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긋난 날짜의 기록

자사고 첫 날

by 안헬
입학 전 방학


난 일주일에 두세번 달력을 유심히 본다.

상산고 입학 전 겨울방학,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고등학교에서의 삶이 바뀔 것 같았다.

그래서 매일매일 공부만 하는 삶을 살았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가고. 어느 순간 그 자극 없는 삶이 내 머릿속 날짜를 어긋나게 했다. 마치 세상의 물결 속 홀로 박혀있는 돌처럼. 그럴 때마다 강물에 순응하듯 시간을 받아들였다. 내 머릿속 어긋난 날짜 감각이 다시 돌아온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처럼 박히고, 시간의 괴리감이 깊어지면 달력을 본다. 그리고 다시 물결을 따르는, 그런 일상의 반복이다.


사실 난 진단 평가 이후 부족함을 느꼈다. 정확히는 내가 너무 오만했다.

중학생의 공부 잘하는 나는 이제 없다. 계속 공부를 해야 했다. 이를 위해선 변화가 필요했다.

오만함이란 돌을 빼내기 위해서 변화의 물결을 간절히 원했다. 그것도 아주 강렬한 물결을.


진단 평가를 본 바로 다음날 스터디카페에 갔다. 16년 인생 처음의 스터디카페였다. 16년 동안 학원을 제외하고는 집 밖에서 공부를 한 적이 없었다. 나를 정의하는 16년 동안 이어진 관습 같은 것이었다. 그 관습이 오만함으로 이어진 것을 깨달은 진단 평가날, 다니던 학원을 끊었다. 그것이 내게 첫 변화의 물결을 만들어낼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변화의 물결이 하나하나 모여 결국 내가 중심인 진짜 공부를 할 수 있길 바랐다.


세상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나아갈 힘을 길러내고 있었다.

오롯이 공부에 집중한 채 두 달이 지났다.


어느 순간, 무엇인가 잊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은 너무나 강렬해서 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어지러운 머릿속을 정돈하기 위해 달력을 보았다.


2월 25일이었다.


2월 26일, 상산고 입소일이었다. 내일은 전주로 내려가야 하는 날인 것이다.

달력을 본 후 공부를 하려고 했다. 연필이 내 손에서 자꾸 떨어져 나갔다. 지우개는 자신의 역할을 잊어버린 것 같았고, 책 속 글자는 날갯짓하며 날아가고 있었다. 그 순간에도 달력 속 25란 숫자는 환하게 빛났다. 25란 숫자를 바라보며 깨달았다. 공부를 할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고등학생이 되기 하루 전, 마지막 중학생 시절을 마음껏 느끼는 날이었다.


햇살이 훤히 비추는 창문 마주 편 검은 책상 위에 컴퓨터가 있었다. 푸른색 하늘이 비추고 있었다. 햇살에 물들인 컴퓨터가 나에게 손짓을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컴퓨터 전원을 켰다. 굶주린 사람이 음식을 가리지 않듯, 오랜만에 마주한 컴퓨터 앞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게임을 닥치는 대로 즐겼다. 게임이 끝난 뒤에도, 마치 저 멀리 몰려오는 먹구름을 본 아이처럼 남은 시간을 전부 짜내어 열정적으로 놀았다.


시간은 금세 지나가고 저녁이 되었다.

어머니의 저녁 먹으라는 말씀이 들리고, 가족 모두 저녁 식탁에 앉았다.

밥을 향해 숟가락을 들며 아빠가 말씀하셨다.


"내일 가야 하네? 기분이 어때, 아들?"

"음 좀 신나면서도 두려워요. 아빠.. 상산고에서 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타지 생활도 처음이어서 불안해요..."

내일부터는 먹을 수 없게 된 집밥을 쳐다보며 말했다.


옆 자리에 앉아 있는 여동생이 말했다.

"오빠, 오빠는 충분히 잘할 수 있어. 괜찮아. 못하면 수능 보면 되지 뭐.."

