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봤자 소용없어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요. 그런 걸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걸요”
“네가 연습을 많이 하지 않아서 그래, 내가 네 나이였을 때는 항상 하루에 30분씩 연습을 했지. 음, 때때로 나는 아침식사 전에 불가능한 것을 여섯 가지씩 믿어보기로 했어.” (거울나라의 앨리스 중에서)
잊을 만하면 우리 앞에 나타나 불가능한 미션을 멋지게 수행하는 톰 크루즈. 영화에서 그는 사물 안에 숨겨진 명령을 하달받고 곧바로 미션을 수행하게 돼. 실패할 경우 전 세계가 위험에 빠질 그 미션 말이야.
하지만 그는 20년 넘게 불가능한 미션을 성공시키며 전 세계를 지키고 있어. 배트맨, 슈퍼맨보다 더 믿음직한 톰. 우리가 두 발 뻗고 잘 수 있는 건 혹시 그 덕분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야. (믿거나 말거나)
물론 그가 항상 미션에 성공하는 건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결말이 있기 때문. 그러나 그의 진짜 미션은 주연 배우가 주기적으로 교체되고 있는 어느 첩보영화와 달리, 20년 넘게 같은 영화에 도전하고 있다는 사실 아닐까?
그것 만으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 불가능한 미션이 되고 남을 거야. 실제 그는 언제까지 이 시리즈를 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에, 영원히 할 수 있을 만큼 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해. 정말 톰 형님!이라 부르고 싶을 정도야.
나이가 들수록 액션의 비중을 줄이는 다른 배우에 비해 철저한 자기 관리와 노력으로 불가능할지도 모를 미션을 준비하는 톰. 그의 진가는 이단 헌트가 아닌 톰 크루즈, 바로 자신 아닐까?
‘불가능한 일’ ‘가능한 일’은 선택의 문제.
나도 할 수 없고 누가 해도 할 수 없는 일. 그런 일을 가리켜 우린 ‘불가능한 일’이라 불러. ‘불가능’이라는 단어는 바로 ‘포기’라는 단어를 떠오르게 하고, 마음속엔 이미 그 일을 시도하거나 도전해볼 엄두조차 아예 가지지 않게 되지.
만약 그런 일을 시도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무모한 사람’ 또는 ‘뭘 모르는 사람’으로 취급받기도 해.
그러다 덜컥 성공이라도 하는 날엔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보다, “저 사람은 뭔가 특별한 게 있겠지” “형편이 되니까 했겠지” 라며, 자신이 도전하지 못한 것에 대한 그럴싸한 변명부터 하기 마련이지.
이런 생각은 주로 지금의 삶에 만족하거나, 반대로 유지하기 힘든 사람일수록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어. 남부럽지 않은 생활로 ‘이 정도면 됐지’라는 생각에, 굳이 머리 써가며 힘들게 도전하지 않아도 될 그런 의미로 남게 되지.
불편한 것도, 바라는 것도 없는 그런 삶.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면 이런 생각이 들까 싶어.
반대로 지금 삶이 너무 힘들어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다고 느낄 때, 우린 새롭고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을 시도해볼 마음의 여유조차 가질 수 없게 돼. 지금의 삶 자체가 새로운 도전이고 매일매일 불가능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자신의 삶이 여유가 있든 없든, 도전해볼까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는 그런 일. 그건 결국 본인의 선택의 문제로 남아있어.
‘불가능한 일’ 누가 결정할까?
지금까지 우린 남들이 어렵다거나 불가능하다고 말한 일에 동조하며 자신의 생각을 굳혀왔어. 그저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하니까, 그 말이 맞는 것 같으니까. 내 생각인지 타인의 생각인지 헛갈려하며 고개를 끄덕거려왔지.
하지만 나이가 들고 세상을 알아갈수록 우리가 알고 있던 ‘불가능한 일’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어. 혹시 우리가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일을 ‘불가능한 일’이라고 치부해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또 누군가 시도했지만 실패했다는 사례를 들어 누가 해도 안 되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버리는 건 아닌지 말이야.
그것이 ‘가능하다’ ‘불가능하다’라는 판단은 실제 본인이 시도했을 때 얻은 결과를 바탕으로 판단되어야 하지만, 머릿속은 이미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해버리고 말지.
