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먹을 가까이하면 검어진다는 뜻으로, 결국 사람은 자신이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 그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는 오랜 선조들의 지혜죠.
실제로 중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가끔은 아찔할 때가 있습니다.
흡연, 음주, 불법 전동 킥보드 탑승, 교내 싸움이나 욕설이 동반되지 않으면 대화가 안이루어지는 것들...
이런 일탈적 행위들이 마치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일상적 배경'처럼 자리 잡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문제는 아이들이 그것을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동시에 '크게 문제라고 느끼지도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너무 자주, 너무 가까이서 그런 행동을 보고 듣다 보니, 그냥 '그랬구나' 정도로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나는 아니니까 괜찮다'는 생각도 하는 것 같습니다. '나쁜거 알아. 그러니가 난 안해. 그런데 왜 그게 문제지?' 라고 생각을 하는거죠. 자신은 그런 행동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으니 '괜찮다'라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그 행동 자체보다도, 그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감각의 무뎌짐에 있습니다. 사람은 환경을 닮아가고, 행동은 생각의 무게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러한 상황은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제 막내아들은 예원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예원학교는 예체능 계열로는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 중학교입니다. 서울에서 생활하는 아이가 가끔 천안에 내려오면 예전엔 친구들과 연락하고 놀러 나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아이가 그 친구들과 연락 자체를 끊고, 만나질 않더라구요~ 이유를 물어보니, 애들이 이상해 졌답니다.
욕설을 하지 않으면 대화가 이어지지 않고, 담배를 피우네 마네, 누가 누구와 사귄다느니 등등의 자극적인 이야기들만 주고받는 친구들이 불편해 졌다고 합니다. 제 기준에서 너무 다행스럽게도 막내 스스로 경계를 설정하고 거리를 두기 시작했지만, 모든 아이가 그렇게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직 판단력이 완전히 성숙되지 않은 상태라면, 그 주변이 어떤 색인지가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요즘 시대는 단순히 '사람'만 가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알고리즘, 피드, 영상, 커뮤니티, 채팅방까지—우리 아이들을 둘러싼 '먹'은 훨씬 더 복잡하고 교묘해졌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근알고리즘자흑"이라는 말이 나와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아이들은 요즘 세상에서 오프라인보다 더 많은 시간을 디지털 공간에서 보냅니다. 그런데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익명 채팅방, 커뮤니티 등은 끊임없이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콘텐츠를 밀어냅니다. 욕설을 예능처럼 소비하고, 과한 소비를 멋으로 여기며, 불법적 행위도 화제로 소비되는 이 현실 속에서 아이들이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한 생각입니다.
"우리 아이는 안 그래요.", "우리 애는 그런 친구들이랑 어울리지 않아요." 이렇게 말씀들하시지만 그게 끝이 아닙니다. '어울리진 않아도', '하진 않아도' 아이들은 그 자극적인 환경 속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그 일이 문제인지 아닌지에 대한 감각이 무뎌지고, 그런일탈행위를 쉽게 접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럴 때야말로 어른들의 역할이 중요해집니다. 단순히 '하지 마' 말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 행동이 위험한지, 왜 그 말이 누군가를 다치게 하는지, 무엇이 우리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차분히 설명하고 보여줘야 합니다. 그것이 부모의 역할이고, 교사의 책임이며, 사회가 가져야 할 성숙한 자세입니다.
아이들이 더 건강한 사회적 감각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는, 결국 우리가 어떤 '먹'을 가까이 두느냐, 어떤 '색'으로 삶을 물들일 것이냐를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오랜 고사성어인 근묵자흑은 단순한 경고가 아닙니다. 우리 아이의 색을 되도록 맑게 유지해야만 사회도 좀 더 나아질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