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인생을 패키지로 가져가도 괜찮을까?

마흔이 돼서야 깨달은 삶의 이치를 고전의 대화를 통해 말하다.

by 이로
“그건 옳지 않아. 짐승의 왕이 겁쟁이여서는 안 돼”
“나도 알아. 그래서 나도 슬프고 불행해. 위험이 생기면 심장이 쿵쾅거리거든.
”심장병이 있는 건지도 모르지 “
”그럴지도 몰라 “
”그렇다면, 기뻐해야 해. 그건 너는 심장을 가지고 있다는 거니까. 나는 심장이 없어.
그래서 심장병도 없지. “
”아마 내게 심장이 없었으면 난 겁쟁이가 되지 않았을지도 몰라 “
”너 뇌는 있니? “
”있는 것 같아. 본 적은 없지만 “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우리 주변엔 왜 그리 부러워할 대상이 많은지 신기할 나름이야. 누구는 몇 평짜리 집으로 이사했고, 연봉 얼마 받는다는 말부터, 각종 온라인이나 SNS에는 개인의 크고 작은 자랑거리들로 난리가 아니야.


이러니 자랑거리 하나 없이 평범하게 하루를 사는 사람에겐 그저 자기 자랑대회쯤으로 밖에 보일 수밖에.


거기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저놈 나를 부러워하는구나’라고 나의 생각이 들킬까 얼른 빠른 하트와 리액션으로 축하해주지. 그리고 몰려오는 자괴감. ‘난 왜 이 모양 일까?’


순간 나는 별 볼일 없고 이 사회의 들러리처럼 느껴지며 도태돼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오지. 아, 내 이리도 능력 없는 사람이었나. 하는 탄식과 함께 말이야.





자신에게는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거나 이루지 못한 일을 타인이 해냈을 때, 부러워하지 말라는 위로의 말이지만, 사실 부러움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감정일 뿐이야.

다만 자신이 좀 더 분발해야겠다는 의지를 살짝 불태울 정도까지는 괜찮지만, 결과에 대해 스스로를 비하하거나 자학할 필요는 없어.


도로시 일행 앞에 나타난 사자는 허수아비와 양철 나무꾼 입장에선 뇌와 심장을 모두 가진 완벽한 존재야. 하지만 심각한 겁쟁이인 사자는 오히려 심장 때문에 자신이 불행하다고 말하지. 서로 자신이 불행하다고 말하는 이 상황에서 누가 정말 불행한 것일까? 무엇이 불행한 것이고, 무엇이 행복한 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명한 말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교과서적인 명언을 아무 생각 없이 외우기 급급했던 시절이 있었어. 그러다 사회라는 커다란 바다로 흘러가게 되면서 학교와 직장 등 크고 작은 집단에 속하게 되고 그들과 강력 접착제처럼 땔 레야 땔 수 없는 끈적끈적한 관계로 이어져 있음을 점차 알게 된 지.


원하든 원하지 않던 우리가 태어나 죽는 순간까지, 누군가와의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한 순간이라도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의 삶. 그렇게 여러 사람들과 살을 부대끼며 살아가다 보면 듣기 좋든 싫든, 남과 어떤 점에 대해 비교하기도, 또는 비교당하기도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게 마련이야.


그러나 타인과의 경쟁이 심화된 현대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남과 비교하기를 즐겨하고 나 보다 못한 사람을 보면 우월감을 느끼게 되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이를 보면 부러움과 함께 그가 지닌 것을 갖고 싶은 욕망에 휩싸이게 마련이고.


미국 최초 여성 앵커인 바바라 월터스는 후배들로부터 ‘당신처럼 살고 싶어요’란 말에 다음과 같이 재치 있고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고 해.


“내 인생을 패키지로 몽땅 가져가야 하는데 괜찮겠어요?”




그녀는 불행했던 가정사와 결혼 생활. 그리고 힘든 사회생활 등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가져가야 할 텐데 괜찮겠냐는 뜻이었다고 해.


그만큼 우리가 부러워하고 존경하는 인물에게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부분이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비교하며 부러워하는 건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저 내 것이 아니기에 남의 것이 커 보이는 것일 뿐, 진짜 큰지는 직접 경험해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법이지.


