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그래도 소용없어. 아직은 돌아가기 싫어. 뭐 나도 안다고. 다시 거울 밖 옛날 방으로 돌아가야겠지.
근데 그러면 내 모험도 끝이란 말이야!”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신밧드의 모험> <인디아나 존스>.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모험’을 주제로 한 대표적인 작품들이라는 사실. 그중에서 어릴 적 TV에서 보았던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가장 먼저 떠올랐어.
밤마다 몰래 창문을 열고 나와 허클베리 핀과 함께 낯선 곳을 돌아다니며 모험을 즐기는 톰. 보물 찾기로 큰돈을 벌었지만 과부집 양자 노릇이 갑갑해 톰과 함께 뗏목을 타고 도주하는 허클베리 핀. 그리고 나무 위에 지은 멋진 오두막 집까지.
내 나이 또래의 소년이 집을 떠나 흥미로운 모험을 즐기는 그 모습에 나의 가슴은 쿵쿵 뛰었고, 대리만족까지 느끼며 열광하기도 했었지.
커서는 <인디아나 존스>로 대표되는 모험 영화에 심취하기도 했었어. 교수이자 고고학자인 인디아나!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도 여러 번 맞이하게 되지만, 결국 값진 보물과 유물까지 얻게 되는 과정이 재미있고 흥미진진했었지.
그놈의 먹고사는 걱정과 부족한 용기 덕에 포기하긴 했지만, 한 때 나의 꿈이 ‘고고학자’ 였을 정도로 엄청난 영향을 준 영화였어.
그 후 각종 애니메이션과 영화, 그리고 드라마와 게임까지. 우리에게 쏟아지고 있는 각종 문화 콘텐츠의 내용을 분석해 보면 거의 모험 이야기가 주 내용을 이루고 있지.
그리고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빛나는 승리로 마무리되는 주인공의 이야기에 우리 모두는 열광했지. 가끔 그런 주인공의 삶과 능력을 부러워하면서 말이야.
어쨌든 주인공이 위험을 무릅쓰고 어떤 일을 해나가는 것을 우린 ‘모험’이라 불러. 그리고 억눌린 현실을 과감히 박차고 일어나 자유분방하게 사는 모습을 떠오르게 하지.
그런데 말입니다! 만약 우리가 영화의 결말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주인공과 같은 여정을 겪어야 한다면, 영화처럼 멋지고 당당하게 모험을 즐길 자신이 있을까?
무시무시한 괴물이 내 앞에서 입을 떡 벌리고 있거나, 아찔한 낭떠러지 앞에서 뛰어내려야만 하는 상황을 피하지 않고 헤쳐 나갈 그 용기 말이야.
이러면 대부분 ‘영화는 영화일 뿐 오해하지 말자’라는 철 지난 개그까지 섞어가며 농담이 지나치다는 듯 무시해버리기 일쑤일 거야. 나 역시 억만 금을 줘도 ‘그렇게는 못 하겠다’라는 게 내 생각이니까.
이처럼 우리가 환호하는 영화나 드라마 속의 모험에는 우리가 간과하는 철칙 하나 있어. 그건 바로 주인공은 절대 죽지 않는다는 사실. 이 말은 어떤 어려움과 고난이 있어도 결국 이겨낸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지.
만약 우리에게도 절대 죽지 않고 행복하게 잘 살게 된다는 결론만 있으면 하지 못할 모험이 있을까? 아! 어쩌면 결말이 뻔하니 굳이 모험까지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런데 앙꼬 없는 찐빵은 찐빵이 아니듯, ‘모험’에는 ‘용기’라는 앙꼬가 있어야만 했어. 만약 무섭다거나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눌려 용기를 낼 수 없다면 진정한 모험으로 볼 수 없는 거지.
그만큼 모험에는 각종 위험과 불안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지만,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바로 ‘용기’인 거야. 밑도 끝도 없어 보이는 ‘용기’만 가지고 과감히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개척하며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 그들을 보며 우린 환호와 탄성을 아끼지 않게 마련이지.
이렇게 우리 일상에선 모험이 담긴 스토리나 콘텐츠들이 넘쳐나고 있지만,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린 그만큼 짜릿하고 흥미로운 인생을 살기 어려운 세상을 살고 있어.
