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나

#에세이 #게임 #자기인식 #일상 #교육

by 전종목

<어린 나를 설레게 한 꿈의 세계, 게임>


내가 효준이만 하던 시절, 아니 효준이보다 더 어린 시절부터 나는 겜돌이 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겜돌이 었다기보다 4~5살 위의 누나들과 함께 노는 가장 설레는 놀이가 게임이었다.


갤러그, 몽대륙 등의 고전 콘솔게임부터 원숭이 섬의 비밀, 삼국지, 대항해시대, 프린세스 메이커 시리즈 등의 PC게임까지, 내게 있어 누나들과 사촌 형들 어깨너머로 보게 되는 게임은 그야말로 신세계, 별천지였다. (not 신천지) 그렇게 게임은 내게 있어 잘 하고 싶은 목표 그 자체였으며, 선망의 대상이었다

삼국지2.jpg
프린세스.jpg
대항해시대.jpg
몽대륙.jpg
어릴 때 했던 게임들은 지금 해도 재밌다. 시대보정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되는, 말 그대로 명작들이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들 중 게임은 단연 최상위권에 들지 않을까? 어린 시절 자유방임주의 교육철학을 내세운 아버지마저 스톱을 외치게 만들 정도로 우리 남매들은 게임을 좋아했다. 눈 나빠진다는 협박에도 불구하고 게임에 대한 열정은 넘쳐흘렀다. 어른들 말씀에 틀린 것 없다더니, 우리 남매들은 셋 다 안경을 끼게 되었다.


어쨌든 내게 게임은 놀라운 세상이었다. 배꼽 잡을 정도로 웃기면서도 긴장감 넘치고, 흥미진진하면서도 편안한 세상. 한글도 제대로 모르면서 삼국지 2의 영어로 된 단어들을 기억하려고 그림까지 그리고, 사촌 형들 하는 방법을 배워가며 했던 게임들. 지금도 내 취미 중 손에 꼽을 정도로 나는 게임을 좋아한다.


학창 시절에도 반에서 가장 게임을 잘했다.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워크래프트 등의 게임들부터 보드게임 등 거의 대부분의 게임을 잘했다. 고3 시절에는 워크래프트 3에 빠져서 수능 전날까지 게임을 했고, 대학 시절에는 게임 대회를 개최해서 해설까지 할 정도로 게임을 즐겼다. 하지만 대학시절부터 게임은 다른 의미로 내 삶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스타크래프트.png 대회도 나가고, 보러 가기도 하고, 직접 열기도 하고. 여전히 나는 E스포츠 팬이다.



<게임, 위로가 되어 주다.>


대학시절 꽤 심한 우울감에 시달렸다. 원인은 어릴 적부터 억눌러 온 감정들 때문이라 추측하는데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어쨌든 그 우울감의 정도가 꽤 심했다. 나는 대부분의 기간 자취를 했는데, 지인들과 술을 마시며 노는 날이 아니면 집에 들어와 늘 게임을 켰다. 왜냐면 혼자 있는 시간이 못 견디도록 외롭고 우울했기 때문이다.


연극과 뮤지컬을 하던 기간에는 그 우울감이 더 심했다. 공허한 마음이 밀려오면 온 세상에 나 홀로 남은 기분이었고, 자기 파괴적인 생각들까지 나를 휘감았다. 그런 때에 내가 의지할 수 있던 것이 게임이었다. 어릴 적부터 즐거운 시간을 보장해 주던 그 세계. 물론 과한 몰입 때문에 피로감과 시간 허비가 꽤 되기도 했지만 힘든 순간 가장 빠르고 확실한 위로가 되어 준 것이 게임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 위로의 기능이 가장 빛을 발한 것은 바로 누나를 떠나보냈을 때다. 그때는 정말 밤이 무서울 정도였다. 적막한 밤이 찾아오면 나는 늘 모든 사물에서 누나와의 기억을 되새기며 슬퍼했다.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지나가며 보이는 전봇대, 문득 본 휴대폰 아이콘에서마저 누나를 떠올리게 될 정도로 모든 삶의 기억이 누나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렇게 떠오른 누나와의 기억들은 결국 누나가 아프던 시절의 잔상이 되어 나를 찔렀고, 회한의 감정이 나를 감싸서 저 깊은 심연으로 끌어당겼다.


