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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종교 그리고 자녀교육

by 곰선생


정치와 종교라는 주제는 대한민국에서 유독 꺼내기 힘든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단지 의견의 차이일 뿐인데도 불구하고, 이 두 가지 주제는 많은 경우 사람 사이에 감정의 골을 만들고, 관계를 어색하게 만들며, 때로는 깊은 갈등으로까지 번지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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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에큐메니안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단순히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정치나 종교적 견해가 그 사람의 정체성과 너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일까요?

개인적으론 대한민국의 상황은 후자에 더 가깝지 않나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어떤 정치적 입장이나 종교적 신념을 말하는 것이, 곧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규정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너는 그걸 믿는 사람이구나” 혹은 “그 사람을 지지하는 사람이구나”라는 낙인은 마치 상대의 생각만이 아니라 인격 전체를 평가하고 공격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쉽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런 이야기는 가족끼리도 조심스럽고, 친구끼리도 가급적 꺼내지 않으려는 주제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개인의 이런 정치 종교적인 성향은 과연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일까요?


저는 어릴 적 부모의 영향이 상당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말씀드리자면, 저희 아버지는 전라남도 출신이시고, 어머니는 충청도 분이십니다. 저는 학창시절의 대부분을 제주도에서 보냈습니다. 이런 다양한 지역적 배경 속에서 자랐지만, 제 머릿속에는 아주 단단한 이미지들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선생님’ 같은 인물이고, 김종필 전 총리는 ‘청렴하고 깨끗한 분’이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박혀 있었죠.


이런 생각은 누가 억지로 심어준 것도 아니고, 제가 따로 공부해서 얻은 것도 아닙니다. 단지 어릴 적 부모님이 자연스럽게 하시던 이야기들, 집안 분위기, 그리고 그 시절 주변 어른들의 말 속에서 형성된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프레이밍 효과’의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의 부모는 우리에게 가장 절대적인 존재이고, 최고의 지성인이며, 세상의 기준이 됩니다. 그 부모가 보여준 세계관은 우리가 이후에 세상을 보는 기본 프레임이 됩니다.


이것은 저만의 경험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에서 만난 후배들, 군대에서 함께했던 동료들, 또 제가 가르친 학생들을 보면서도 이 프레임의 힘을 느낍니다. 어떤 아이는 정치적 이슈에 대해 생각보다 확고한 입장을 갖고 있는데, 그 근거를 따라가 보면 부모님의 말 한 마디에서 비롯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만큼 부모의 영향력은 크고, 생각보다 오래 지속됩니다.


다행히 저희 부모님은 종교적인 신념은 따로 가지고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종교에 대해 비교적 열린 사고를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불교 법명도 있고, 천주교 세례명도 있으며, 현재는 아내를 따라 개신교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종교에 대해 거부감보다는 ‘이해해보고자 하는 자세’를 가질 수 있었던 건 이런 부모님의 종교적 입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어릴 적 특정 종교가 절대적 진리라고 반복해서 들었다면, 지금처럼 열린 자세를 갖기 어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종교 역시 정치만큼이나 강한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영역입니다. 특히 이슬람교 같은 경우, 많은 분들이 뉴스나 사례를 통해 접하면서 ‘극단성’을 먼저 떠올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물론 모든 이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종교가 신념을 넘어 삶의 방식, 사고방식 전체를 구성하는 강력한 힘이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결국 자녀교육에 있어 우리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느냐는 고민 때문입니다.


과연 지금 내가 믿고 있는 생각, 내가 옳다고 여기는 가치들이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도 여전히 맞는 걸까요? 지금 아이가 자라나야 할 미래는, 제가 자라온 과거와는 분명히 다른 세계일 텐데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자녀에게 “이게 맞다, 넌 이렇게 생각해야 해”라고 말하는 대신,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하고, 검증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믿습니다.


요즘 아이들과 젊은 세대를 보면, 유튜브나 숏폼 콘텐츠처럼 짧고 자극적인 정보만 접한 후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번 본 영상의 정보가 곧 ‘내 생각’이 되고, 그와 다른 관점은 틀린 것으로 여기기까지 합니다. 더 심각한 건, 다른 의견을 들었을 때 “왜 다르지?”, “내가 맞나?”, “혹시 내가 틀릴 수도 있을까?”라는 반성적 사고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결국 사회에 만연한 젠더 갈등, 세대 갈등, 지역 갈등도 근본적으로는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능력의 부재’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대화를 통해 생각이 바뀌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진심 어린 대화, 서로를 비난하기보다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 속에서 저는 제 생각의 틀을 확장시킬 수 있었고, 그 경험은 제게 매우 소중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서로의 생각이 다름을 인정한다는 것은, 내가 가진 생각이 틀릴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용기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회적 태도를 갖는 사람만이, 다른 이로부터도 존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에게 우리가 가르쳐야 할 것은 정답이 아닙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입니다.

그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먼저 부모가 다름을 이해하고, 질문하며, 끝까지 듣는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그렇게 배운 아이는, 자극적인 콘텐츠 속에서 휘둘리지 않고, 타인의 생각을 공격하지 않으며, 스스로 사고하고,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랄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로서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교육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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