"그래, 아들! 강해지는 거야. 강한 남자가 되는 거라고. 너가 누구 아들이니, 아빠 아들이야. 잘할 수 있을 거야. "


가족의 응원 속에서도 내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상산고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지에 대한 불안감, 혼자 생활하는 어려움은 내 마음 속 단단한 방벽을 형성해 아빠와 동생의 말 한마디도 통과시키지 않았다.


그런 방벽은 신기하게도 게임을 할 때 서서히 사라졌다. 게임에 몰두해 있으면 현실과는 단절됐다. 현실의 감정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그래서 게임을 했다. 시간이 가고 있는 줄도 모른 채..


어느새 10시가 되었다.

내일 전주로 출발하기 위해서는 일찍 잠에 들어야 했다.

책상 옆 남색 이불로 덮인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잠은 오지 않았다. 한 30분쯤 생각의 우주에서 떠다니고 있었다. 이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커튼을 열어 달을 보았다. 달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환히 도시를 비추고 있었다. 달빛으로 물든 푸른 소나무들이 보였다. 그 아래 회색 패딩을 입은 두 사람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산책하고 있었다.


인스타를 켰다. 인스타 릴스를 스크롤할 때마다 이마세의 'night dancer'가 흘러나왔다. 회색의 달빛이 쏟아져 내리는 테라스 위에서 가족과 함께 추억을 회상하는 느낌이었다. 그 노래는 가족과 함께 했던 내 추억을 자극했다. 가족과 함께 해외 여행을 갔던 추억, 내가 힘들게 짐을 정리하고 있을 때 아빠가 와서 도와줬던 추억, 동생과 같이 저녁을 만들었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상산고에 가기 싫어졌다.



아침



아침 일찍 온 가족이 함께 전주를 향해 출발했다.


1월만 해도 차에서 합창곡이 흘러나오는 것만 같았다. 합격의 기쁨이란 파도 속에 빠져 지평선 너머의 불안함과 두려움을 보지 못했다. 지금은 암울함이었다. 저 지평선 너머의 불안감과 두려움이 차 안을 잠식했다.자식을 타지에 보내는 심정을 느끼고 계신 건가, 부모님께서는 표현할 수 없는 응어리를 손에 쥐고 계셨다. 내 앞에는 내 감정들이 실타래로 뒤섞여 공을 만들고 있었다. 두려움과 불안. 뛰어난 친구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가족 없이 살아갈 수 있을지, 힘든 내신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든 것이 내겐 질문이었고, 불확실했다.


부모님의 어두운 표정, 내 두려움, 불안이 합쳐져 가는 길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부모님의 응어리와 내 감정들을 함께 모아 야구공처럼 배트로 시원하게 날리고 싶었다.


"솟구친 타구 외야를 넘어 담장을 넘어갑니다. 홈런입니다."

그저 내 바람이었다.


해가 점점 가운데에 근접한 시각, 전주에 도착했다. 이별할 시간이었다.

차에서 짐들을 내리고 가족과 같이 언덕을 올라갔다.

저 멀리 보이는 하얀색의 6층 건물이 내 기숙사가 될 것이었다.

가족과 작별 인사가 될 말들을 허공에 남긴 채 기숙사 건물의 문을 열었다.


문을 여니 가족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또래 친구들

아들을 기다리는 부모님들

친분을 다지고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눈에 눈물이 고이는 듯 했다. 이제 나도 저기 보이는 아이들처럼 진짜 마지막 인사를 해야만 했다.


"부모님 너무 감사합니다. 연락 자주 할게요.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결과 만들게요. 저는 이만 기숙사로 올라가서 짐 정리할게요."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부모님과 따듯한 포옹을 나눈 뒤 엘레베이터 문 앞에 섰다.

문이 열렸다. 학생들 3명이 각자 땀방울을 흘린 채 부모님과 인사하러 나갔다. 학생들이 나가고 , 엘리베이터에 탔다. 상가 건물에 있는 회색의 평범한 엘리베이터였다. 5층을 눌렀다.

천천히 엘리베이터는 올라가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 위 빨간색 숫자가 5층을 가리켰다.

문은 천천히 열렸다.