그때 내가 붙잡을 수 있던 밧줄이 게임이었다. 게임에 몰입하면 잠시라도 생각을 쉴 수 있었으니까. 그 당시 게임은 리그 오브 레전드, 속칭 LOL이었다. 대학 선, 후배들과 시작한 후 혼자서 미칠 듯 열심히 했고, 역시 꽤 높은 수준까지 올랐다. 다만 성격에는 안 좋은 영향을 줄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한 게임이긴 했다. 나를 제외한 적과 팀원들은 늘 서로의 손가락 개수가 10개가 맞는지, 장애는 없는지, 부모님은 안녕하신지를 물어봤기 때문이다.


리그오브레전드.png 회사 동료들과 틈틈이 즐기는 정도지만, 롤은 여전히 아주 재미있다.




<여전히 사랑하는 게임, 직접 만들다. >


그렇게 시간이 흘러 강사가 된 나는 게임을 통해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게 폴앤마크의 대표 콘텐츠 중 하나인 마켓플레이스다. Learning by Doing이라는 철학을 정말 완벽하게 담아낸 프로그램. 창업이나 경영을 직접 경험하며 배우게 만든 위대한 메커니즘을 가진 게임이다. 처음 보자마자 내가 강의하고 싶다고 졸라 미국에 다녀왔고, 강사 생활 대부분을 마켓플레이스와 함께 하고 있다. 정말 특별한 애착이 있는 프로그램이다.


나만큼 게임을 좋아하는 동료를 만나서 게임을 만들게까지 되었다. 나 또한 내 철학을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대뜸 지웅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급하지 않은 성격의 두 사람이라 아주 느긋하고 느릿느릿 진행했지만 손에서 놓지는 않았다. 일과 육아로 정신없이 살면서도 둘은 꾸준히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 결국 19년도에 ‘마이 라이프’라는 이름을 가진 게임으로 탄생했다. 당시 아주 어설프게나마 프로토타입으로 만들었고, 수많은 테스트를 거쳐 올해부터 실전에 투입했다. 코로나라는 변수에 영향을 받긴 했지만 재미와 교육성을 두루 갖춘 훌륭한 프로그램이 나온 것 같아서 아주 뿌듯하다. 며칠 전에는 모교 후배들에게 선보일 수 있었고, 아마 내년에는 주된 에너지를 이 게임에 쏟게 되지 않을까 싶다.

마이라이프 게임.jpg 내 삶의 철학을 담은 게임 '마이라이프' 삶의 중요한 두 축인 돈과 가치를 담아 내었다.

<평생 해온 게임, 이젠 가족과 함께>


아빠의 영향인지 효준이도 게임을 엄청나게 좋아한다. 유튜브 영상도 시큰둥한 녀석이 게임만큼은 어찌나 좋아하는지, 일주일에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 바로 게임을 할 수 있는 일요일이다. 용돈도 일요일에 받다 보니 녀석은 일요일을 ‘스페셜 데이’라고 부르며 늘 기대한다. 사실 게임을 하는 데에 별 반감이 없던 나와 아내였지만 하도 몰입하는 녀석 성향 상 규칙을 정해 줄 필요가 있어서 요일을 특정하게 되었다. (일요일을 선택한 건 효준이 본인 결정이었는데, 용돈도 받고 게임도 하는 최고의 날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효준이는 태블릿이나 콘솔 게임도 좋아하지만 엄마, 아빠와 하는 보드게임 류도 좋아한다. 그래서 올해 녀석 생일에는 취향 저격 선물을 준비했다. 바로 루미큐브. 안 그래도 숫자라면 정신을 못 차리는 친구인데 게임까지 할 수 있으니. 역시나 녀석은 선물을 받자마자 신나서 덩실거렸다. 아마 룰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함께 대결하기까진 오래 걸리겠지만, 어쨌든 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아들과 함께 할 수 있으니 이만한 행복이 또 없다.

나중에 친구들보다 게임을 잘하고 싶어 지면, 어떤 게임이든 아빠의 솜씨를 좀 보여주고 잘 가르쳐 줘야겠다. 게임에서는 '평생 현역'이니까 ㅋㅋ

KakaoTalk_20201116_115157692_01.jpg
KakaoTalk_20201116_115157692_03.jpg
게임을 나만큼 좋아하는 녀석. 게임 스승이자 친구로서 늘 함께 해 주고 싶다. 녀석이 원하는 시기까지^^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다. 그만큼 내 인생의 동반자로 게임은 늘 곁을 지켜왔다. 앞으로도 아내와 아들과 함께 즐기는 취미이자 내 철학을 담아내는 최고의 수단으로, 또 여러 가지 의미로 게임은 나와 함께 할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