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먼 밀러 Herman Miller
극강 가성비를 추구하는 우리 집에도 호사스러운 녀석이 있으니 바로 ‘허먼 밀러’이다. 네이버와 카카오, 하이브는 직원 복지를 위해 사내 모든 의자를 허먼 밀러로 바꾸었고 그 자체로 기사화가 됐다. ‘의자계의 롤스로이스’라 불리며 가장 저렴한 모델조차 100만 원대이니 그럴 만도 하다.
다른 의자와 비교 안 되게 고가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리라. 예를 들면 매일 앉아 생활하는 나에게는 정말 필수적인 맞춤형 복지인 셈이다. 허먼밀러를 사용한 이후에 고질적인 허리통증이 싹 나았는데, 플라시보 효과인지는 잘 모를 일이다.
허리상태가 말끔한 나를 바라보며 남편이 대뜸 허먼밀러 이야기를 써보는 게 어떠냐고 했다. 그래서 허먼밀러에 앉아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오래 앉아있을수록 본전을 뽑는 기분이다.
허먼밀러의 시작
허먼밀러의 전신 미시간 스타 퍼니처 컴퍼니 Michigan Star Furniture Company 는 전통적인 가구를 생산하는 작은 회사였다. 이 회사에 입사한 더크 얀 드 프레(Dirk Jan De Pree)는 장인을 설득해 이 회사를 인수한다. 회사명은 인수 자금을 지원해 준 장인에게 감사함을 표하기 위해 장인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실질적 이름의 주인인 '허먼 밀러'는 단 한 번도 회사 경영에 참여한 적이 없으니 다소 재미있는 포인트다. 어찌하였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디자인'이라는 철학으로 인체 공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이를 반영한 기술을 통해 의자를 만든다. 당대 가구가 심미성에 집중했다면, 허먼밀러는 실용성에 집중했다. 사무용 의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단순한 의자에서 기술로 바꾸며 출시 이후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전략
허먼밀러 하면 대표적으로 생각나는 '에어론 체어'가 유명해지게 된 건 IT 붐과 닷컴 버블을 통해서였다. 1994년 이 제품은 처음 출시 되었는데, 전 세계 여느 의자와 전혀 달랐다. 이전에는 폼과 패브릭을 사용한 옥좌 스타일이었다면, 허먼밀러는 기계와 같은 기능적 스타일의 느낌이 강했다.
자연스럽게 1990년대 실리콘 밸리의 기업의 복지 상징이 되었다. 고가이지만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있어야 하는 엔지니어의 허리 통증을 줄이는 데 그만한 의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허먼 밀러는 사무용 의자를 원하는 기업 고객들 사이에서 호평받으며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시그너처 의자
허먼밀러의 가장 유명한 의자는 언급했듯이 '에어론 체어'이다. 의자 디자인을 위해 인체구조, 앉는 습관, 생활문화까지 면밀히 조사한 의자라고 한다. 허먼밀러 공식 딜러 인노바드를 기준으로 라이트 모델은 190만 원, 풀모델은 222만 원이고, 헤드레스트 가격은 따로이다. 사이즈는 A, B, C로 나뉘는데 A사이즈는 160cm 이하에게 적합, C는 180cm 이상에게 적합하다.
에어론 체어로 알아보는 차별점
1. 소재
허먼밀러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펠리클 Pellicle이라는 소재를 활용한다. 등판과 좌판이 펠리크로 되어 있는데, 엣지 부분은 더욱 탄력 있게, 몸이 닿는 부분은 편안하게 구성해 두었다. 탄탄하지도, 무르지도 않은 텐션감이 신체를 감싸 안듯 지지해 주며 하중을 고르게 분산하여 몸을 받쳐준다. 펠리클 소재의 또 다른 장점은 통기성이다. 체열과 땀 배출이 쉽고 편안한 피부 온도를 유지하도록 해준다. 이염이 될 우려도 적다.
2. 등받이
포스쳐핏 SL로 불리는 이 기술은 신체의 천골-요추 부분을 장시간 머물 수 있도록 단단히 받쳐준다. 후면 다이얼을 통해 받침 강도 조절을 할 수 있다. SL노브를 플러스 방향으로 돌리면 허리를 더 강하게 밀착하여 자세의 활동성을 지지한다.
3. 틸팅 기능 (포워드/리클라이닝)
앞으로 기울여 앉을 수 있는 기능을 지원한다. 노트북을 하거나 책을 읽을 때, 게임할 때 앞으로 기울여 앉더라도 척추를 받쳐준다. 뒤로 기대는 리클라이닝은 물론 앞으로 숙여 앉는 자세도 강력하게 지지해 주니 책을 읽을 때 집중도가 높아진다. 틸팅의 세심한 경도 조절도 가능하다.
4. 팔걸이 조절 (높이/너비)
팔걸이를 필요에 따라 위아래로 조정할 수 있다. 불필요할 때는 옆으로 밀어놓을 수 있는 배려도 세심하다.
독특한 특징 : 헤드레스트가 없다
헤드레스트가 있으면 머리를 기댈 수 있어 더 편할 것 같지만 바른 자세하고는 거리가 멀다고 한다. 그래서 200만 원에 육박하는 가격대임에도 허먼밀러 의자를 사면 부속품으로 따라오는 헤드레스트가 없다. 나 역시도 헤드레스트가 있어야 한다는 편견으로, 타사의 것을 20만 원 넘게 주고 샀지만 사실 헤드레스트가 없어도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
Writer's Note
허먼밀러를 한 번 앉아보고 그 진가를 알기를 어렵다. 우리 집에 온 사람들은 허먼밀러에 앉아보고, '편하긴 한데 이게 이렇게 비싸?' 묻고는 한다. 하지만 장기간 사용해야 진가를 알 수 있다. 의자가 없으면 나는 곧잘 가장 편한 다리 꼬고 틀어진 자세로 앉고는 한다. 그런데 허먼밀러에 앉으면 나쁜 자세로 앉는 게 오히려 불편해서 바른 자세로 앉을 수밖에 없다.
한편, 국내 유수 기업이 사무용 의자를 허먼밀러로 바꾸는 움직임에 대해선 다소 회의적이다. 이건 회사에 숙직실이 있는 것과 비슷하다. 오래 일하다가 피곤하면 자고 가라는 뜻으로 읽히는 건 조금 많이 나아간걸까?
8시간만 근무해도 되는 회사에서 200만 원 넘는 의자를 제공할 이유가 크게 없다. 회사에서 최고급 사무용 의자를 주는 건 으레 실리콘 밸리가 그렇듯 조금 더 오래,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산재가 없도록) 하는 회사의 착취 노하우로 읽히기도 한다. 한국인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6.7시간이며, 우리가 의자에서 생활하는 시간은 아직 너무 많은 것이 사실이니까.
내 삶의 목표는 많이 걷고, 많이 눕는 것이지, 많이 앉아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퇴사하고 나서도 여전히 나는 자유의지로 좌식인간이다. 올해는 덜 앉아있는 게 목표인데, 말처럼 쉽지 않은 게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