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 대한 가치는 누가 부여하는 것일까?

마흔이 돼서야 깨달은 삶의 이치를 고전의 대화를 통해 말하다.

by 이로
“그 농부가 이런 어쭙잖은 방법으로 날 가지고 놀려고 했다니 놀라운데. 생각이 있는 까마귀라면 누구라도 네가 짚으로 만든 사람이라는 것을 알 거야 “
”네 머릿속에 뇌만 있다면 너도 사람과 다를 바 없을 거야. 어떤 사람보다도 훌륭할 텐데. 까마귀든 사람이든, 오직 뇌만이 이 세상에서 가질 가치가 있는 것이거든 “




그토록 바라던 곳에 취업하게 된 사회초년생 시절. 난 내게 주워진 모든 일에 감사한 마음으로 회사를 다녔지. 시키면 시키는 대로, 아무런 불만 없이 말이야. 그런 자세로 일을 하니 조금씩 주위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 시작했고 조직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리매김을 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생각했지. 난 이 조직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라고.


그러다 예상치 못한 사고로 두어 달 병가를 내게 되었어. 내 몸에 대한 걱정도 걱정이었지만, 내가 맡은 일에 대한 공석으로 문제가 생길 까 걱정했지. 그만큼 내 업무는 다른 사람이 대체 하기 힘들 거라 생각한 거야.


병문안 온 직원에게 내가 맡은 일은 어떻게 되가는지. 힘들지 않은지 물었어. 그런데 그의 답변은 다소 의외였어.


“걱정 마. 너 없어도 회사는 잘 돌아가더라”



아픈 나를 위로하기 위한 말이었겠지만, 뒷맛은 씁쓸했어. 내가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최소한 “너 없으니 업무마비야” “도저히 해결 안돼, 언제 복귀하냐” 는 등 뭐, 이 정도의 말을 들을 줄 알았는데.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게 맞는 말이었어. 그리고 생각했지. ‘나는 회사에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인가?’ 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내가 회사를 필요로 하는 것만큼 회사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내가 회사를 몰라도 한참 몰랐던 거지.


같은 경우는 아니지만, 옥수수 밭이라는 일터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어진 허수아비는 정말 그의 생각대로 아무런 가치도 의미도 없는 존재가 돼버린 것일까? 까마귀의 말대로 뇌만 가지면, 즉 공부를 많이 하고 지식이 많으면 자칭 ‘훌륭한’ 사람이 되어 누구보다도 가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일까?


우리 인류의 조상이었던 원시시대의 부족 생활을 살펴보면 어느 누구도 차별이나 불평등한 대우를 받으며 생활하진 않았다고 해. 지배와 피지배 관계가 형성되기 전에는 다 같이 사냥하고 채집하며 나온 수확물에 대해 똑같이 나누는 삶에 기반을 둔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던 거지.


특정지역에 정착하는 농경사회로 진입하게 되면서 개인의 사유재산이 허락되고 노예제도를 기반으로 하는 고대사회로 들어서게 되었지.


근대 자본주의 시대에 들어서 생산수단이 노동자로부터 분리되기 시작했고 농민들이 가지고 있던 토지에 대한 소유권도 강제로 박탈되었어. 그 과정에서 무자비한 폭력도 이루어 진 거지.


감당 할 수 없는 빚을 지게 된 그들 대부분은 도시로 흘러 들어가 부랑자가 되었어. 영국은 그들에 대한 폭행 또는 감금을 제도화하는 ‘부랑자법’을 만들었지. 이 법으로 공장주는 부당한 임금과 조건을 제시하게 되었고, 노동자는 두말없이 일 할 수밖에 없게 된 거야.


대부분의 자본가들은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 지출을 줄여야만 했어. 그 중 가장 쉬운 방법이 뭐겠어? 지금도 흔히 사용되고 있는 행태인 고노동, 저임금과, 전혀 개선하지 않는 복지와 환경 이지. 그로부터 지금까지 우리 인간의 가치는 점차 하락하게 된 거야.


세계에서 존경받는 성직자이며 대표적인 복음주의자인 존 스토트(john stott)는 노동으로 인간의 가치를 따지는 세상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어.


“우리는 사람보다 사물을 의존 시 했고,
사람보다는 사물에 기초하여 문명을 세웠다.
노인들은 사람으로서 가치만 있을 뿐,
더 이상 생산자로서 가치가 없는
순수하게 그저 사람이기 때문에 무시당한다”




이제 사회는 노동을 할 수 있는 사람과 할 수 없는 사람을 구분하기 시작했고, 효율과 생산을 기준으로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는 사회가 돼버린 거야. 너와 나 그리고 우리모두, 노동으로서의 인간 가치는 점점 떨어지게 된 거지.


하지만 우리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이미 가치 있는 존재였어. 주변에 갓 태어난 아기를 봐. 하루 종일 먹고 싸는 게 유일한 일이잖아. 그런데도 부모와 주변사람들은 아무 조건 없는 넘치는 사랑을 우리에게 주고 있지. 존재만으로도 우리는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가치 있는 존재라는 건 사실이야.


그런 우리가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 가야 하는 존재로, 직장인이 되어선 쉬지 않고 일 해야 남보다 빠른 승진으로 인정받는 존재가 돼버린 거지.


그러는 사이, 우리는 본래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은 억눌린 채, 자신을 잊어버리게 된 거야. 그리고 외적 평가로 쌓아온 자신의 위치가 조금이라도 흔들리거나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순간, 스스로를 가치 없는 존재로 낙인 시켜 버리지.


도가 사상이 담겨있는 장자에는 존재에 대한 의미를 자연이라는 대상으로 확장한 이야기가 있어. 어느 날 장자가 산속을 가다가 가지와 잎이 무성한 거목을 보았지. 마침 그 옆에 있던 나무꾼은 나무를 베려고 하지 않았어. 그 이유를 물으니


“이 나무는 쓸모가 없습니다”라고 말하자


장자는 이렇게 말하지


“ 이 나무가 쓸모가 없기 때문에 하늘이 내린 수명을 누릴 수가 있구나. 좋은 재목이었다면 벌써 베였을 텐데..”


세상에 가치 없는 존재는 없으며 흔해 빠진 풀 한 포기 라도 나름의 가치를 가진 존재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일화야. 작은 미물의 존재가 이와 같은데 하물며 우리 인간은 어떨까?


세상에는 수많은 삶의 기준이 존재해. 그 기준에 맞춰 살아야만 인간으로서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다 한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그 기준에 억지로 몸을 껴 맞추다 보면 어떻게 될까? 정작 자신의 가치는 잘려나가고 아무 대도 쓸모 없다고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 하게 되지.


그러나 인간의 가치는 존재, 그 자체인 것이고 자신에 대한 존재의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인 거야. 이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죽는 순간까지 잊지 말아야 할 너와 나의 진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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