5층 로비의 모습이 보였다. 바로 앞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공부를 제대로 할 수는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스터디카페보다 훨씬 작고, 방음도 안 될 것 같은 공간이었다. 그 공간 바로 옆 기숙사 방이 있었다.

기숙사 방문 앞에 섰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문고리를 잡았다.


마침내 문을 열었다.


3,4평 정도 되는 방이 보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작았다. 앞에 세로로 길쭉한 창문이 열려져 있었다. 오른편에 5개의 옷장과 그 뒤 2층 침대가 보였다. 왼편에는 작은 화장실과 1층 침대 하나, 그 뒤에 2층 침대가 하나 있었다. 두 이 층 침대 사이에 사람 두 명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공간이 있었다. 실망했다. 기숙사가 아니라 학생을 육성하는 닭장에 들어간 느낌이었다. 화장실도 1개밖에 없었다. 화장실의 전쟁터가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오른편의 2층 침대의 아래 부분에 한 키 큰 학생이 짐을 풀고 있었다. 처음 본 룸메이트였다. 인사를 했다. 너무 어색했다. 길가다 처음 보는 행인과 인사해도 이 정도는 아닐 것 같았다. 침대 위에서 짐을 하나씩 풀었다. 이불, 베게, 책들, 책장에 놓은 것들, 옷, 생필품, 약. 하나하나 풀어헤쳐 하나씩 정돈해갔다. 외로웠고, 힘들었다. 이렇게 정리할 때마다 내 옆엔 항상 가족이 있었다. 내가 힘들 때 가족이 도와주었고, 같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물품들을 정리했었다. 지금 내 옆엔 낯선 룸메이트만 있었다.


가족이 그리웠다. 이불과 베를 정리한 뒤 침대에 누웠다. 차가웠다. 추웠다. 가족이란 옷 속 숨어 있던 내게 세상의 한기가 차츰 흘러 들어오기 시작한 것 같았다. 짐 정리를 마친 룸메이트는 가족과 마지막 인사를 하는 듯 방을 나갔다. 2분 뒤 다른 학생이 왔다. 침대 위에 누운 뒤 그 학생의 짐을 푸는 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왔다. 인사를 해야 하나 생각했다. 뭔가 두려웠다. 새로움이란 게 이렇게나 두려운 것일 수 있음을 처음 깨달았다.


그렇게 한 학생 한 학생 들어왔다.

5명이 다 모였다.

방금 부모님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한 듯한 친구도 들어왔다.


한 학기를 같이 살아야 하는 친구였다.

처음 학교 생활을 같이 해야 하는 동료였다.


어색함을 없애고자 침묵을 깨고 말했다.


"너희 어디서 왔니?"


2층 침대에 있는 시크한 목소리의 학생이 말했다.

"서울 목동에서 왔어."


건너편 침대의 여드름이 심하고, 착하게 생긴 친구가 말했다.

"나는 노원구에서 왔지."

...


운을 떼니 점점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취미, 좋아하는 운동, 좋아하는 가수부터 꿈까지 소개팅에서 점점 이야기가 트이는 것 같이 점점 친밀감을 교류했다.


그렇게 점호를 하고, 잠 잘 시간이 되었다.

룸메이트들은 이야기하느라 삼매경이었다.


나는 집에 있을 아빠, 엄마, 동생, 강아지 생각이 났다.

내게 익숙한 침대가 아니었다.

가족이 그리웠다.

후회되었다.


"여기 오지 말걸." 하고 후회했다.


너무 힘들었다.

아직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한기 서린 생활을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자퇴하고 싶었다.


새로운 공간에서 거의 영원히 혼자 자야 한다는 게 이렇게나 힘든 건지 몰랐다.

군대에서 처음 잘 때 느끼는 감정이 이럴까? 외로이 생각했다.


후회, 힘듦, 그리움의 감정이 섞여 내 눈을 점점 검게 물들였다.

내일은 입학식이었다. 새로운 반, 학교에서 하루를 보내야 했다.


'룸메와는 또 다른 친구를 만나겠지.'

내일을 생각하니 더 피곤해진 느낌이었다.

잠에 들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