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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종목 Mar 15. 2023

대화에 임하는 마음가짐

새로운 상대에게는 새로운 마음으로

구매한 PC프로그램 추가 패치 중 문제가 생겼다. 패치 안내 메일만 보고 설명서에 기록된 부분을 간과한 채 패치를 진행한 내 탓이었다. 


as요청을 적극적으로 해도 된다는 설명서에 따라 메신저로 연락했다. 상황을 설명하며 ‘내가 설명서를 제대로 보지 않아 놓친 부분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상담사는 ‘왜 설명서에 있는 부분인데 틀리게 했냐, 누차 적어두지 않았냐’며 질타했다. 


오해가 있어 보여서 ‘저는 도움 받으려고 연락한 건데 좀 방어적이신 것 같다’ 고 했다. 그러자 자신들은 매우 자세히 적어둔 설명서가 있는데도 수십, 수백 분이 항의를 한다며, 뭐가 불쾌하신 거냐는 말을 하면서 대표의 전화번호를 적고 전화 달라고 엄청난 속도의 문자러시를 보냈다.


황당했다. 나는 실수를 인정하고 도움을 받으려고 문의했을 뿐인데, 갑자기 상대가 급발진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수십, 수백의 항의자가 아닌데도 말이다


상황이 좀 우스웠지만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도 역시나 상담사와 똑같이 격앙된 음성으로 자신들이 상세히 적은 설명서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잠시 그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대표님, 잠시만요. 저는 설명서에 대한 비난이나 항의의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제 실수를 인정하면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연락을 드렸고요.”


“그러니까 설명서에 쓰여 있는 부분을 안 하셔서 그렇게 된 것이잖아요. 근데 뭐가 방어적이라는 겁니까?”


“이런 이야기가 방어적이라는 겁니다. 저는 ‘누구’ 책임인지를 묻고자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오해가 생길 수 있어서 미리 제 실수라는 배경 설명도 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만 관심이 있는데, 반복적으로 “누구”의 책임인지에 대해서 논하는 그 말씀이 바로 “방어적”이라는 겁니다. 저는 책임을 회피한 적도 없고, 귀사를 비난하거나 항의한 적도 없습니다.”


주춤하던 대표는 다시 설명서 이야기를 하면서 책임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려 했다.

나는 다시 그를 멈춰 세웠다.


“아마도 ‘누차 적어두었다’ 라거나 ‘왜 설명서에 있는데 틀렸냐’를 이야기하시는 걸 보니 다른 고객들의 항의에 대한 반응으로 짐작됩니다. 누적된 불만에 대응하다 보니 그 연장선 상에서 제 도움 요청을 맞이하신 것 같네요.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배경을 알지 못하는 데다, 알 필요가 없습니다. 

과거 어떠한 진상고객을 만나서 어떤 공격을 받으셨든지 모르지만, 저는 당신을 공격한 ‘그들’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잠시 후, 그는 누그러진 목소리로, ‘워낙 진상 고객이 많다’, ‘원래 하는 서비스가 아닌 추가 사업이다 보니 전문 상담사나 상담 매뉴얼이 없다’, ‘다른 일을 하는 직원이 상담 중이라 더 스트레스가 많아 그렇게 된 것 같다’, ‘고객들에게 잘 도와 드리려고 애써서 설명서도 상세히 만들었는데 왜 이렇게 힘든 일들이 생기냐’ 등등, 나에게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그 후 미안했는지 나와 무관한 서비스와 이벤트를 소개하기도 했다. 


나는 적당한 호응 후에 ‘스트레스 너무 쌓아두지 말고 털어내는 시간도 가져가면서 일하셨으면 좋겠다, 건승하셔라’라고 격려하고 통화를 마쳤다. 


자신의 기억과 경험에서 이뤄진 일들을 현재로 가져오기도 한다. 주의해야 한다. 

새로 마주하는 대화의 상대는 당신 과거의 ‘그 상대’가 아니다. 


한 마디로 무고한, 순결한 상대라는 것이다. 새로운 상대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마음으로 맞이해야 한다.


당신이 어떠한 피로, 감정이 누적되어 있는지 상대가 살펴주길 바라선 안 된다. 

대화 전 아무리 힘든 일들이 가득했다 하더라도 새로운 대화 상대에게는 온전한 상태, 깨끗한 상태로 마주해야 한다. 


그게 상대에 대한 기본 예의이며, 잘 대화하고 싶은 나를 위한 준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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