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인연에 관한 단상

by 전종목

대학 졸업 후 장교 입대를 앞두고, 영국에 있는 누나 부부도 만날 겸, 파리에 있는 친구도 볼 겸 유럽 여행을 떠났다. 유일하게 지인 없이 방문한 곳이 이탈리아 로마였다. 홀로 계획하고 떠난 첫 해외여행의 첫 행선지라 적잖이 긴장됐다. 넉넉지 않은 예산, 언어와 안전 등을 고려해서 숙소를 한인 민박으로 결정했다.


유쾌하게 함께 여행한 또래 동생들, 낭만적인 길거리와 멋진 유적들 등 로마는 훌륭했다. 게다가 편안함과 맛있는 음식을 마련해 준 민박집 사장님 부부와 친해져서 여행이 더 즐거웠다. 꽤 싹싹한 성격이라 아주머니 어깨도 주물러 드리고 길거리에서 꽃다발도 선물해 드려서인지 두 분도 나를 특별히 예뻐해 주셨고, 떠날 때는 많이 아쉬워하시면서 ‘결혼하고 신부 데리고 함께 와라.’ 라며 배웅해 주셨다.


수년 뒤 결혼을 준비하며 그 말이 생각났다. 조금 더 특별한 신혼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에 아내에게 로마 이야기를 했다. 근사한 호텔이 아니라 조금 허름한 민박집으로 가자는 말에도 흔쾌히 따라준 아내 덕에 20대에 했던 약속을 30대에 지킬 수 있었다. 예약을 할 때부터 반가워하시던 아주머니는 첫날 아침으로 ‘결혼은 다시 태어난 것과 같으니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둘이 잘 살아라’ 라시며 미역국을 끓여 주셨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시 온다고 하지만 거의 빈말이고, 결혼하고 오겠다는 약속을 지킨 건 나 하나였다고 한다. 그래서 참 고맙다 말씀하셨다.

이전 행선지인 스위스에서 느끼한 음식들, 결혼식 피로 등으로 고생하던 우리는 로마라는 타지에서 집에 온 것보다 더 큰 환대를 받으며 몸과 마음을 충전할 수 있었다. 젤라토를 먹으러 가볼까 한다는 말에 직접 가이드를 해 주시며 약 5인분 이상을 사 주신 아저씨, 한국식 치킨, 삼겹살 등 어마어마한 음식들과 디저트의 물량 공세뿐 아니라 결혼 선물까지 챙겨주신 아줌마. 눈물 가득한 눈으로 ‘새끼 낳아서 또 와라’라며, 조카 부부를 배웅하듯 눈으로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신 두 분.


우리만큼 코로나로 고생하고 있는 이탈리아 소식이 마음에 걸려 뜬금없이 안부를 여쭸다. 개점휴업 상태로 힘들지만 건강에는 문제가 없다는 말씀에 되레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건강하시다는 그 말씀에.


떠올려보면 인연은 운명처럼, 우연을 가장해 다가온다. 다만 그걸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는 각자의 몫인 듯하다.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을 그 누가 알까. 만날 일이 전혀 없던 영주 처자를 크리스마스에 우연히 처음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됐다. 대학 시절 뮤지컬에서 배우와 음악감독으로 만났던 명훈 형 덕에 재웅 형과 폴앤마크를 만났다.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발 벗고 뛰던 젊은 날의 의기 덕에 세바시를 만났다. 내 삶의 소중하고 수많은 인연들.

가끔씩 예전에 친했지만 지금은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된 사람들이 떠오르곤 한다. 떠올리면 서운하거나 억울한 마음을 느끼게 하는 기억들도 있다. 다 내 부족함 때문이라 생각하고 흘려보내려고 한다. 마흔이 가까워진 지금, 내 사람들에게 제대로 마음 쓰기도 어려우니까. 워낙 많이 받아서 더 잘해야 할 사람이 잔뜩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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