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책임 #심리 #의미치료 #상담 #성장 #동기부여
효준이가 게임을 만들었다. 이른바 오리 게임ㅋㅋㅋ
게임이라 하기보단 일종의 상황극인데, 나름의 규칙으로 성공과 실패가 있다.
오리가 있는데, 그 오리를 위해 농사를 짓는 내용인 듯싶었다.
녀석이 혼자 한참 낑낑대더니 성공!이라고 크게 외치길래, 축하해~라고 호응을 해줬다.
그랬더니 잔뜩 신이 나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빠! 저는 원래 이 게임을 잘 못했는데, 잘하게 된 거예요! 바로 오리를 위해서요!
잘 해내야 오리에게 밥을 줄 수 있거든요. 안 그러면 밥을 줄 수가 없어요.
저는 오리에게 밥을 주기 위해 이 게임을 잘하게 되었어요. 열심히 노력했지요! "
'맞다, 요 귀엽고 기특한 녀석아.
네가 발견한 놀라운 원칙을 꼭 기억하렴.'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사람은 정말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성향이나 유형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대하는 태도가 그 기준이다.
역경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고 목표를 이뤄내는 사람,
헌신과 사랑을 통해 타인을 돕고 성장시키고, 위대한 변화를 이루는 사람들.
반면 자신을 놓아버린 채 욕심과 쾌락에 몸을 맡기는 사람,
타인에게 피해를 주며 스스로의 삶 또한 망가뜨리는 사람,
무기력하고 불만족스러운, 남에 대한 불평이 습관이 된 사람들.
분명 모두가 겉으로는 별 다를 것 없어 보이는데,
그들의 삶의 태도는 어째서 이렇게 다른 걸까?
최근 박상미 교수님, 이시형 박사님께서 진행하고 계신 ‘의미치료’를 차근차근 배우고 있다.
의미치료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빅터 프랭클 박사가 고안한 심리상담 치료기법이다.
인간이 자신의 의미를 발견하면 올바르게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이론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강의를 듣다가, 문득 의문이 생겼다.
'나는 살아갈 의지를 잃어버렸을 때, 어떻게 다시 힘을 얻었었지?
나처럼 약한 사람이 수많은 힘든 상황을 포기하지 않고 헤쳐 나갈 수 있었던 것일까?'
스스로의 의미를 발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게 도움이 되었던 것 중 하나가 있다.
내게 남아있는 것들을 발견한 것이었다.
떠난 사람들이 아닌 남아있는 수많은 이들을 떠올렸다.
그들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졌고, 그 덕에 나라는 사람이 살아야 할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아내와 아이가 아프고,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몸도 마음도 아플 때도 마찬가지다.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더 힘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나를 일으켰다.
사람을 성장하도록 이끄는 다양한 요소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타인을 향한 책임감이다.
부모는 왜 위대한가? 물론 부모라 부르기 민망한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대부분의 부모가 출산, 육아를 통해 성숙과 성장을 경험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 원천은 자신이 짊어진 책임을 인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돈을 버는 이유, 건강해야 하는 이유, 성장해야 하는 이유가 되는 약하디 약한 존재가 생겼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짊어진 것들을 내려놓고 해방되고 싶어 하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를 버티게 해 주고, 강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존중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바로 그 짊어진 짐들이다.
철학자 강신주 님의 말을 빌면, 사랑의 옛 표현은 아낌이라 한다.
아낌은 누군가를 위한 행동으로 나타난다. 아낌은 곧 그의 짐을 기꺼이 지는 것, 대신 고생을 하는 것이다.
즉, 그 대상의 행복한 상태에 대한 책임감을 갖는 것이다.
아이를 독립시킨 부모, 배우자를 먼저 보낸 노인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허망함과 공허함이라고 한다. 자살을 하거나 무력감에 빠져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는 그들을 위해 가장 추천하는 것은 동물이나 화초를 키우게끔 하는 것이라고 한다.
왜 번거롭고 귀찮게 그래야 하느냐고? 그렇게 해야 건강히, 올바르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직장만을 위해 살던 이가 자-타의에 의해 퇴직한 후 한없이 무기력해지는 모습을 자주 접하게 된다. 당연하다. 자신의 존재 의미를 일에 대한 책임으로 찾고 살았으니.
책임을 질 것이 없어진다는 것은 삶의 의미가 송두리째 사라지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책임은 안전벨트와 같다. 책임이 없다면 자신을 흔드는 위기의 순간에 쉽게 흔들려 버리게 된다. 인생의 강한 유혹의 순간, 책임은 자신을 붙들어 준다. 어쩌면 생명보다 중요한 존엄성을 지키게 만드는 힘이 책임에 있다.
그렇다면 책임을 발견하는 법은 무엇인가? 어떻게 내가 가진 책임을 알 수 있나?
자신과 연결된 존재들, 영향을 주고 있는 것들을 떠올려 보면 도움이 된다.
가족, 애인, 친구, 동료, 심지어 반려동물까지.
어쨌든 조금일지라도 자신이 영향을 주고 있는 대상이 있다면,
당신은 그 대상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잘 떠오르지 않는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둘려보면 주변에는 도움이 필요한 곳이 많다.
누군가의 짐을 대신 짊어져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내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장기간 후원을 하고 있다.
사회 초년생 때부터 후원을 했다. 얼마 안 되는 월급에서 한 아이의 급식비를 후원하기 시작했다는데, 그 아이가 떳떳한 성인이 되어 성공적으로 후원이 종료되었고, 뒤이어 또 다른 아이를 돕고 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내의 눈, 그곳에 깃든 뿌듯함을 보면 누군가의 짐을 나눠진다는 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알게 된다.
우리의 존재는 이미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힘들어서 자신의 삶이 가치 없다고 여기거나,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다면,
그래서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고 살고 있다면, 부디 당신 어깨에 있는 짐을 돌아보길 바란다.
또 다른 짐들도 기꺼이 짊어지기를 바란다.
책임이란 잠수부의 산소통과도 같아서
산소통이 없으면 마음대로 가볍게 움직일 수 있지만 깊게, 오래 잠수할 수 없다.
인생이란 깊은 바닷속 보물을 발견하기 위해선 무겁고 불편한 산소통이 필요한 것이다.
언젠가는 책임을 다하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보물,
삶에 대한 자긍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책임의 무게는 언제나 어깨를 짓누르고, 지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결국 나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라는 니체의 명언처럼,
우리는 결국 우리가 짊어진 짐, 그 책임만큼 강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