이렇게 자신의 떡보다 남의 떡이 더 크게 보이는 이유에 대해 영국 인지신경과학연구소의 안토니아 해밀튼 박사는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고 해.


대상자에게 1백50g과 7백50g의 상자를 들게 하면서 다른 사람이 든 상자의 무게를 가늠하게 했어. 가벼운 상자를 들 때는 다른 사람이 들고 있는 상자를 실제 무게보다 무거운 것으로 판단하게 됐고 반대로 실험대상자가 무거운 상자를 들 때는 상대가 들고 있는 상자를 실제 무게보다 더 가벼운 것으로 판단한다는 것.


괜히 나만 무거운 것을 든다거나 아니면 나만 가벼운 것을 들었다는 생각이 사실로 판명된 셈이야. ‘시뮬레이션 이론’이라 불리는 이 연구는 우리가 가만히 관찰할 때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지만, 같은 행동을 동시에 할 때는 운동신경이 자신의 행동을 지시하느라 바빠져 다른 사람의 행동을 판단할 여력이 없게 된다고 해.


그래서 객관적인 판단을 제대로 못하게 된다는 것으로 자신의 것을 잠시 내려놓고 상대방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하지.


그렇게 남과 자신과의 비교를 통해서 얻게 된 열등감은 자신이 바라던 행복한 삶으로부터 멀어지게 해. 비교하면 할수록 자신보다 타인의 삶이 더 좋아 보이기 때문이야. 고통 또한 같은 것이라도 남의 것은 더 가벼워 보이기 마련. 내가 중심이고 내가 우선이기 때문이지.


성공한 이들과의 적절한 비교는 오히려 자신을 자극해 성장을 돕기도 하지만, 단순히 남에게 과시하고 우월해 보이기 위한 상태에서 행하는 비교는 자존감과 자신감을 떨어뜨리게 하는 심각한 후유증만 남길뿐이야.


결국, 타인에 대한 시기 및 질투에 휩싸이게 되고 정신적,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황에 놓이게 되지. 심해지면 다른 사람과 진실한 관계를 맺는 것조차 힘들어지고, 가벼운 만남 자체도 긴장의 연속이 돼버리고 말아.


설사 어떤 분야에서 남보다 우월하게 뛰어나 목표를 달성해 만족감을 느낀다 하더라도 또다시 새로운 대상과의 비교를 반복하게 되지. 남의눈을 의식한 그럴싸한 목표를 세우며 쫓게 될 것은 자명한 사실. 결국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잃어버리게 되지.


아무리 자신에게 좋은 일이나 행복한 일이 생길지라도 남들과의 비교 때문에 만족하거나 감사할 줄 모르게 돼. 그리고 자신은 항상 불행하다고 생각하게 되고.


사람들 앞에 대놓고 말하지 못했을 뿐, 알고 보면 우리는 남들이 부러워하거나 남보다 우월한 어떤 것을 최소 하나 이상은 가지고 있지. 결국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닌 부러워하되 스스로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야.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사자 이들 중에서 누가 과연 불행한 것일까? 누구나 자신의 마음속으로 원하지 않는 타인과의 비교로 씁쓸해하고 괴로워하는 순간이 불쑥 찾아오기 마련이야.


그때 보여주기가 아닌 자신을 돌아보며 어제와 다른 나를 위해 자신과 경쟁하며 스스로를 조금씩 발전시키는 사람이 진정 행복할 권리가 있는 사람 아닐까? 그런 면에서 본다면 아쉽게도 지금의 그들은 모두 불행하다 할 수 있지.




‘각자무치 (角者無齒)’란 말이 있어. 뿔이 있는 짐승은 날카로운 이가 없다는 뜻으로 한 사람이 모든 재주를 다 가질 수는 없다는 의미지.


재능 없는 사람일지라도 스스로를 돌아보면 다른 사람이 갖고 있지 않는 재주나 장점이 있다는 뜻이기도 해. 이제 내게 없는 다른 사람의 멋진 뿔을 부러워하기보다 자신만의 날카로운 이빨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부족함을 오즈라는 타인에게서 찾으려 하는 그들에게는 어쩌면 필요 없는 질문일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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