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담배를 피우지도 피워 본 적도 없다. 골초였던 아버지의 육중한 몸에서 흘러나왔던 그 냄새가 아직도 생생하지만, 다행히 물려받지는 않았다. 안 피우던 사람도 자연스럽게 입에 물게 된다는 군대에서도 내 숨 넘어갈 듯한 기침소리에 선임은 담배가 아까운지 냉큼 빼앗아갔다. 가히 인간 행동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유전적, 사회적 요인 모두를 이겨낸 인간승리나 다름없었다.
사회초년생 시절, 직장생활을 잘하려면 담배를 피울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선배들과 빨리 친해지고 허물없는 사이가 되려면 술, 담배는 필수라고 했다. 처음엔 사람 사귀는 것보다 그게 더 큰 걱정이었지만, 이내 내가 싫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 싫은 행동을 억지로 참아가며 상대방과 친하게 지낸다 한들 그 관계가 오래갈 수 있을까 싶었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건강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면서 내 생각이 섣부른 판단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고 담배가 내 곁을 떠난 건 아니었다. 아파트에서 차 안에서 길가에서 맑았던 코 주변이 탁해지는 느낌이 들 때면 어김없이 주위부터 둘러보았고, 어김없이 누군가의 손에 들린 담배는 연기를 솔솔 피우며 내게 날아왔다. 초미세먼지까지 막는 마스크라도 막을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잠시 숨을 멈추거나, 손으로 가린 채 진원지보다 앞질러 갈 수밖에 없었다.
담배는 간접흡연으로부터 나의 소중한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쳐야 할 대상이었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손과 입에 담배를 물고 있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몇 분 안 되는 행위가 아깝고 참으로 쓸모없게 느껴졌다. 마치 허공을 향해 자기 자신을 태워버리는 느낌이랄까.
그런 나의 생각이 단단하게 굳어질 때쯤, 우연히 읽게 된 한 권의 책이 망치가 되어 내 머리를 내리친 일이 있었다. 의과대학 교수이자, 사회역학을 연구하는 학자인 김승섭 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라는 책이었다. 그는 사회 구조적 문제들이 우리의 삶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객관적인 근거와 자료를 통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었다.
특히 ‘일터가 안전하면 노동자의 금연율이 올라간다’는 글에서는 저소득층이 자신이 처한 열악한 사회적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름의 이유로 흡연을 하게 되며, 이 점을 고려하지 않은 금연 정책은 효과를 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또한 금연에 실패할 경우 개인의 의지 부족으로 치부해버린 건 아닌지 질문해야 한다고 말했다.
매일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에게 아무리 흡연이 몸에 나쁘고 간접피해를 줄 수 있으니 끊어야 한다는 캠페인을 벌인다 한들 그들에겐 한낱 공염불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문득 출퇴근길에 공사장 한편에 모여 담배를 피우던 나이 지긋한 노동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휴식시간인 듯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 차디찬 바닥에 앉아 담배 한 개비씩 입에 문다. 서로에게 불을 붙여주며 담배 끝이 타기 시작할 때쯤, 길게 한번 빨아들인 후 내뱉기를 반복한다. 이제야 한 숨 돌렸다는 듯 얼굴에는 살짝 여유로움이 감돌기 시작한다. 그들이 내뿜는 흰 연기는 하늘을 향해 허공을 향해 춤추듯 떠돌다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 작은 불꽃이 조금씩 타 들어갈수록 그들의 시간은 점점 짧아진다.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연장하려는 듯 시키지도 않은 이야기 꽃을 누군가 피우려고 하자 긴 한숨은 곧 사라지고 밝은 빛이 샘솟는다.
난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을 100% 이해할 수도 없다. 왜 입안 가득 연기를 머금고 허공을 향해 사라질 하얀 연기를 내뿜는지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살아있는 동안 한시도 나를 떠나지 않는 삶의 체증들이 괴롭히는 상황 속에서 긴 한숨이라도 내뱉지 않으면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을. 남들보다 아니, 남들 하는 만큼 열심히 하루를 살고 있지만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 앞에 그들이 세상을 향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아마 그들은 자신의 긴 한숨이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지길 원치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기분을 스스로 헤아리기 위해, 잠시라도 그 실체를 보고 싶은 마음을 담아 보내려던 건 아니었을까.
1994년 <역학과 원인의 그물망: 거미를 본 사람이 있는가?>라는 논문을 출판한 하버드대학교 낸시 크리거 교수는 “왜 사람들은 그 ‘원인의 그물망’이 마치 처음부터 주어진 것인 양 생각하는가?” 라 물으며 왜 질병의 원인을 항상 개인 차원의 고정된 요인으로만 가정하는지 질문한다. 그리고 나와 우리에게 묻는다. 현재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그물망은 무엇이냐고. 그 원인이 되는 거미가 누군지 생각해 본 적 있느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