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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로 Jul 05. 2019

밥 한 번 같이 먹기 어려운 세상에서

나이 들면서 내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바로 인간관계다. 세월이 흘러도 가끔 얼굴이라도 보고 지내는 사이가 있는가 하면, 새로운 관계를 맺거나 끊어버리게 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마치 계절의 변화에 따라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꽃들처럼 말이다.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나는 물 흘러가는 대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편이다. 관심을 쏟아붓는다고 해서 안 좋았던 사이가 좋아지고, 더 돈독해진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과도한 감정소비를 막기 위한 나름의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주변에는 오래전부터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 어린 시절 추억을 함께한 친척이나 동네 친구, 학교나 직장 선후배들이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다. 당시엔 비교적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지만 어른이 된 지금, 각자의 삶을 찾아 뿔뿔이 흩어져있다. 물론 대부분은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만날 수 있는 거리에 있지만, 일분일초가 아쉬운 현대인이 느끼는 심리적 거리감은 꽤 멀게만 느껴진다. 


그런데 굳이 연락 안 해도 아쉽거나 불편하지도 않은데, 귀찮음과 거리감을 이겨내고 통화버튼을 누르는 사람이 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저 생각나서 소식이 궁금해서 안부를 묻는 것뿐이다. 그렇게 인사하고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으레 이런 말이 오간다. 


우리 언제 밥 한번 먹어요 
네, 그래요


그저 인사치레 하는 정도라 생각하고 주고받았지만, 이미 당신과 나의 뼛속에 깊이 새겨져 있는 말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것은 내게 불편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속이 더부룩한 상태에서 올라오는 트림이나, 잠잘 때 귓가에 맴도는 모깃소리처럼 말이다. 당장이라도 만나자고 할 것처럼 가뿐 숨을 몰아 쉬며 안개만 피우는 모습에 지쳐 실망했던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말을 듣고 내가 먼저 날짜를 정해 의향을 되물어볼 수 도 있다. 하지만 왠지 “밥 한번 먹자”는 말 그 자체가 예의상 듣기 좋을라고 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래서인지 통화할 때마다 그 말을 남발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는 점점 무너지게 되었고 혹여 내가 그런 모습으로 비칠까 입을 열기 전, 한 번 더 뇌를 거치고 말해야겠다는 다짐까지 하게 되었다. ‘허튼 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도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과거 모 자동차 회사 캠페인 광고에는 직장인 빈말 1위(41.7%)가 “밥 한번 먹자”였고, 타 기관에서 실시한 조사 결과에서는 그 말을 들은 사람의 92%가 빈말인 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 실제 만날 기회조차 힘들 줄 알면서도 우리가 굳이 “밥 한번 먹자”라고 말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알다시피 ‘밥’은 오랫동안 이어온 동양인의 주식이다. (물론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 얼굴을 마주 보며 함께 밥을 먹는 행위는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함만은 아니다. 한동안 나누지 못한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로 허기진 마음을 채움으로써 인연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생각해보면 공감할 만한 사실. 그런데 왜 그 약속이 빈말로 끝나게 되는지 생각해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그건 두 사람 사이에만 존재하는 관계의 온도차 때문이라고. 평소 아주 친하거나 긴밀하지 못한 관계 속에서 일어난 뜻밖의 만남이나 연락은 어쩌면 곤혹스러운 상황이 될 수 있다. 한마디로 ‘가까이하기엔 아직 먼 당신’ 정도쯤이랄까? 친하게 지내면 좋겠지만 지금 당장 그럴 필요까지는 없고 그렇다고 멀리 할 수 도 없는 관계 속에서 쉽사리 만남을 가지기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서로에 대한 온도 차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쉽게 거절 하기도, 실제 만나기도 모호한 상황에서 “언제 밥 한 번 먹자” 는 말로 상대와 나의 어설픈 상황을 일단 모면하고자  그런 말을 할 수 있다. 대부분 상대도 적당히 호응하는 선에서 끝나고 만다. 박수도 두 손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지만 아직 그런 사이는 아니다. 


물론 지금은 여의치 않지만 언제 시간을 따로 내서 만나고 싶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공사다망하니 시간을 조율해서 만나자는 뜻으로 말이다. 서로에 대한 애정도 있고 온도차도 없다면 만남은 즉시 이루어진다. 하지만 경조사 때만 만난다든가 서로의 온도가 미지근한 상태에서 연락을 먼저 받았다면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상대에 대해 특별히 안 좋은 감정이나 기억이 없다면 만나 볼 필요는 있다. 반대로 그런 마음이 안 생기거나 의지가 없다면 굳이 반응에 응할 것까지는 없다. 어차피 만나기 싫어도 만나야 하는 상황이 언젠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아이는 잘 크고 있는지, 진심을 담은 목소리로 먼저 연락 왔다면, 듣기 싫어하는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을 무한 반복하더라도 그 수고스러움과 고마움은 잊지 말자. 아무리 통신의 발달로 버튼만 누르면 연락이 가능 한 세상 속에 살고 있지만, 그 수많은 관계를 뚫고 마음을 담아 연락하기란 보통 귀찮고 어려운 일이 아님을 우린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그 사람이 보기 싫지 않다면 조금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언제 한번 먹어요”라는 말 대신 “언제 먹으러 갈까요?”라고 진정성을 담아 되물어보자. 그럼 나에게 더없이 소중한 인연으로 변신하게 될지 그 누가 알겠는가? 친밀한 관계는 바로 만나고 싶다, 보고 싶다는 의지에서부터 시작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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