그래서 TV나 영화를 통해 그런 모험의 짜릿함을 대신 느끼고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 영화처럼 과감히 용기를 내어 모험을 할 수 있는 그런 세상. 우린 그런 세상 속에서 살 수 없는 걸까?
사실 <톰 소여의 모험>이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내용을 가만 들여다보면 그 시대 또한 규격화된, 엄격화 된 사회제도와 관습이 억누르고 있던 시대였음을 알 수 있어.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강요된 교육방식 등. 제도화되고 관습화 된 올가미 속에서 답답하고 힘들어했던 주인공들. 아직 어린 나이라 세상에 대한 두려움도 무서움도 모른 채 뛰쳐나갈 수 있는 용기가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
톰과 같은 어린 시절을 훌쩍 넘어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된 지금. 돌이켜보니 나이가 어리거나 젊다고 세상을 뛰쳐나갈 모험심을 다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어.
마음 한편에 품고 있어도 표출할 수 없도록, 뛰쳐나갈 수 없도록 용기를 거세당한 채, 말 잘 듣고 착한 아이로만 키우려는 어른들의 강압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자라고 있었지.
그런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 속에서 아이들을 향해 ‘모험심을 키워라’ ‘틀을 깨고 과감히 행동해라’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이 역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볼 일이 아닐 수 없어.
하지만 우리 역시 오랜 제도와 관습의 틀 안에서 자라, 지금의 아이들과 별 반 다른 삶을 살고 있진 않아 보여. 위세대로부터 이어진 행복에 대한 절대적 가치관으로 인해 우리의 삶 또한 정해진 틀 안에서만 움직여야만 했지.
멋모르고 어른이 된 우린, 드넓은 바다와 같은 세상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제야 자신의 삶이 틀에 박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과감히 현실을 박차고 무작정 자신의 길을 떠난 사람들의 성공스토리에 열광하며 현실에 안주하려는 자신의 처지가 안타깝고 불쌍하게 보이기 시작 한 거지.
나 역시 지금 보다 좀 더 과감한 삶을 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에 몸서리친 경우가 많았어. ‘난 왜 저렇게 살지 못할까?’ ‘왜, 그때 용기를 내지 못했을까?’ 하고 말이야.
그렇게 용기가 없는 자신을 탓하고 있던 중 연일 사회면을 장식한 각종 사건 사고 소식을 접하게 되었어. 우연히 로또를 샀다가 몇 십억짜리 대박을 친 사람부터, 경제 불황으로 순식간에 문을 닫게 된 어느 자영업자 이야기. 길가다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 갑작스러운 해고로 회사에서 쫓겨나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연 등등.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발생되고 있는 일들. 주말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보일지 몰라도 알고 보면 우리 일상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들이었어.
그렇게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일들을 모아 보면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 역시 나름의 삶 속에서 모험을 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어 보여. 진귀한 보물이나 유물을 찾는 일은 아니지만 매 순간마다 목숨을 거는 <인디아나 존스>처럼 평범한 우리의 삶에도 그런 순간이 찾아오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까.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삶도 결국 삶의 일부에 불과한 거라 볼 수 있으니까.
“당신이 들어가기 두려워하는 동굴에는 항상 당신이 진정으로 찾는 보물이 숨겨져 있다.” <조셉 캠벨 >
우린 그동안 일상이 모험이 되는 순간 즉 절망과 불안 그리고 두려움의 순간을 피하기 위해 살아왔어. 안정된 직장과 안정된 수입. 삶에 어떤 굴곡조차 허락하지 않고 피할 수 있으면 피하기 위해 노력해 왔지.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의 삶은 작은 외풍에도 크게 흔들리기 마련이고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는 삶을 살기 마련이야. 한마디로 인생 뿌리 자체를 나약하게 만들어 버리는 행위인 거지.
그런 위기의 순간을 영화 속 모험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 삶에 대한 내성은 더욱 견고해지고 단단해져 어떤 새로운 변화도 슬기롭게 극복해 낼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어때? 그런 힘, 가지고 싶지 않아? 그런 삶만이 자신의 삶을 보다 능동적이고 진취적으로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될 거야.
그럼 이제 자신만의 보물을 찾아 두려운 동굴 속으로 뛰어 들어가 볼까? 마치 인디아나 존스처럼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