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리더의 딜레마

by 곰선생


얼마 전 한 짤을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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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의 리더 GD(권지용)가 연습생 시절 "항상 좋은 말만 해준다"는데,

그 '좋은 말'이 "좋은 말 할 때 외워", "좋은 말 할 때 다시 해…" 같은 말이라는 거죠.

멤버들 상당수가 또래였다는 점을 떠올리면 더 묘합니다. 웃기지만, 씁쓸하게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조직이든 팀이든 '성과'가 필요한 순간엔, 듣기 좋은 말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으니까요.


저는 한동안 '착한 리더십' 류의 책을 꽤 읽었습니다.

공감, 배려, 심리적 안전감, 수평적 문화. 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읽을수록 이상한 공통점이 보였습니다. 리더가 "좋은 사람"이 되는 데는 집착하지만, "어떻게 기준을 세우고 끝까지 지키는가"는 상대적으로 얇게 다룹니다. 말하자면 따뜻함은 크게 강조되는데, 단단함은 희미합니다.


사실 이런 흐름이 나온 이유도 이해는 됩니다. 2000년대 이후 일은 점점 '지식노동'이 되었고, 사람은 더 쉽게 떠날 수 있게 됐습니다. 평판은 온라인에 남고, 조직은 '브랜딩'의 대상이 되었죠. 법과 제도도, 최소한의 존중과 절차를 더 요구합니다. 그러니 과거식 호통과 카리스마만으로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따뜻하면 좋은 리더"라는 단순 공식이 유행처럼 굳어버렸다는 점입니다.


현실의 리더는 기본적으로 '운영자'입니다.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책임지고, 수익과 성과를 만들어내고, 그 결과를 구성원과 나누는 사람입니다. 이게 불편해도 권력의 핵심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관계를 두고도, '사장-직원'이라고 말하면 이익을 챙기는 사람처럼 보이고, '리더-팔로워'라고 말하면 갑자기 고상해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언어가 관계를 미화하기도 하고, 동시에 책임을 흐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구분을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착한 리더는 "나를 좋아해줬으면"을 우선합니다. 좋은 리더는 "우리가 살아남았으면"을 우선합니다.

착함은 감정의 방향이고, 좋음은 결과의 방향입니다. 둘이 겹칠 때도 많지만, 종종 충돌하기도 합니다.

이 충돌 지점에서 리더가 피해야 할 유혹이 있습니다.

첫째, 갈등을 피하려고 기준을 낮추는 것.

둘째, '상처 주기 싫어서' 문제를 묻어두는 것. 저는 그 순간 조직이 조용히 무너지기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강한 한마디가 팀을 바꾼 사례는 많습니다.

현대 정주영 회장의 "임자, 해봤어?", 삼성 이건희 회장의 "마누라 빼고 다 바꿔라" 같은 문구는 지금 시대 감수성으로 보면 독하고 거칠죠. 해외로 눈을 돌려도 비슷합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헤어드라이어 사건'처럼 유명한 질책, 스티브 잡스식의 집요한 완성도 요구, 넷플릭스의 '충분하면 떠난다'는(대신 퇴직은 관대하게) 원칙까지. 듣는 사람은 힘들었을 겁니다.

다만 그 안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목표가 분명했고, 기준이 높았고, 실행이 끈질겼습니다. 또 하나, 성과를 내는 만큼 보상과 기회도 커졌다는 점입니다. 채찍만 있고 당근이 없으면 그건 리더십이 아니라 착취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위험한 착각이 생깁니다. "그러니까 거칠어도 된다"는 결론으로 점프하는 것. 엄격함과 무례함은 다릅니다. 기준을 말하는 것과 사람을 깎아내리는 것은 다릅니다. 성과를 요구하는 것과 공포로 통제하는 것은 다릅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리더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예의와 인권 감수성도 분명히 높아졌습니다. 과거의 '성공담'은 살아남은 이야기이고, 그 과정에서 망가진 사람과 팀의 이야기는 종종 기록되지 않습니다.


결국 답은 '착함 vs 나쁨'이 아니라, '온기 있는 엄격함'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상대에게 신경을 쓰되,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용기"입니다. 심리적 안전감도 '편안함'이 아니라 '솔직히 말할 수 있는 환경'이죠.

1. 조직원에게 말이 나오게 만들고, 기준을 분명히 하고, 약속한 규칙을 공정하게 적용하는 것.

2. 칭찬은 구체적으로, 지적은 빠르게. 피드백은 사람의 인격이 아니라 행동과 결과에.

3. 리더 자신도 같은 기준의 심판대 위에 올려놓는 것.

이 세 가지가 없으면 착함은 방임으로 변합니다.


저도 작은 학원을 운영하면서 이 문제를 매일 만납니다. 직원에게도, 학생에게도, 때론 부모님에게도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속가능성이 무너지면 그 착함은 오래 못 갑니다. 기준이 없으면 관리가 흐트러지고, 흐트러진 운영은 결국 모두에게 손해가 됩니다. 그때 리더의 역할은 미움받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불편한 결정을 책임지는 사람이더군요.


아마 정답은 성향에 따라 달라질지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압박 속에서 성장하고, 어떤 사람은 안정 속에서 빛납니다. 그래서 리더의 숙제는 '내 방식'이 아니라 '이 팀의 방식'을 만들고, 찾아 조율하는 일인지도요. 그리고 그 조율의 대가는, 늘 리더가 먼저 치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고민합니다. 나는 지금 '착한 사람'이 되고 싶은 건가, '좋은 리더'가 되고 싶은 건가. 혹은 그 둘을 동시에 붙잡으려다, 아무것도 지키지 못하고 있는 건가. 당신이라면 어떤 리더를 원하시는지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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