는 경우가 많은데, 엄밀히 따지면 타 브랜드의 향이 섞이고 매장의 개성을 살리기 어렵기 때문에 이솝이 지향하는 모습은 아니다.
직원 문화
1. 생활에 밴 깔끔함
이솝은 깔끔함을 원칙으로 한다. 책상 위 쓰레기는 용납되지 않으며 외투는 옷걸이에, 개인 물품은 서랍에 두어야 한다. 놀라운 건 필기구 규정이다. 색깔 튀는 도구가 금지되어 있다. 볼펜은 '검은색', 형광펜은 '노란색'만 허용된다. 비품도 아무거나 쓰지 못한다. 컬러가 있는 제품(풀, 스테이플러 등)은 별도의 테이핑을 하는 등 조치가 필요하다고. 스스로 정한 규제와 원칙을 철저하게 준수하는 이솝이 각 나라에 자리를 잡는 데 하나의 체계이자 코드가 된 듯하다.
2. 이메일 가이드
이솝은 직원 문화도 남다르다. 오피스 소속 직원이 이메일을 주고받을 때에는 글자 크기 10p, 글자체 에어리얼 arial로 자간은 좁게 보내야 하는 에티켓이 있다. 이모지나 감탄사는 남발하지 않는다. 이렇게 간결한 브랜드 태도는 수신자가 혼돈을 느끼지 않도록 분명하게 의견을 전달하고자 함이다.
Writer's Note
평소 입는 옷이 오늘따라 심심해 보인다면 톡톡 튀는 귀걸이를 준비한다. 형광빛 나는 귀걸이가 자신감을 높여준다. 거기에 포인트 가방까지 메어 준다. '오 적당히 화려하고 좋은데?'
그런데 이솝에게선 이런 '더하는 행보'가 통하지 않는다. 이솝이 이야기하는 완벽함은 바로 자족감에 있다. "이것이면 충분하다"는 마음이 우선시 되는 것. 충분함을 느끼는 건 오로지 자신의 의지에 달렸다. 3만 원이 넘는 75ml 핸드크림이 별다른 매스미디어나 화려한 패키징 없이도 이렇게 잘 나갈 수 있는 것은 이런 이유가 아닐까? 과장하지 않고, 포장하지 않고, 오직 철학대로! 브랜드의 철학을 꾸준한 실천력으로 지켜나가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