특히 가까운 지인이나 주변 사람들의 과감한 시도가 실패로 끝났을 경우, ‘나도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바뀌기 마련이고, 그 일 자체가 무의미하고 시간낭비 일 뿐이라는 생각은 더욱 굳어지게 되지.
물론 그간의 누적된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시도가 필요 없는 불가능한 일도 있기 마련이야. 본인이 직접 새처럼 날기 위해 언덕 위에서 뛰어내린다거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겠다는 일 등등. 이건 불가능하다는 말 보다 허무맹랑하다는 표현이 더 맞겠지. 먼 미래에는 가능하게 될지라도 말이야.
불가능한 일에서 가능성을 찾다.
어렵고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일. 하지만 막상 시도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쉽게 해결되는 일들이 우리 주변에 종종 일어나고 있어.
가정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개인이 가진 목표에서,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을 한다면, 해결 가능한 일은 들판에 핀 꽃들처럼 지천에 널려있음을 깨닫게 되지.
그리고 넌 이렇게 말할 거야. “막상 해보니 별거 아니네”라고.
해당분야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없어 막연히 두렵고 귀찮게 여겼을 뿐. 스스로 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인다면 ‘불가능’이라는 봉인은 지레 겁먹고 떨어지게 될 거야.
실제 저자(나)는 사진을 예술로 배워보거나 표현해본 적 없는 평범한 회사원이었어. 남들처럼 여행 갔을 때 기록으로 찍었던 게 전부였지. 유명 사진학과는 졸업해야 작가라 불리며 예술활동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나. 우연히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예술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지.
몇 년 간 사진아카데미를 통해 배운 지식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조금씩 내 생각을 사진으로 표현하기 시작했어. 쉽지 않았지만, 하나씩 알아가는 즐거움과 발전하는 나의 모습에 점점 흥이 나기 시작했지. 그러다 국제사진전 참가와 개인전까지 하게 되면서 불가능하게 보였던 일이 점차 가능한 일로 보이기 시작한 거야.
비록 지금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미뤄둔 상태지만, 대신 그려본 적도 없는 ‘펜 드로잉’에 도전하며 또 다른 나의 가능성을 찾기 시작했지.
불가능하게 보이는 세상과 부딪히며 사는 것 그것이 인생 아닐까?
‘불가능하다’ 고 생각했던 일이 순식간에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바뀌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흥분되고 기분 좋은 일 일까. 어쩌면 처음부터 가능한 일로 존재해 있었지만 우리 스스로 ‘불가능’이라는 말로 포장해 버리고 두려워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것이 가능한 모습이었는지 불가능한 모습이었는지 알 수 있는 건 바로 직접 도전하고 부딪혀봐야 알 수 있는 것.
일본 경제학자이며 기업인인 ‘오마에 겐이치’는 불가능한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했어.
“수많은 일이 실제 불가능하기보다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소극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불가능해진다.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성공의 원천이다. 우주의 중심에 ‘출입금지 푯말’ 따위는 없다.”
만약 사람들이 나에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어려운 일이라고 하는 일이 있다면, 그 말 못 들은 척하고 살짝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 칼을 뽑았으면 무 라도 썰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그 일에 대해 먼저 간부터 보는 거야.
그러다 ‘아, 역시 불가능해’ 또는 ‘나랑은 안 맞네’라는 생각이 들면 그때 포기해도 늦지 않아. 하지만 “막상 해보니 별거 아니네. 해 볼만 한데?”라는 느낌 받는 순간. 불가능이라는 두려움은 새로운 가능성으로 탈바꿈하게 될 거야. 느낌 아니까~
만약 자신에게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일에 대해 도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면, 다음 할 일은 스스로에게 마법을 거는 일.
‘일단 해보자’ ‘안되면 그때 포기하자’라는 생각을 하루 10분 아니, 단 1분 만이라도 스스로에게 마법을 걸어보면 어떨까? 모든 가능성은 스스로에 대한 작은 믿음에서부터 시작하기 마련이니까.
그간 새로운 도전이나 행동은 청년의 전유물처럼 생각해 왔지만, 나이를 떠나 남녀를 떠나 자신에게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일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것. 그것이 세상과 부딪히며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 아닐까?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인생의 목적이다”라고 말한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