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 기고해야 할 글을 쓰던 중이었다.'제로 슈거' 트렌드와 관련한 마켓 분석 자료가 필요하던 참이었다. 마침 글로벌 현황을 분석한 전문 리서치 사이트의 한 자료를 발견했다. 다운로드 가격은 1,300원. 이 통계자료 하나면 글을 조금 더 완성도 있게 마무리할 수 있을 듯했다. 카드 정보를 등록하고 결제하는 순간 신한카드로 뜨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신한카드입니다. 방금 외화 결제한 거 맞으세요?”
‘겨우 1,300원 긁었는데 확인전화까지 해주시다니! 정말 친절한 대한민국이구나. 이러니까 서비스강국이 아닐까’
“네, 제가 결제한 거 맞아요”
그러자 카드 결제 승인 문자가 날아왔다.
[1,820,000원]
응??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떨리는 마음으로 결제창을 다시 확인하니 내가 결제한 건 1,300원이 아니었다. 무려 1,300불이었다. 맞아, 해외사이트였지…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신한카드사에 전화를 하니 이제 결제 취소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사이트에서는 구매할 때 ‘구매 취소 불가능’에 대한 안내를 미리 받은 터였다.
월급을 받을 시절만 하더라도 손 떨릴 금액까지 아니었지만, 당장 통장에는 충분한 액수의 현금이 있지는 않았다. 주식을 팔지 않으면 도저히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없는 돈이었다.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상담 메일 주소로 구구절절 사정을 써서 보냈다.
저는 한국의 학생(인간은 길게 보면 누구나 학생이므로)인데,
1,300불을 1,300원으로 잘못 보고 결제를 했어요.(한국에서 1,300원은 매우 적은 액수랍니다)
하지만 리포트는 열어보지 않았습니다.(100x정말이에요)
캡처 사진도 전달해 드려요.(10000x제 말 믿어주세요)
리포트 금액이 제가 감당하기에 매우 큽니다.(제발 취소해 주세요)
영국과의 9시간 시차가 있기에 언제쯤 메일을 확인하고 답을 줄지 미지수였다. 더구나 환불이 안된다고 홈페이지 Q&A에 명시가 되어있던 터라 희망은 없었다. 그런데 오전 8시에 보낸 메일에 오후 5시에 이렇게 답이 왔다.
결론적으로 환불이 가능할지 알아보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가 드물었는지 확인까지 시간이 꽤 걸렸지만, 담당자는 5번에 걸쳐 진행 과정을 친절히 공유해 주었다.
관리부서 컨펌이 났다, 회계팀 컨펌이 났다, 결제 취소 절차를 밟고 있다…
5번의 메일이 서로 오고 갔고 결과는 취소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일을 하며 내가 이렇게까지 누군가에게 절실하게 도움이 됐던 적이 있을까에 대해 생각했다.
영국에 간다면 밥, 혹은 피시&칩스라도 사고 싶을 만큼 감사함이 컸다. 물론 그럴 기회는 오지 않을 것 같으니 그 보답을 다른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해줄 것이라 다짐했다.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가, 누군가에게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진심으로 도움을 주고 싶다. 이렇게 하면 이 세상에는 조금이나마 따뜻함의 선순환이 생기지 않을까, 그 고마움을 조금이나 갚을 수 있지 않을까 하며.
나는 내가 꽤 꼼꼼한 사람인 줄 알았으나 꺼진 불도 다시 보듯, ‘원’과 ‘유로’라는 크고도 작은 차이의 화폐 단위에도 항상 꼼꼼해야 함을 깨달았다. 오늘 신한카드 대금 문자가 왔다. 다행히 잘 취소되었다고 한다. 내 통장 잔고는 이 사건의 전과 마찬가지로 그대로지만, 마음 한편이 충만함으로 가득 찬 것 같다. 기분 참 좋은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